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Feb 04. 2023

무릉도원이 있는 곳, 영월

문화유산 지질학

영월은 행정구역의 길이 면에서 전국 군 중에서 가장 길다(길이 75km). 제주도의 장축의 길이만 하다. 우리나라 행정구역 중 홍천군이 가장 긴 군으로 알려졌는데(95.7km) 이는 한국전쟁에 따라 인제군의 내면(內面)이 편입된 결과인 것을 감안하면 역사적으로는 가장 긴 군은 영월군인 듯하다.


영월의 행정구역, 출처: 영원군청


이렇게 길다 보니 군청이 있는 영월읍이 경제적 중심지가 되지 못하고 인근 원주나 제천의 생활권에 들어가 있다. 시멘트, 석탄 등에 번성하다가 이젠 이러다 할 산업이 없는 한갓진 동네로 돌아갔다. 영월은 단종이 유배를 갈 만큼 예로부터 교통이 심심산골이다. 요즘 단종 유배길이 조성되어 관광 상품화되어 있다.


창덕궁에서 시작된 단종의 유배일정은 광나루를 건너고 이포나루를 지나 원주를 거쳐 영월군 주천면 어음정 인근에서 유배길의 마지막 밤을 보낸 후 6일 만에 청령포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주천면에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단종이 이곳에서 쉬어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주천면은 넓은 평야를 품고 있다. 부자 동네라 영월읍보다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주천이라는 지명은 ‘술이 솟는 샘’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행 등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중종 25)>에 따르면 이 술샘에서는 양반이 가면 청주가, 천민이 가면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청주가 먹고 싶던 천민이 양반 옷을 입고 샘에 갔는데 탁주가 나오는 바람에 술샘을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후로는 술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윈난성에는 샹그릴라가 있다면 강원도 영월에는 무릉도원이 있다.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원화기>에 나오는 별천지를 뜻한다. 무릉도원면(武陵桃源面)은 영월군의 가장 서쪽 면인데 예전에 수주면이던 것을 2016년 면내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 면내에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사자산 법흥사(獅子山 法興寺)가 있다. 그 후 구산선문(禪門九山) 중 사자선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지금은 고찰의 흔적은 찾을 길 없는 사찰로 남아있다.


요선정



어떻게 보면 가장 무릉도원스러운 곳은 요선정이다. 면소재지에서 주천강을 건너 무릉법흥로를 따라 약 2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요선정(邀仙亭)이 있다. ‘요선정(邀僊亭)’, ’모성헌(慕聖軒)’이라는 두 개의 현판이 붙어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작은 정자다.


숙종, 영조, 정조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다. 소실된 숙종의 시를 영조가 다시 썼고 그 후 정조도 추가로 어제를 내리게 된다. 원래 청허루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허물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 어제 현판은 일본인 주천면 경찰지소장이 갖고 있었는데, 이를 불편히 여긴 요선계 계원들이 많은 돈을 주고 다시 매입, 이를 봉안하기 위해 요선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조대왕 어제어필시문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요선정 앞마당 절벽 위 커다란 바위에는 새겨진 높이 3.5m의 마애불이 있는데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도유형문화재 제74호)이다. 커다란 흔들바위 같은 핵석(구상풍화작용을 받은 동글동글한 돌)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겨 놓았다.


마애불이 동서향을 하고 있고 그 앞이 경사가 급해 전체를 관찰하기 불편하다. 정성권의 논문에 게재된 3D 스캔본에서 그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연꽃무늬 머리 광배와 두줄 약식으로 표시한 몸의 광배가 새겨져 있고 육계는 분명 하나 나발은 희미하다.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는 백호가 있고 이목구비가 큼직한데 인상은 인자하지 않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손등을 보이는데 왼손은 어깨까지 올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발바닥이 특이하게 앞을 향해 있다. 상반신은 볼만하나 하반신은 비례가 맞지 않게 크게 새겼다. 둥근 암석의 한계인지 장인의 한계인지 가름할 수 없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3D 실측그림, 출처: 정성권


무릉리 마애불상의 조성시기는 당초 정영호가 1961년 ‘영월 무릉리의 청석탑과 마애좌상’이라는 글에서 나말여초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정성권은 법흥사 초입에 위치한 흥녕선원이 10세기 중후 반경애 중창되었고 마애불 두광의 경우 흥녕선원에서 10세기 중·후반 경 사용한 막새와 화판의 모양이 유사한 점과 마애불의 독특한 발 모양이 985년에 조성된 고령 개포동 마애보살좌상의 발과 닮은 점을 들어 10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추정하였다.


무릉리 5층 청석탑

 


또 마당 가운데는 5층 사각 청석탑이 남아 있다. 탑신석은 2~4층만 남아 있는데 점판암을 시멘트로 고정시켜 놓았다. 상륜부는 흔적이 없다. 탑신석에는 각 면에 불교문자인 범어(梵語)가 3 글자씩 새겨져 있는데 훼손이 심하다. 옥개석 4개만 간신히 남아 있는데 낙수면의 곡선이 아름답다. 옥개석 받침은 2단이다. 기단은 2단이며 원래 기단은 사라지고 후대에 화강암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수직축이 삐뚤어져 있다. 기단 중석의 면석에는 한 개의 탱주와 양 우주가 새겨져 있고, 기단 갑석 윗면에는 2단의 초층 탑신받침이 조성되어 있다. 정성권은 14세기경 조성된 탑으로 추정하였다.


청석탑은 점판암으로 만든 탑인데 고려 초기에 잠시 유행하다 사라진 이형탑이다.  강원도에서는 원주에 보문사, 입석사에 있고 가장 북쪽에서 발견되는 탑이 바로 무릉리 5층탑 청석탑이다. 같은 사각형 평면인 의성 대곡사의 청석탑과 비교했을 때, 각층의 크기 비례가 맞지 않고 차이가 없는 점으로 보아 여러 개의 옥개석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요선정 5층 청석탑의 탑신부의 범어 각자


요선암 돌개구멍


요선정 아래에는 미륵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주천 강변으로 내려가면 영월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543호이다. 요선암(邀仙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란 뜻인데 조선시대 4대 명필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평창군수로 재직할 때, 암반 위에 ‘요선암’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훼손한 범인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글자는 현재 풍화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무릉도원면에서 가장 급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


요선암 돌개구멍에 가보면 강가의 한쪽 편에 듬성듬성 노출된 화강암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동그랗게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지형을 포트홀(Pot hole)이라고 하는데 하천이 흐르면서 바닥의 작은 틈으로 모래와 자갈이 들어가서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과 함께 와동류(회오리가 이는 듯한 물살)가 발생하고 반복적인 회전운동으로 암석이 깎여 만들어진다.


돌개구멍의 형성과정, 출처: 두산백과


주로 사암이나 화강암과 같은 단단한 암석에 잘 만들어지며, 이곳은 흑운모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트홀의 크기가 큰 것은 지름과 깊이가 수 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포트홀은 깊은 항아리 모양을 이룬다. 원형이나 타원형이 대부분이다. 포트홀은 커지면서 주변의 구멍과 합쳐지거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없어진다.


여러 형태와 규모의 돌개구멍들이 화강암반 하상 위에 폭넓게 발달되어 있어, 하천의 윤회와 유수에 의한 하식작용 등을 밝힐 수 있는 학술 가치가 크다. 그리고 여러 개의 돌개구멍이 어우러져 지형자체가 가지는 경관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또한 사진가들의 출사 장소로 인기가 높다. 많은 폭포들이 포트홀이며, 밀양의 호박소, 청송 백석탄, 부안 채석강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국가지질공원


강원도는 요선암 돌개구멍을 포함하여 2016년에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받은 바 있다. 지질공원은 지질, 자연, 문화, 역사를 연계하여 교육과 관광에 활용되는 곳이다. 현재 국내에는 13곳의 지질공원이 지정되어 있고 2022년 4월 현재 4개(제주도,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되었다. 부산과 백두산은 심사 중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가지질공원 사이트를 방문하면 알 수 있다.


설구산(502.9m)의 주변부인 요선암 일대는 중생대 쥐라기 흑운모화강암으로 되어있다. 요선암은 오른편으로는 화강암이 관입한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의 조선계 대석회암층인 입탄리층으로 둘러 쌓여 있다. 주로 백색의 석회암 및 돌로마이트가 얇게 층을 이루는 천매암과 편암이 협재되어 있다.


영월은 고생대 이후의 습곡작용으로 지표의 지질이 매우 복잡하다. 변성암과 화성암 및 퇴적암이 어우러져 있다. 인생도 그러하듯 다채로운 암석들이 아름다운 경치와 유산을 남겨놓은 듯하다.


영월과 인연이 된 지도 수십 년이지만 지금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발견은 새로운 것이 아닌 모르던 것을 알게 될 때 붙이는 단어인가 보다. 평상시 모습과 마음을 가지고 주천 술샘에 가면 나에게는 어떤 술이 나올지 상상을 해본다. 만약 어떤 술을 한잔 얻는다면 이것은 나에 대한 발견일 것이다.


참고문헌


1.     김남희, 2010, 강원지역 통일신라∙고려시대 석탑의 연구, 강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     김선, 2020, 제주 수정사지 출토 청석탑의 제작지 검토,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제95권, p.67~86

3.     영월도폭, 1979, 한국지질자원연구원

4.     정성권, 2017,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청석탑의 조성시기와 배경, 동악미술사학 제21호 p.81~115

5.     최복일, 2019, 한국의 마애불, 달아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