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 이야기
2024년 1월 16일, 언론매체들은 북한 열차 사망사고를 일제히 보도했다.
2023년 12월 25일, 평양을 출발하여 함경남도 금골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다음날 동암역을 지나 리파역으로 오르던 중, 기관차에 공급되던 전압이 약해지면서 뒤로 밀렸다. 제동력을 상실한 열차는 동암역 쪽으로 역주행했고 이 과정에서 뒤쪽 객차 7량이 탈선해서 산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객차당 60개의 좌석이 있는 점을 들어 400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고의 진위와 피해규모는 후날 알려질 것이다.
후진국 사고인 대형 인명피해 철도 사건은 북한에서는 흔한 일이다.
1996년 12월 3일 새벽 1시경, 만포-해주행 열차가 진천군-희천시 구간 개고개역에서 술을 얻어먹은 기관사가 객기를 부려 보조기관차 없이 열차를 운행했다. 마침 기관차에 공급되던 전압이 정상 직류 3,000 볼트에서 2,300~2,000 볼트로 떨어지면서 열차의 제동력이 떨어졌다(우리나라는 25,000볼트 교류방식). 이에 열차는 롤러코스트처럼 제어장치 없이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일부 승객들은 '이렇게 달리면 빨리 집에 갈 수 있겠다'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견인기(기관차)를 포함하여 13량 편성이던 열차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송원역 못 미쳐 하나씩 절벽으로 떨어졌고 북한 역사상 가장 큰 열차사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기관차와 수화물차, 상급침대차량은 송원역에 도착했으나, 나머지 10개 차량이 탈선했다. 열차 지붕까지 들어찬 승객은 한 칸에 400명씩 총 4천 명 정도 탔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사망자는 최소 912명에서 3,000명까지로 알려졌다. 폐쇄적인 북한의 특징으로 봤을 때, 고도의 보도통제가 있었고 사실은 감춰졌으나 탈북민을 통해 단편적인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 사고를 ' 개고개 열차전복사고'라고 한다.
높이 차이가 심한 역간을 운행할 때는 기관차를 맨 앞과 맨뒤에 배치하여 충분한 견인력과 제동력을 확보하는 게 기본이다. 선진국들은 다 이렇게 한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경제력이 부실한 나라는 충분한 기관차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운에 맡기도 맨 앞 기관차만을 가지고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 전력난이 심각한 북한에는 철도에까지도 안정적인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데 전압이 약해지면 기관차의 설계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두 사건이 판박이 같이 닮았다.
결국 군 보위부(우리같이 행안부가 아니라 군이다)가 '개고개 열차전복사고' 조사 후 운전을 담당했던 기관사와 개천철도총국 사령장, 현장 철길대장 등 7명에게 사형이 언도됐다. 언론통제로 감춰진 희생자들 숫자에서 가장 확실한 죽음은 7명뿐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악의 철도 단독 사고는 1981년 5월 14일 발생한 '경산 열차 추돌사고'로 사망자 55명, 중경상 254명이다.
북한은 선로연장 총 5,248km, 전철화율 80%(하지만 일부구간은 증기기관차도 다닌다), 100여 개 노선을 운영 중이다. 전체노선의 98%가 단선(복선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수송분담률이 무려 86%에 달한다. 평균속도는 30km/h이다. 차와 도로 사정을 짐작케 해 준다. 참고로 우리나라 철도의 여객분담률은 15%, 화물은 24% 정도이다.
이렇게 철도의 분담률이 낮다 보니 철광석등을 운반할 때 기존 노반을 보강하지 않고 사용하게 되고, 이에 따라 노반이 무너지고 궤도가 뒤틀려 노선 상태가 엉망인 곳도 태반이다. 제철, 제강 기술의 부족으로 궤도도 제때 교체되지 못하여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던 것을 여태껏 사용하는 곳도 많다. 궤도는 중국, 러시아 것에 의존하는데 이것 또한 재대로일 리가 없고 일부 궤도, 배전선 및 침목고정못까지도 배고픈 주민들이 훔쳐내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외국(그래봤자 중국, 러시아)을 갈 때, 열차를 이용하는데 그 기간을 보면 10일씩 걸리는 경우가 보통이다. 평양-신의주 노선은 30km/h가 나오지만 지방선들은 10km/h가 나오는 것이 태반이다(참고로 자전거의 안전속도는 20km/h이다). 김정은도 자기들 철도 수준을 실토한 바가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KTX를 탔던 북한사람들이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면 측은해진다. 통일이 되어 저런 북한시설을 우리 수준으로 다시 갖추는데 상상을 초월할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철도는 궤도, 통신망 및 기차로 이루어진 복합 운송망이다. 여러 가지 인프라가 구비되어야 정상적인 운용을 할 수 있다. 기차는 중량이 매우 무겁기 때문에 노반, 교량, 터널이 튼튼해야 하고 한번 움직이는 것도 힘들지만 멈추는 것도 어려워 통신이 필수적이다. 열차가 오면 건널목의 차단기도 내려가야 하고 앞에 열차가 있으면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어제까지 무사히 지나갔다고 오늘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통신이 되지 않는다면 방법은 천천히 운행하는 것 밖에는 없다. 따라서 북한 기관사들은 천천히 운행한다. 괜히 빨리 달리다가 사고를 내면 총살당하기 때문이다.
열차사고의 종류
열차끼리의 사고는 충돌이냐 추돌이냐로 나눠진다. 선로가 복선이면 적어도 충돌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한 궤도에 방향이 다른 열차가 애당초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선행하던 열차를 후행하는 열차가 들이받는 것이 추돌이다. 선행열차가 왜 서행을 했는지, 자동폐색신호기(ABS)가 잘 작동은 했지는 후행열차의 기관사가 이를 인지했는지 등에 따라 다양한 사고의 원인이 생긴다.
열차사고의 경우 후행 열차가 선행 열차의 위로 올라가서 밑에 깔린 열차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타오름 현상'이라고 한다. 또 열차가 궤도에서 벗어나 선로 밖으로 삐뚤 빼뚤하게 튕겨나가는데 이를 '잭나이프 현상'이라고 한다.
가장 흔한 철도사고는 탈선이다. 자동차는 대략 평평한 곳은 아무 곳이나 갈 수 있지만, 무게가 거대한 열차(디젤기관차 GT26CW의 경우 132 ton)는 쇠로 된 궤도에서 벗어나면 움직일 수 없다. 탈선하는 이유는 주로 설계속도 이상으로 커브길을 달리는 경우이다. 물론 안전율을 고려하여 최도 속도를 규정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때로는 졸면서 운전하면 탈선하다.
열차는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운행하므로 함부로 앞을 막으면 안 되다. 뉴턴의 운동 법칙(f=ma)을 실험해 보기 위해 선로에 서있으면 안 된다. 열차 선로에 이물질을 올려놓는 것도 탈선을 일으킬 수 있다. 그밖에 요즘 철도는 전기로 운영되기 때문에 선로와 열차 위에 올라서면 감전 사망의 위험이 있다. 낭만스런 열차여행을 위해서는 모두의 안전의식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대규모 열차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