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프랑스개똥밭엔 항상 비가 내린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너의 몫

(2024년 2월 29일 브런치 입성할 때 쓴 첫 글입니다.. )



지난주 비 오는 날, 폰 액정이 깨졌다.


한 번도 폰을 떨어트린 적이 없지만..

십 년이다, 살면서 한 번은 이렇게 되나 보다.

되어야 하나 보다.


2월 7일, 2024년 겨울 세일의 마지막 날이라 까르푸에 갔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무거운 장바구니 두 개를 들고 절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손에 힘이 풀리고 그렇게 폰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빗물로 축축해진 시멘트 바닥에 유리 화면이 쩍,하고 닿았다.


물기를 닦고 무표정하고 느린 동작으로 버스앱을 열어본다. 원래 예정된 버스는 취소되어서 다음 버스까지 30분을 더 기다리라는 통보가 떠 있다. 여느 때처럼.





같이 사는 마이너스의 손에는 화면이 깨졌거나 충전 문제가 있는 여섯 개의 폰이 있다.


지하로 내려갔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바로 꾹 참는다.


40초 안에 찾아야 한다. 빠르게 서랍들을 열어 보니 넷째 칸에 폰들이 들어있다. 까만색 하나를 골라 꺼냈다.


반지하라 햇빛도 들고 창문을 열면 바로 정원이라 꽃도 보이지만 그가 남겨놓은 감정의 쓰레기가 가구처럼 박혀있는 이곳은 그 어느 지하감옥보다 어둡다.


달콤한 체리향으로 위장한 이 지독한 냄새는 지난주엔 딸기였고 지난달에는 민트였다.


빨리 저 곳을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내 온 몸에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 지하의 잔내에 진저리를 친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었다.


신박한 새 상품을 구입하지도 않았고, 못했고, 또 쿨하게 버리지도 못하는 그. 저렇게 모두 모아두고, 쌓아두고 그 속에 처박혀 사는 것을 참 루저스럽다고 여겼다. 신박한 새 상품을 사지도 않고, 못하는, 내 처지에서 할 말은 할 생각은 아니지만.


과거에 찌든 그의 폰 하나가 강제 소생되었다.





2013년 한국에서 산 아이폰5s화이트는 9년을 함께 한 내 생애 첫 스마트폰이었다.


손에 딱 잡히고 어디 하나 찍힌 곳도 없고 착한 아이였는데.. 배터리 상태만 웬만했어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저 인간과 결혼 전에 롱디의 끝 자락에 페이스타임을 사용하면 국제카드 이제 안 써도 된다는 친구의 말에 동네 폰가게에 가서 당장 샀었지.


뭐가 그리 급했니, 현금 일시불 결제라니..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자기기만인건니, 이 모두가 다?


절박했던 건 너였던 것 같아 보이네..?


그럼 네가 변한 거네, 저 인간은 그때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 않아?


애초에 사랑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모여 함께 세월을 좀먹고 있는 거니?


그따위 삶.


네 아이에게 대놓고 학습시키고 있는 도의적인 책임은 어떻게 질건대..?



너네들..



도대체......



뭐 하냐..?





이번에 비오는 날 깨진 건 내 생애 두 번째 스마트폰이었다.


2022년, 파리 오페라역에서 중고거래로 70유로에 산 아이폰6화이트였다. 유난히 낮은 가격에 뭔가 미심쩍었지만 설마 하며 일단 약속을 잡았다. 만나고 보니 더더욱 미심쩍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환불되냐고 물었다. 그러실 거면 지금 말씀하시라고 한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배터리 90프로라는 벼룩시장 광고와는 달리 거의 폐급 수준의 소모 역량을 뿜어낸다.


저 인간이 한 번 해보겠단다.

고장 난 것만 보면 순간 감전된 것 마냔 부들부들 떠는 너. 역시 안되었다. 그럼 회사에 내일 좀 가지고 가야겠단다. 직장 동료가 배터리를 사서 갈아 끼우는 걸 봤는데 20유로로 배터리만 사서 교체할 수 있단다. 저녁이 되어 그는 얼굴 한가득 만연한 미소를 장착하고 폰을 내밀었다.


이 인간이 회사에서 그래도 완전히 매장당한 것은 아니구나, 사람이 옆에 적어도 하나는 있구나 하는 안도감까지 느끼며 감사히 그래도 그렇게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사용하면 할수록 뭔가 싸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터였다. 개인정보 도청 뭐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에 항상 찝찝했다.


그러던 차에 이 사달이 나서 인가. 액정화면이 깨져도 그렇게 실감도 안 나고 화도 안 났다.


네 신세나 내 신세나..



그렇게 나는 2024년 2월, 지하세계에서 소생된 생애 세 번째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폰 6s블랙이다.

얘도 액정 아래가 약간 부서지고 금이 한 줄 윗부분까지 뻗어있다. 스카치테이프를 쭉 빼서 가위로 툭 잘라서 홈버튼 쪽 깨진 부분부터 카메라 언저리까지 쭉 이어 붙였다. 어쩌다 모자이크 처리된 유리조각들이 흩어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배터리충전할 때 충전선이 폰에서 툭툭 떨어져 나가서 한 번씩 다시 꽂아줘야 하지만 일단은 함께 간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산은 산이고 그래 물은 물이다.


유심칩을 갈아 끼웠다.





헌 새 폰에 익숙지도 않고 별 감흥도 없어서 거의 설정을 건드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문자와 전화가 소리도 안 나고 알림 창에 뭐가 뜨지도 않는 상태였다.


문자메시지 아이콘을 클릭하고 들어가야지 문자메시지가 왔는지 안 왔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될 줄 이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설정을 바로 업데이트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도의 에너지라도 있었다면, 혹은 비 오는 그날 정신줄 놓고 그렇게 버스정류장에서 멍을 때리고만 있지 않았더라면, 더라면, 았다면, 않았다면....



이렇게 크게 전화와 문자에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중이었다. 요 며칠은.


그러다 오늘 아침에 소리도 진동도 없이 깜빡깜빡 울리고 있는 차단된 번호라 뜨는 전화가 오고 있는 것을 우연히 봤다.


받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아동보호센터의 방쌍선생님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어제저녁에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일 수도 있다 싶어서 받지 않았다.


음성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방쌍선생님이다. 오후에 다시 걸겠다 한다. 사실 공공기관을 제외하고 개인으로 차단메시지를 띄울 정도로 그가 내게 집착할 이유는 없음을 상기하지 못할 정도로 그 순간 나는 지쳐있었다.


우습지만 난 똥이 무서워서 피했다.



"지난 하루는 어땠나요?"


"어제 센터를 나와서 장을 보고 아이에게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주었어요. 오늘도 아이를 점심때 픽업해서 식사를 챙겨주었고, 아이에게 '네가 오후에 하교하기 전에 중간에 이렇게 점심을 함께하며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 좋다'며 얘기했더니 기쁜 기색이 역력했어요. 음.. 그리고 양배추도 주스기에 착즙 하고.. 부엌에서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안심하고 거실에 가서 잘 놀더라고요. 개학한 지 이틀 되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해요 거기다 엄마 기분까지 챙기는 딸내미를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겠다 싶어 밤 열한 시가 되기 전에 잠을 청하려고 결심했는데.. "


"남편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뇨, 애 아빠는 제게 식사 차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고 함께 저녁밥 먹은 후엔 저는 그냥 이층으로 올라왔어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시간에 맞춰 재웠고요. 선생님께서 어제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조언을 해 주신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자기 전에 알람설정을 하려고 집어 든 휴대폰을 보고 잠이 확 깨버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새벽이 되어서도 애꿎은 폰시계만 계속 확인하고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또 그렇게 힘든 아침을 맞이했어요."


"휴대폰이요?"


"문자가 온 것을 알람설정할 때야 봤어요. 애 할아버지가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 아이가 벌써 여덟 살인데 이대로는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손녀를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법이 있으니 고소장을 보내겠다'며 오전과 오후 세 번에 걸친 장문의 문자폭탄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거의 쌍욕을 얻어먹은 것 이상의 타격을 입고 서럽고 황망해서 잠들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


"남편과는 얘기해 봤나요?"


"그 밤에 이걸 보여주면 회사스트레스에 더해 어떻게 변할 줄 모르고 혹시라도 그러다 아이도 잠을 설치면 곤란해서요. 아침에 얘기하려고 했지만, 아침이 되고 보니 이미 엄청 피곤해 보였어요. 그리고 화요일은 그 사람이 자택근무라 집에 있는데 11시 반에 아이 점심 먹이러 데리러 가야 하는 데 이런 얘기하면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서 아이가 집에서도 쉬다가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못했어요."


"그래도 대화해 보세요, 다음 주 예약시간에 뵐게요 "


"네, 나한테 이 정도로 보냈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얘기를 해도 더 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문자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견고할 것이다.


허술하디 허술해보이는 그 교집합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너다.


결국 네 뒤통수를치는 것은 결국 너 자신이었다. 어리석었다.



#바람이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