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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May 04. 2024

송화가루 가득한 세상

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 엿듣고 있다


이 시는 박목월이 1946년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만든 3인 시집 <청록집>에 실려 있다. 올해는 윤년이었지만 윤사월은 아니었다. 박목월이 언급한 윤사월은 1944년에 있었다. 요즘 송화가루가 한창인 것을 보면 이맘때였으리라 생각된다.


윤년(閏年, leap year)은 한해의 날수가 366일인 해를 말한다(천문법 제2조 제5호). 지구의 공전주기가 365.2422일인데 이를 하루단위로 정정하려니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역에서 2월에 하루를 더하여 평균 연간 일수는 맞추는 방법이다. 치윤법(置閏法)에 따라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하는데 올해인 2024년이 윤년이다. 2월 29일이 생일인 사람은 4년에 한 살 먹는다고 좋아한다.


참고로 윤년에는 2월과 8월의 시작일이 같은 요일이 된다(올해는 둘 다 목요일임). 그리고 윤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6학년 그리고 고3 때 요일이 똑같은 달력을 경험한다. 그리고 윤년에는 한국 국회의원 선거, 미국 대통령선거, 대만의 총통선거와 올림픽이 치러진다. 마지막으로 쥐띠, 용띠, 원숭이띠는 윤년에 태어난다. 영원히.


윤달(閏月)은 음력의 연간일수(354일)가 양력의 일수(365일)와 다르기 때문에, 한해의 일수 차이인 11일을 몇 년 모아 2~3년에 추가로 한 달을 만들어 원래 달 뒤에 둔다. 즉 윤사월은 음력 4월 다음에 윤사월이 온다.  일치시키지 않으면 음력의 계절이 산으로 간다. 19년 7윤법을 쓰는데, 19 태양년에 7개의 윤달을 두는 것이다. 윤달은 예로부터 신들이 인간을 감시하지 않고 쉬는 달이라고 하여, 불경스러운 행동을 해도 된다고 인식되어 이사,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를 짓는 시기로 알려졌다. 대신 혼인은 피한다. 조상의 음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하여간 다음 윤사월은 2058년에 있다.




송화가루에 뒤덮인 차량, ⓒ 전영식


소나무의 꽃가루인 송화(松花, pine pollen) 가루는 5월 경에 세상을 가득 메운다. 예전에는 꾀 늦게 날렸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 것 같다. 국립수목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송화가루가 날리는 시기가 평균 1.57일씩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2020년 5월). 10년간 보름정도 빨라졌다는 이야기다. 다 기후온난화 덕분이다.


소나무의 꽃대, ⓒ 전영식


소나무목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겉씨식물로서 협의로 쓰일 때는 동아시아와 러시아 동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적송(학명: Pinus densiflora)만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바늘잎나무이다. 소나무는 냉해(冷害)에도 강해 비바람과 혹한의 추위도 견뎌내는 굽히지 않는 기상을 보인다 해서 선비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수피가 두꺼워지고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져 철갑을 두른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소나무는 꽃이 없기 때문에 꿀도 없다. 따라서 나비나 벌 같은 매개곤충은 쳐다도 안 본다. 그래서 소나무는 바람을 이용하여 수정을 하기로 했다. 풍매화(風媒花)이다. 송화가루를 자세히 보면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이 때문에 멀리 비산 할 수 있다. 겉씨식물인 소나무는 암수가 한 나무에 있는 자웅동체이다. 그래서 자가수정을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짠다.


송화가루의 현미경 사진, 양옆에 공기주머니가 보인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tlas of Medical Foreign Bodies


한 개체에서 직경 1cm 정도의 타원형인 노란 수꽃이 먼저 피어 꽃가루를 날리고, 자주색의 암꽃(6mm 정도)은 시기적으로 그 후에, 위치적으로는 꽃대의 맨 끝에 피어난다.  군집에서 개체별로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근친상간의 비극을 피할 수 있다.


소나무는 1년에 한마디만 자라는 고정성장을 한다. 가지가 돌려나기를 하기 때문에 가지의 마디 수를 세어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 마디수에 대략 3~4를 더하면 소나무의 나이를 잴 수 있다. 물론 작은 나무에 한정한 이야기고, 큰 나무는 마디 새기가 불가능하거나 아래 마디가 없어져 이 방법을 이용하기 어렵다.  잣나무, 가문비나무, 참나무가 이에 속한다.


바늘잎나무는 잎의 수로 종류를 구별할 수 있다. 소나무는 잎이 2개이다. 참고로 전나무는 1개, 리기다 소나무와 백송은 3개 그리고 잣나무는 잎이 5개이다. 소나무 잎의 수명은 3년이다. 따라서 3번째 마디에 있는 잎을 보면 노화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영원히 잎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 수꽃, ⓒ 전영식
소나무 암꽃, ⓒ 전영식


송진가루는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을 말려서 가루화한 것이다. 야구의 투수가 사용하는 렌진백(resin bag)에 들은 것이 송진가루다. 핸드볼 선수, 현악기 연주자들도 송진가루를 쓴다. 하지만 지금 온 세상에 가득한 송화가루와는 다르다. 송화가루를 보면 소나무의 사랑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나무 중 소나무는 으뜸이다. 한반도가 개체수도 가장 많고 분포면적도 가장 넓다. 중생대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이땅에 살고 있는 터주대감이다. 애국가에도 나오듯 남산 위에 있는 것도 소나무이다. 하지만 바늘잎나무인 소나무는 한대성 식물이다. 기후 온난화로 점점 살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북쪽으로 또는 더 높은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산 위에는 소나무가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기후온난화로 애국가의 가사를 바꿔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1. 공우석, 바늘잎나무 숯을 거닐며,2020, 청아출판사

2. 나무위키

3. 이일하교수의 식물산책, 2022, 궁리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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