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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공포

11. 공포

by 왕십리

6월 29일


마을 어귀에는 어느새 그 여자를 찾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는 점점 조여드는 압박감에 휩싸였다. 사건에 대한 현장 분위기가 궁금한 그는 그날 행적을 거슬러 도로를 따라 슈퍼에 들렸다. 그곳 안팎으로도 그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주인과 마을 사람이 전단지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과수원집 새댁이라며. 뭐 요즘 외국 신부들 없어지는 것 비일비재하잖아요. 영주권만 얻으면 금방 없어진다는 고만."

“한국에 시집온 지 1년도 안 되었다는데 아마 알고 지내는 필리핀 남자도 있었다지요."

“설마 임신한 몸으로 남자와 도망갔겠어요?"

“그야 알 수가 없지, 모르지만 그 아이도 필리핀 남자아이 일 수도 있잖겠어요?"

“여자의 우산이 집 입구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집 앞에서 납치된 것 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우산이야 언제 버려진 것인지 알 수 없잖아요."

'우산? 우산은 없었는데? 우산이 어디에서 발견됐다는 거지?' 그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마 그 여자 지금 어쩌면 필리핀에 가 있는지도 모르지."

“그것은 아니래요. 경찰이 출입국 기록 다 조사했고 아마 그 여자친구들과 필리핀 남자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생각보다 경찰의 관심은 아주 먼 곳에 있고 거리의 돌아가는 상황도 아직까지는 안심되는 분위기였다. 그는 술과 안주 등을 사 들고 돌아왔다.



7월 3일


[불안할 때에는 세상 보이는 모든 것이 힘들 뿐이다.

운명은 그를 원치 않은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는 과연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나?]


비가 엄청 내리고 있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지.' 오늘은 그날보다 훨씬 강한 비바람이 예상된다.

'이러다 혹시 빗물에 흙이 쓸려나가 시체가 노출되거나 하지 않을까?' 그는 걱정으로 도저히 집에 앉아있을 수 없어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어느덧 그 현장을 찾았다. 빗속의 저수지는 마치 저주받은 수렁의 모습으로 칠흑같이 어둡고 개미 한 마리 찾을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그곳을 응시하며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곳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가슴은 계속 두 방망이 친다. 다 가기도 전에 먼 거리의 어둠 속에서 흙 위로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고 그는 기겁하여 넘어질 뻔했다. 여자의 다리 한쪽이 흙 위로 쏟아 올라와 있었다.

‘이런 이를 어쩌지! 어쩌지! 누가 보지는 않았나?’ 그는 정신없이 손으로 주위 흙을 긁어 덮었지만, 빗물에 흙은 쓸려내려 하얀 발은 또 나타난다. 그는 계속 흙을 파고 덮고 하느라 빗물로 진창이 된 흙바닥으로 자신의 발목이 빠져 드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발이 흙에서 빠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여자가 땅속에서 자신의 두 발목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안돼! 안돼! 내가 잘못했어!" 그는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 허우적거리다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비에 적시듯 땀이 흘렀다. 밖은 아직도 비가 세찬 내리고 있었다.



7월 4일


아침 일찍 그는 그림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간밤의 꿈이 너무도 생생한 것이 불안하여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날은 화창하고 여전히 하늘은 푸르다. 속이 타들어 가는 그의 마음에는 그런 모습이 야속했다. 입구에 낚싯대를 펴고 저수지 배경으로 이젤을 세팅한 후 그는 잠시 그곳을 살폈다. 별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린다. 둑방길을 따라 그곳으로 다가가서 능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직접 가는 것보다 발자국이 남지 않은 산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어두운 밤에 작업했던 그곳은 이미 풀도 자라고 있고 이상한 흔적도 보이지 않자 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됐다!’ 몇 번을 더 훑어본 다음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저수지 입구에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나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긴장하며 계속 주시하며 지나치려 할 때 차가 멈췄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아남 저수지에서 한번 뵙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일찍 나오셨네요."

그는 항상 낚시터에 펼친 이젤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기가 쉬웠던 탓이다. 그 젊은 사람은 하필 맞은편 그곳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그 장소만 확인하러 한두 시간 예상하고 왔건만 그자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자니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기온이 낮아 조황은 어려울 테니 곧 저자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겠지.’ 그러나 2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좀처럼 그자가 일어설 기미가 없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자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 장소로 다가가 소변을 본다. 땅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던 그자가 발로 바닥을 몇 번 차더니 뭔가 집어 들었다. 그것을 잠시 만지작거리다 이내 별것 아닌 듯 버리고 돌아와 다시 좌대에 앉았다.

‘뭐지?' 섬뜻하고 궁금하여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그는 그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입질은 좀 있어요?"

”아직은 조용합니다."

그는 그와 몇 마디 대화 후 돌아서며 그가 버린 물건을 찾아봤다.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그것을 재빨리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은 끊어진 금색 체인 형태의 여자 옷 장신구였다, 이것이 그 여자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이곳에서 발견될 물건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는 그자가 저수지를 떠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7월 10일


모처럼 휴일 쉬고 있는데 손자와 사위가 보고 싶다고 갑자기 장인과 장모님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기준이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들어서는 장모님은 사위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손자부터 찾았다. 같이 식사하는데도 장모는 말이 없었고 아들 녀석은 외할머니 무릎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갈수록 처가 앞에서는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식사 후 적당할 때 나가서 PC방에나 다녀와야겠다.'

“송 서방 회사가 이번 유럽에 지사를 설립했다고 신문에 나왔던데, 그러면 많은 인원이 파견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장인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예! 그러긴 하지만 그게 저희 부서와는 관계가 없는 마케팅 부서만 움직일 것 같습니다."

“그래! 송 서방은 해외 지사 근무 발령받으면 곤란하겠네. 가족들이 같이 나갈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렇죠! 꼭 해외 근무하라고 하면 회사 그만둬야죠.”

“그래도 그렇게 좋은 회사를 그만둘 수가 있나.”

“그나저나 지연이가 학교에 남지 않으면 곧 개원이라도 해야 되는데, 이 서방 그간 돈 좀 모아 놨나?” 줄곧 말이 없던 장모가 장인의 말을 가로채며 대화에 나섰다.

“그사이 그럴 돈을 어떻게 모읍니까? 그럼 우선 지연이도 봉급생활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요?” 기준이는 언짢은 마음에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언제 돈 모아 개원하겠어? 결혼 때 사돈께서 좀 도와주시겠다고 하지 않았나?”

“제 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희 힘으로 해 나갈 생각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경색되자 장인과 지연이가 장모를 향해 그만하라는 눈치를 보냈다. 못마땅한 기분에 표정이 굳어진 장모는 말문을 닫았다.



7월 15일


여전히 아들 주위에 감도는 냉랭한 분위기에 노심초사하는 재호 아내는 아들 대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곧 손자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아무런 언급이 없자 그녀는 역시 보모가 있을 시간에 맞춰 준비한 손자의 선물을 들고 아들 집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아들을 통해 오늘 방문하겠다고 미리 이야기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아들에게 전화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

“예? 아무도 집에 없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들어가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엄마! 그냥 돌아가세요, 아이가 아마 처가에 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오늘 애 보러 온다고 이야기 안 했어?”

“이야기했는데, 아마 생일 때까지 있겠다고 오늘 장모님이 데리고 갔다는데요.” 아들은 장모가 일부러 심통을 부린 것이라는 심증이 들었지만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재호 아내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얼떨떨했다. ’분명 어제 자신의 방문을 통보했는데 오늘 아무 말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버릴 수가 있나? 이것을 앞으로 손자를 시댁 식구와 못 만나게 하겠다는 뜻인가?‘ 그녀는 돌아오면서 사돈에게 당한 모멸감보다 아들 부부의 앞날에 심상치 않음을 다시 느끼며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이것은 아들 부부의 문제를 넘어 사돈과의 갈등이 덮쳐 더욱 복잡하진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7월 17일


“선배님 어제 안 계실 때 집에 경찰이 왔었다네요.” 그는 가슴이 소리가 들릴 정도로 철렁 내려앉았다.

“경찰이? 왜? 우리 집을?” 목이 굳어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 며칠 전 낚시터 갔던 것이 뭐가 잘 못 됐나?‘

“아! 별일은 아니고요, 아마 근처 마을에 어떤 여자가 실종됐는데 집마다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이래요. 선배님 집은 아무도 없다고 우리 집사람에게 선배님 가족 사항과 하는 일 등을 물어봐서 잘 모른다고만 이야기했답니다. 어쩌면 다시 방문할지도 모르니 알고 계시라고요.”

“고마워요.” 특별한 일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경찰에서 계속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7월 18일


초인종이 유난히 요란스럽게 울린다. 직감으로 경찰들이라 생각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정신 차리고 표정관리 잘해야 한다. 작은 허점만 보여도 불도그처럼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다.' 마당에 들어선 형사들은 생각과는 달리 아직 학생같이 젊고 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님 실례합니다,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아니 경찰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 과수원 마을 실종사건 아시죠? 지금 집집마다 다니며 정보를 좀 얻어볼까 해서요. 몇 가지만 여쭙고자 하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선임이듯 한 사람이 질문을 하는 동안 한 사람은 집 마당을 둘러본다

“6/24일 근처에서나 출퇴근길에 낯선 사람이나 차량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근래에 의심 갈만한 사항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혹시 가족분 중에도 그런 것 보신 분은 안 계실까요?”

“예 이곳에는 나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관하여 소문이나 마을에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예 없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혹시 앞으로 제보하실 사항을 발견하시면 저희 서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당을 둘러보던 형사는 차량마저 살피고 대문을 나섰다. 의심하는 표정은 전혀 아니었지만, 행여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는 않았나 걱정했다.

맥이 빠지고 지친다. 언제까지 이렇듯 공포의 순간들을 견디어 내야 할지 앞이 아득했다.



7월 20일


“아이고 이 술병 좀 봐! 도대체 웬 술을 이렇게 마시는 거예요.” 여러 가지로 피곤할 텐데 내려올 필요 없다고 말리지만, 요즘은 예전과 달리 막상 아내가 오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이 좋다.

“아니 왜 반찬은 손도 안 대고, 밥을 먹기나 하는 거예요? 이것들 다 어떻게 해! 버릴 수도 없고, 안 먹을 거면 서울로 싸 들고 오던지.” 그녀는 지난번 가져온 반찬들이 그대로 있는데도 또다시 한 봇짐 싸 들고 와 속상해했다.

“여기 냉장고가 하나 더 있어야 될 것 같고 세탁기도 너무 작지 않을까요? 옷장도 작은 방에 하나 더 있어야 되겠고.”

“아니! 지금 충분하고 더 필요하지 않은데.”

“지금이야 그렇지만 내가 곧 내려올 텐데 제대로 살림이 있어야지요. 돈을 더 들일 필요 없이 서울 것을 옮겨 와야겠네, 이제 그곳은 그렇게 큰 것이 필요치 않잖아요.”

“그렇게 급하게 내려올 필요 없잖아.”

“하루라도 빨리 와야겠어요, 당신 때문에.”

이곳에 그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으리라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는 아내가 가여웠다. 그는 자신이 아내뿐 아니라 가족들의 운명을 가지고 농락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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