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은 수도권에서 제법 멀다. 철도는 없고 공항도 없다. 남해고속도로가 고흥 끝에 간신이 걸려 지나간다. 인프라의 오지다. 하지만 고흥은 우리나라에서 외계로 통하는 관문이고 그래서 우주와 가깝다.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4차원의 세계나 타임머신의 입구는 아니고 스타게이트도 아니다. 하지만 이 고장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1285년 고흥현(高興縣)으로 개칭되어 '고흥'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했다. 무리해서 고장 이름을 풀어보면 '높이 흥한다'는 뜻이다.
두원 운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운석이 보고된 사례는 6건이다. 운곡 운석, 옥계 운석, 소백 운석, 두원 운석, 가평 운석, 진주 운석이 그것이다. 현재 발견장소와 소재가 확인된 것은 두원 운석(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보유), 가평 운석(서울대, 민간 보유), 진주 운석(민간 보유)뿐이다. 가평운석은 임도작업을 하다가 찾은 것이어서 낙하시점과 위치가 불분명하다. 2014년 떠들썩하게 떨어진 진주 운석은 그 낙하모습과 지점까지 밝혀져 한때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의 운석,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두원 운석(豆原 隕石, Duwon meteorite)은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11월 23일,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성두리 186-5 야산에 떨어진 운석이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낙하 위치가 확인된 운석이다. 이름은 국제운석학회의 관례에 따라 낙하 지역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크기는 가로 13cm, 세로 9.5cm, 높이 6.5cm로 주먹만 하다. 무게 2.117kg이며, 모양은 동그란 직육면체 형태이다. 실험을 위해 일부 훼손된 표면에는 운석이 낙하하면서 녹았던 부분이 굳으며 생긴 막인 검은 용융지각(fusion crust)이 남아있다. 정상 구립콘드라이트 (Ordinary chondrite, L6(변성을 심하게 받음))인 석질운석이며, 분화되지 않은 시원 운석이다. 운석 자체는 가장 흔한 종류지만 낙하지점이 확인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원 운석,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민성에 따르면 두원 운석의 낙하모습을 보고 발견한 사람은 당시 두원공립국민학교 학생이던 송규현(宋奎炫, 성함 중 규奎는 별 규자다) 외 3인이며, 이를 일본인 교장이었던 아타치 쓰가네(足立束)에게 가져오게 해서 빼앗듯 학교에 보관했다고 한다. 교장은 일본이 패망하자 운석을 가지고 귀국해서 그 후 도쿄의 국립과학박물관에 팔았고 소장품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의 국립과학박물관은 이 운석을 연구하여 학계에 발표하기도 했고, 1985년에는 대영박물관의 운석 연감(Catalogue of Meteorites)에도 실었다.
마침 UCLA에 방문교수로 가있던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의 이민성 교수가 이 연감을 보고 소재지를 확인했다. 추적 끝에 두원 운석이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이민성 교수는 박물관을 찾아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일본 지질학자들에게도 일본 정부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들이 들어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끈질긴 이 교수는 친한 도쿄대학 시마자키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가토 고이이치(加藤 紘一) 중의원을 움직여 반환을 받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 방일 관련한 반환설은 낭설인 듯하다.
두원 운석 낙하지점 기념 조형물, ⓒ 전영식
발견지는 밭사이에 감춰져 있고 지금이라도 운석이 떨어질 듯 하늘이 열려있다. 아무도 안 찾아오는지 진입로는 불친절하고 모형의 전시상태도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고흥에 떨어진 운석은 관례에 따라 동네이름을 따서 두원 운석이라 불었고, 동네길은 운석의 이름을 따서 두원운석로라고 한다. 500m만 빗겨 떨어졌다면 바다에 낙하하여 발견되지 못할 뻔했다.
두원운석 표본, ⓒ 전영식
나로 우주센터
고흥 운석이 낙하한 후 50여 년 후, 우리나라는 2001년 1월 30일 우주개발의 전초기지인 위성 발사장 우주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11개 지역 후보지를 대상으로 발사 가능 방위각, 비행경로상 안전 확보, 외국 영공 통과 금지 등 여러 조건을 비교한 후, 전남 고흥과 경남 남해 2곳을 발사장 후보지로 압축하고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우주발사체 발사에 필요한 여러 조건과 부지확보 용이성 등 다각적인 검토 끝에 전남 고흥군의 외나로도를 우주센터 부지로 최종 선정했다. 나로우주센터는 2003년 8월에 건설을 시작하여 2009년 6월 준공됐다. 그제야 우리나라는 세계 13번째 우주센터 보유국이 됐다.
누리호 발사 2021.10.21 출처: Wikimedia commons by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센터 입지조건
우주센터는 만들고 싶다고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없다. 적어도 북한 같은 막무가내 국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우주센터의 입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누리호 발사궤적,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1) 발사한 로켓 등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 반경 1.2km의 안전 구역이 확보되어야 한다.
2) 외국 영공(고도 100km)을 직접 통과하지 않아야 한다.
3) 1단 50km, 2단 500km, 3단 3,500km 상공 등에서 최소 3단계 이상의 분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로켓물 낙하에 따른 안전을 위해 발사 궤적에 인구밀집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영토가 없어야 한다.
4) 한국처럼 발사 때 적도의 정지궤도위성보다 큰 궤도경사각이 필요한 곳에서는 적당한 위도에서 남쪽으로 발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5) 안전 발사를 위해, 발사 시에 발사장이나 예정비행경로 18km 이내에 벼락이 없어야 한다.
6) 발사 15분 전에 땅으로부터 9km 상공의 전압계강도(낙뢰 때 구름과 땅 사이에 발생하는 전기)가 1 Kvolt/m여야 한다.
나로 우주 센터는 이조건에 걸맞아 국내 최초의 우주센터로 선정됐다. 이로서 고흥은 우주로 나가는 길이 됐다.
누리호 발사 2021.10.21 출처: Wikimedia commons by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주변에 다른 국가들이 붙어 있어서, 발사에 따른 조건이 맞는 곳을 찾기 힘들다. 위도상 정지궤도에 올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남북으로 선회하는 저궤도 위성만이 가능하다. 나로우주센터의 경우, 발사 방향은 경도를 기준으로 170도 정도 남쪽으로만 발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향후에 제2우주 센터의 건설이 요구되는데, 가장 입지 조건이 좋은 제주도 대정지역이 주민과 지자체의 반대에 직면해 있어 그때까지는 나로우주센터가 우리의 유일한 우주통로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누리호 발사 2021.10.21 출처: Wikimedia commons by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정 당시 후보지 중 이들 조건에 적합하고 주민들의 동의가 있었던 고흥 외나로도에 나로 우주센터가 최종 선정되었다. 이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가 만들어진 고흥은 우주시대를 여는 핵심지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23년 3월 고흥은 나로우주센터와 연계한 우주산업 국가산단 조성 후보지로 지정됐다. 나로우주센터 인근 외나로도 일원에 2031년까지 우주발사체 조립·부품 제조 기업, 연구기관 등이 입주하는 우주발사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민간 발사장, 사업화센터, 교육·휴양·연수시설을 갖춘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 산단이 조성되면 우주발사체 기업과 연구기관이 집적화되고 2조 6천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만여 명의 고용유발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2024년 6월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면서 사업에 추진력이 생기고 있다. 또 광주~고흥 우주고속도로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고흥이 깨어나고 있다.
꿈을 품다, 거금도 휴게소
녹동항에서 소록도를 지나 인도, 자전거 도로와 차도를 구분한 우리나라의 최초의 복층 다리인 거금대교(사장교 1116m)를 건너면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인 거금도가 나온다. 초입의 거금휴게소에는 바닷가를 바라보는 전망대만큼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은빛 사람 모양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이름은 "꿈을 품다"인데 잠들었던 고흥을 깨어난 거인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우주의 별을 잡을 듯한 모습으로 경쾌하게 서 있다. 떨어지는 운석을 잡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우주선에 인사를 하기 위한 포즈인가 자못 이중적인 모습이다.
거금휴게소의 "꿈을 품다", ⓒ 전영식
고흥지도 ① 두원 운석 낙하지 ② 나로 우주센터 ③ 거금도휴게소, 지도출처: 네이버
고흥에는 1,000여 개 이상의 고인돌이 있다. 두원면 운대리 출토 비파형 동검 편, 석검과 소록도 출토 구리거울, 돌도끼, 돌살촉, 반월형 돌칼, 유구 석구 등 다수의 석기류 문화재가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석실고분도 도화면 봉룡리와 당오리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기시대부터 우주시대의 모든 유물이 발견되는 곳은 고흥뿐일 것이다. 또한 환상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짙은 색채의 채색화로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화가 천경자(千鏡子, 1924-2015)의 고향도 고흥읍 옥하리이다. 한국의 지평을 우주로 넓히는 고흥의 미래가 아름다운 색들로 가득 차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