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45억 6천만 년 전에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을 습관적으로 구분하는 존재다. 뭔가의 차이로 서로 다른 시기로 인식한다.단편적인 예가 정권을 갖은 씨족에 따라 나누는 조선, 고려, 신라의 구분이다.
지질시대의 구분
지구의 역사는 주로 생명체의 존재와 멸종으로 그 시대를 나는다. 캠브리아기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가 그것이다. 그 이하의 시기는 좀 더 세분화한 용어로 구분한다.
생물학에서 생물종을 종, 속, 과, 목, 강, 문, 계로 나누듯 지질학에서는 기간을 누대(eon), 대(era), 기(紀, period), 세(世, epoch), 절(age)로 나눈다. 예를 들면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쥐라기로 나뉘고,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나뉜다.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홍적세, 洪積世), 홀로세(충적세, 沖積世)로 나눈다.(간혹 신문기사에서 홍적세를 갱신세, 충적세를 완신세로 표현하는데 이는 일본의 방식이다.)
지질학적으로 현재는 현생누대-신생대-4기-홀로세-메갈라야절로 불린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재까지로 인류가 농경문화를 발달시킨 후 지금까지의 시기이며 1만 1700년간 이어져왔다. 인류세가 인정되면 홀로세 이후에 새로운 세가 만들어지고 크로퍼드절이 생길지도 모른다.
지질학적으로 현재는 현생누대-신생대-4기-홀로세-메갈라야절로 불린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재까지로 인류가 농경문화를 발달시킨 후 지금까지의 시기이며 1만 1700년간 이어져왔다. 인류세가 인정되면 홀로세 이후에 새로운 세가 만들어지고 크로퍼드절이 생길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질환경에 미치는 영향
이제 누구도 인간이 지구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게 건설 흔적이든 쓰레기든 방사능이든 닭뼈든 흔적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번잡스럽고 어수선한 종으로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일개미같이 주변을 변화시킨다.
인류가 지구표면에 남긴 발자국을 상징하는 그림, 출처: New Atlas
인류가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대략 농경사회를 시작하면서 대규모 농업이 시작되어 개간을 하고 수리시설을 사용하면서부터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그렇게 큰 영향이 없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광업이 발달하여 대기 중으로 오염물질을 내뿜으면서 지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차 대전 기간 중 원자폭탄 등을 사용하면서 방사능의 흔적이 피할 수 없이 남게 되었다. 이후 대량 소비사회의 각종 쓰레기 오염은 그 이전 시기와는 다른 뚜렷한 인간종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세의 논의
폴 크뤼천(Paul Crutzen), 출처: European Parliament
인류세(人類世·안드로포신·Anthropocene)는 네덜란드의 화학자인 폴 크뤼천(Paul Crutzen, 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계속되던 충적세가 끝나고, 이제 과거의 충적세와는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다. 그동안 인류는 한 번의 쉽도 없이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했는데 인류가 진화해 온 안정적이고 회복가능한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엘니뇨·라니냐·라마마와 같은 해수의 이상기온 현상,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화학·생물 등 지구의 환경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이제 인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구환경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자업자득이다.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이기 때문에 범인의 이름을 넣는다.
인류세 국제표준층서구역(GSSP)
표준지층으로 선정된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포드 호수, 출처: AP/뉴시스
지질시대를 정하기 위해서는 표준지(층)를 선정해야 한다.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려면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지층을 골라야 한다. 지질학자들은 어떤 시대의 시작점을 황금못(golden spike)라고 부른다. 다음 시대의 시작점은 이전 시대의 종말점이니 시작점만 정하면 된다. 이는 세계지질학연합(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 IUGS)의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ICS)에서 정한다.
국제층서위원회 산하 인류세 워킹 그룹(AWG)은 인류세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표본지 후보로 ▲ 일본 규슈섬 벳푸만 해양 퇴적물 ▲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 호수 진흙층 ▲ 호주 플린더스 산호해 산호 ▲ 발트해 고틀란드 분지 해양 퇴적물 ▲ 남극 팔머 빙핵 얼음 ▲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빌호 퇴적층 ▲ 중국 지린성 쓰하이룽완 호수 진흙 ▲ 폴란드 수데테스산맥 늪지 토탄 ▲ 멕시코만 웨스트 플라워가든 뱅크 산호 등이 올랐다.
CNN방송은 2023년 7월 11일, 35명의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 워킹 그룹(AWG)이 투표를 통해 9개 후보지 중 퇴적물에 인류의 핵실험 흔적이 남아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 호수 (Crowford lake)를 인류세 표본지, 즉 국제표준층서구역(GSSP)으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크로퍼드 호수의 퇴적층, 출처: AFP=연합뉴스
AWG 소속 지질학자들은 크로포드 호수 지층에 나타난 핵폭발로 인한 플루토늄과 방사성 탄소의 급격한 변화,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비산재 등이 인류가 지질에 변화를 준 “가장 명확하고 뚜렷한 변화”라고 밝혔다.
향후 논의 전개 방향
논의가 확정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ICS 소위원회와 ICS 투표에서 6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최종 인준은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37차 세계지질과학총회(IGC)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지구과학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인데, 과학자들 간의 관점과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또한 지난 기간 과학적인 성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대한 학자 간의 협의 과정으로 일반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고 따분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내년 부산에서 결정이 난다고 해서 세계의 지구과학자들이 한꺼번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회에서 더 논의될 수 있으며 반론이나 개선안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 합의가 국제조약 같은 강제성도 없고 인류세의 흔적이 어느 나라에서나 뚜렷이 발견하기도 힘들다. 각 나라의 입장에 맞게 소화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과서에 정식으로 소개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신생대 끝에 혹처럼 붙은 인류세를 외워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세로 이름이 붙는다고 해도 당장은 달라질 것은 없다. 단지 지구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우리의 행동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 후손은 자기 종족의 이름이 새겨진 지질시대를 배우며 자랑스러워할지 부끄러워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모든 종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지구는 우리와 상관없이 쭉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