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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장공장장 Apr 16. 2023

목소리의 주인 제작기 3화

허균이 꿈꿨던 세상은?

우리에게 허균은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허균은 그의 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허균이라는 인물의 재능을 '문학'만으로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허균은 정치가이자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사상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호민론'이지요. 그는 백성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목소리의 주인 대본 일부

음악극 목소리의 주인 대사 일부입니다. 위 내용은 작가 이장공장장이 상상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항민과 원민, 그리고 호민은 허균이 직접 한 말이거든요. 허균은 백성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자만이 군주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호민이 많아야 세상이 변화한다.

높은 사람일수록 백성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하지만 허균의 바람과는 달리, 당시 조선사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조선은 양반과 양반이 아닌 자들로 구분된 사회였습니다. 양반 중에서도 특히 서얼은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 손곡 이달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달은 서얼이었으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하게 살았기 때문이지요. 서얼들 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천민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허균은 이런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리고 양반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뜻을 관철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권력자와 사대부들은 허균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았습니다. 기득권들에게 있어, 허균은 조선사회를 뒤흔들 수도 있는 문제아이자 시대의 이단아였던 것입니다.

노래 호민론/ 허균(이창혁) 이이첨(추현종)

목소리의 주인 대본 일부

위 노래의 제목은 '호민론'입니다. 허균과 그의 정적인 이이첨이 백성을 두고 (혹은 그에 관한 해석을 두고) 벌이는 토론을 노래화 한 것입니다. 이이첨은 백성을 힘으로 눌러야 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허균은 백성을 존중하되 무서워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품 상에서 둘의 사상은 시종일관 대립을 하며 끝내 큰 싸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장공장장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목소리의 주인'을 집필했습니다.

허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옹기종기 모여? 허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연팀

허균의 이야기가 오늘날에 다시 소환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당시 조선시대처럼,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 또한 여전히 소란스럽고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배경과 힘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기득권자들,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는 고위공직자들. 호민이 많아져야 세상이 변화한다는 허균의 말 기억하시나요? 허균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통용되는 주제이자 사상인 것입니다. 때문에 극단 안녕팩토리와 이장공장장은 수 세기 전의 인물인 허균을 불러내어 '목소리의 주인'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안녕팩토리만의 음악극이란?

지난번에 이장공장장은 뮤지컬과 음악극의 차이가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노래로 서사가 진행되면 뮤지컬, 대사로 진행되면 음악극이라고 말이지요. 지금도 저는 이 지점이 가장 확실한 구분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예술은 융복합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장르의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다원예술'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다원예술 프로젝트 도미노

실제로 이장공장장 또한 실험적인 다원예술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도미노'라는 콘셉트의 공연이었는데 시인, 작곡가, 무용가,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매거진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앞서 주제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현대예술에서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의미가 있다"라고 여깁니다. 특히 음악극처럼 장르적 특성이 모호하고 발전의 여지가 많은 예술 장르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이장공장장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창작자들이 점점 많아져야 공모전에서도 연극/뮤지컬 외에 음악극란이 추가되지 않을까요? (웃음)

기본적인 음악극의 구분법 외에도 이장공장장과 저희 안녕팩토리 창작진들은 '우리들만의 음악극을 정립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하였습니다. 때문에 극단안녕팩토리에서 나오는, 앞으로 나오게 될 음악극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 거의 모든 씬에 배경음악 삽입

때문에 음악과 장면이 어우려 저 이 공연 자체가 하나의 음악처럼 보일 수 있게 합니다.

연극이나 뮤지컬에도 배경음악이 들어가지만, 지금 안팩이 제안한 것처럼 많은 음악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2. 내레이션 기법 도입.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 극 주요 요소마다 나옵니다. 관객은 내레이터의 음성을 들으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혹은 소설을 읽어주는 스토리텔러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한 때 대학로에서는 소설을 연극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소설의 기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각색작품을 선보이곤 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건 소설을 연극에 접목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것뿐이지요.

3. 노블시어터/소설극장

때문에 저는 소설의 묘사와 장면 설명 기법을 음악극에 도입했습니다. 성우나 여배우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매 씬마다 다큐멘터리, 혹은 낭송 소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노블시어터/소설극장'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기법은 몇 년 전부터 제가 실험해 온 하나의 작법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을 통해서 앞서 세 가지 기법을 전부 반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녕팩토리만의 음악극에 대한 정의와 기준일 뿐, 다른 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현재로서 이것이 음악극의 기준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실험 중입니다.

저희는 음악극을 여러 방식으로 정의하고 싶었고,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레이션을 활용한 창작음악극. 디어파파 마이파이어맨. 이장공장장 극작/연출

우리의 전통무예 결련택견.

목소리의 주인에서는 홍길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액션신을 선보입니다. 저는 당연히 홍길동이 하는 무술은 택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홍길동이 가라데나 우슈, 절권도를 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을까요? 특히, 결련택견의 호패술은 홍길동이 다루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련택견협회 도기현 회장님께 직접 가르치는 모습

도기현 회장님께서는 워낙 유명한 분이시지요. 마스터 황, 황인무 선생님의 스승님이시기도 합니다. 회장님은 다양한 영화의 액션 씬 무술감독, 그리도 대형 연극에서도 무술신을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하셨답니다. 진짜, 다짜고짜 찾아가서 무술감독님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웃음) 그 호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평일에는 대학로에 있는 결련택견협회 도장에서 배우들이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수련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저희 연습실로 찾아와 직접 홍길동의 검술을 봐주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