영월은 두메산골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어디로든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린 조카에게 정권을 빼앗은 삼촌은 조카를 영월로 유배시켜 버렸다. 게다가 외로움에 지쳐갈 때, 다시 사약을 내려 죽게 했다. 슬픔과 외로움이 쌓여 있던 고장이 세월이 흐르며 그 모습이 변했다.
영월광업소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는 강원도 최초의 탄광인 영월광업소(당시 마차리탄광)가 1935년에 오픈했다. 1943년 조선전력회사 영월발전소가 설립되면서 발전용 석탄을 공급하였다. 얼마 후 발전소는 1948년 북한의 일방적 송전 중단 때 남한의 전력난에 큰 보탬이 되었다.
1943년 탄광에서 발전소까지 12km의 공중 삭도를 설치하여 운반했다. 마차 탄광에서 무목골, 분덕재, 봉래산, 동강을 거쳐 발전소로 이어지는 삭도는 대형 철탑 지주가 48개나 되었고 버켓이 멀리서 보면 솔개처럼 생겼다 해서 '솔개차'라고도 불렸다. 영월 장날에는 사람도 타고 다녔다고 한다. 30년 만인 1973년에 없어졌다.
강원도 영월군 마차리 탄광(영월광업소) 삭도, 출처: 국가기록원
영월광업소는 1964년 연산 30만 톤 규모까지 성장했으나, 영월발전소의 사용량 감소로 1972년 휴광 했다가 그 후 석유파동으로 재개발이 시작된 후 1990년 5월 폐광됐다. 1960~70년대 호황기에는 마차리 인구가 영월군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따지기 좋아하는 호사가에 따르면 대통령이 가장 많이 다녀간 탄광이라고 한다(이승만 1958, 박정희 1962, 전두환 1980). 그렇게 중요한 탄광이었다.
분덕재
영월 분덕재 지도, 출처: 네이버 지도
삭도가 넘어 다니던 고개가 분덕재다. 이제 석탄도 없고 삭도도 없지만 북면 마차리와 영월읍 영흥리 속골을 연결하는 군도 9호선이 지난다. 영월~평창 구간 이동의 지름길이지만 급경사와 급커브길이 많아 겨울철 사고가 빈번한 도로다. 까딱하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래서 2005년부터 분덕재에 터널을 뚫자는 이야기가 나온 듯하다. 폐광지역지원금을 이용하는 방안 등을 고려했었는데 무산됐고 지방도로로 승격해서 도지원금을 늘려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연에 지연을 거듭해 공사비는 점점 늘어만 갔다. 당초 공사비는 197억 원으로 예상되었지만 열악한 영월군의 살림살이로는 택도 없었고, 동계 올림픽에 기대어 건설해 보고자 했으나 또 무산됐다.
분덕재 공사현장 ⓒ 전영식
결국 2020년 1월 10일 첫 삽을 떴는데, 총사업비 406억 2200만 원이 책정됐다. 드디어 990m 분덕재 터널 개통을 포함한 총길이 1.98km 구간에 대한 선형개량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춘천의 모 회사가 낙찰을 받았다.
석회암 동굴이 발목을 잡다
그런데 2020년 12월 29일, 409m 굴착지점에서 거의 훼손되지 않은 원형의 천연동굴이 발견돼, 현재까지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 이 동굴은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사방으로 뒤틀린 방향으로 발달하는 곡석(曲石)과 석화(石花)·종유관 등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넓게 분포하고 있고 가는 실 형태의 곡석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에 자연유산적 및 지질학적 가치가 높단다. 게다가 약 3m 길이의 종유관은 국내 최장으로 추정된다.
영월 분덕재동굴 내부, 출처: 문화재청
영월군은 공사를 중지시키고 가치평가 과정을 거쳤는데, 결국 문화재청은 2023년 12월 23일, 총 연장길이 약 1,810m의 분덕재동굴의 국가지정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공사 중에 보호 조치가 된 동굴이 국가지정유산으로 지정된 첫 사례란다. 고생대 화석(삼엽충)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마차리층에서 발견된 동굴 중 최대 규모이며, 현재까지 조사된 국내 석회암동굴 중에서는 4번째로 큰 규모이다(영월 고씨동굴 3388m, 정선 산호굴 2400여 m, 평창 백룡동굴 1875m). 물론 무조건 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영월 분덕재동굴'은 발견되자마자 훼손되지 않게 바로 보호 조치된 덕분에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하고, 다른 석회암동굴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동굴생성물과 미세한 기복 지형으로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30일간의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훼손 행위를 할 수 없고 합당한 보존관리를 해야 한다. 당연히 터널 계획은 동굴로 빨려 들어갔다.
이리하여 분덕재 터널은 물 건너가고, 천연기념물 분덕재 동굴이 생기게 될 것 같다. 터널 개발에 들어간 돈을 회수할 길은 아마도 요원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게 공사하기 전에 지질조사를 면밀히 했으면 좋았을 것을. 요즘 석회암 동굴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을 자제하는 분위기에서 영월군이 이 자원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마차리층
눈 밝은 분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영월은 퇴적암 지역이다. 화석이 나온다. 그런데 시대는 고생대 캄브리아-오르도비스기이다. 당연히 공룡은 없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게 기억난다면 이 시대의 표준화석은 삼엽충(trilobites)이다. 머리, 가슴, 꼬리의 3 부분으로 나눠져 삼엽충이다(좌우중앙이 세로로 나눠져 삼엽충이 아니다).
득실득실했다. 삼엽충은 따뜻한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았다. 그래서 마차리층이 있는 영월지역은 5억 년 전에는 적도부근의 따뜻한 바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차리층의 삼엽충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 고바야시에 의해 처음 연구되었다. 이제는 우리 학자가 연구한다.
분덕재 마차리층 노두 ⓒ 전영식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한반도의 이 시절 고생대층은 조선누층군으로 불린다. 최덕근은 조선누층군을 태백층군, 영월층군, 문경층군으로 나누었다. 즉 같은 시기에 퇴적 환경이 서로 다른 3 지역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인 최덕근은 고생물학자로 화석을 통한 태백분지의 생층서(生物層序學, biostratigraphy)의 확립에 기여한 바가 크다. 최덕근은 하부 삼방산층위에 정합적으로 존재하는 마차리층에서 여러 종류의 삼엽충을 발견해서 12개의 세부 생층서(생물의 구분에 따른 지층의 순서)를 제안했다. 이는 당시 변화무쌍한 생태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향후 퇴적암석학적인 교차 검증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월지역 지질도, 최덕근(2016)
영월의 지질도는 매우 복잡하다. 평평하던 퇴적암이 횡와습곡(橫臥褶曲, recumbent fold) 작용을 받아 지층이 겹쳐져 지표에 나타난다. 습곡의 배사축이 지표에 거의 수평하게 나타나는 것이 횡와습곡이다. 판경계에서 조산작용이 있을 때 강한 횡압력을 받아 만들어진다. 그래서 처음 지질도를 보면 선후관계인 지층이 복잡하게 나타나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쨌든 영월지역이 지금의 지질을 만들 때 옆에서 압력을 크게 받았음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분덕재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다. 궁중과 땅위 그리고 땅속에 세겨진 분덕재의 모습이다. 어떤 것이 이 고개의 진정한 모습일까. 오늘도 차들은 분덕재를 넘는다.
지질학은 화학이나 물리학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모든 장소에 나름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지질학 원리에 따라 해석된다. 따라서 단순한 진리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맞는 다양한 역사를 여러 세부분야에 원칙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분덕재는 퇴적암석학, 구조지질학, 고생물학에 만나는 재미있고 소중한 장소이다. 우리나라를 다녀보면 이런 장소들이 정말 많은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또 이번 사례를 통해서 석회암지역에서 함부로 터널을 뚫으면 안 된다는 점도 배웠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