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원주택 - 악마

09. 악마

by 왕십리

6월 14일


재호는 서둘러 저녁 식사 약속 장소로 갔다. 그간 자신을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쓴 김 화백을 위해 그가 자리를 마련하였다. 김 화백은 벌써 약속장소에 와 있었다. 그는 중견 화백으로 미술계에서 알려진 사람이다. 그 사람은 형주가 그 주택을 지을 때 인테리어 설계와 공사를 한 회사의 대표이며 이 지역 문화진흥협회 회장이기도 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미술에 대한 기초지식과 화법에 대한 지도를 받아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계 발을 들이게 되었다. 지난번 시청에 지역 학생과 화가들을 위하여 작품 전시회를 유치하면서 그에게 출품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는 김 화백을 위해 정한 식당은 토요일 오후인데도 손님이 없어 조용해서 좋았다.

“아! 이번에 송 선생님 작품은 훌륭했어요.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니 독특함이 살아있어요. 생동감이라고 할까! 처음 송 선생님 작품 봤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봤죠. 거친 부분만 조금 다듬어 다음 국전에도 출품해 봅시다. 앞으로 대가 되시면 뵙기 힘들 텐데 미리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그는 자신이 그림에 재질이 있음을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김 화백의 찬사가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과 이렇듯 전문가의 눈에 그런 점이 높이 평가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결국, 김 화백의 보조를 맞추려다 보니 그도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김 화백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자신도 택시를 잡으려 큰길 쪽으로 나왔다. 그는 길가에서 택시가 오는 방향을 보고 하늘을 봤다. 흑암 속 깊이 먹구름이 가득하고 후덥지근한 것이 곧 비를 쏟아내고 말 태세이다. 생각이 미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에 우산을 챙기려 왔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차 속에 들어앉자 악마가 그의 머리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비가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고 택시도 쉽게 잡힐 것 같지가 않네. 조금 취기가 있긴 하지만 운전하기에 아무 지장이 없이 말짱하고, 이곳에서 기껏 30분 거리인데 살살 가볼까! 이렇게 비 오는 평일 날에 음주 단속할 리가 없을 것이고,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구 도로로 가면 모든 것이 괜찮을 거야, 또 내일 일찍 서울로 가야 하는데 또 언제 차를 찾으러 온담’

악마의 제안에 그는 쉽게 승인하고 말았다.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며 시동을 걸었다. 핸들을 꼭 잡고 눈을 부릅뜨고 앞을 봤다. 긴장한 얼굴에 술기운도 싹 날아갔다. 도로의 물길이 갈라지는 모습이 헤드라이트에 비치자 그는 차가 물에 젖어 이상이나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과 함께 시원한 스릴감도 들었다. 멀리서 빨간 불빛만 봐도 혹시 음주단속이 아닌가 하여 몸이 움찔한다. 곧 큰길을 벗어나 큰길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구 도로로 진입하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 도로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고 앞으로 20분만 가면 된다. 밤에 세차게 내리는 비바람 속의 분위기는 그럴 때와는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이 길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끔 들러 주위 풍광과 눈을 맞춰 온 터라 우선 마음이 안정된 것이다.


그는 아직도 이혼의 충격에 힘들어하는 오늘 은지의 모습이 또다시 떠올라 가슴이 저리어 왔다. ‘그녀는 지금도 많은 위로가 필요할지도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뭘까, 그녀는 자신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것인가? 언젠가는 이 마음을 전하여야 하는 데 그것이 언제쯤인가?’


저 멀리 오른편에 들어앉은 가게의 가로등 불빛을 보며 지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불이 꺼져 있는 가게 옆을 지나 언덕길에 다다르자 저 너머에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을 보았다. 점점 밝아진 빛은 빗줄기에 산란되어 급기야 하늘을 대낮같이 밝혔다.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서 갑자기 마주한 트럭은 헤드라이트 산란한 빛과 빗줄기 때문에 달려드는 차의 폭을 가늠할 수가 없어 충돌을 피하려 그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급히 틀었다. 그러자 트럭 바퀴가 물 사례를 치며 지나가는가는 바람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묵직한 진동이 우측에서 들려왔다.

“쿵!” 아마 왼쪽을 신경 쓰다 보니 오른편에 뭐가 있었는지 보질 못했다. 다만 도로 양쪽에 그 정도의 여유는 있다고 판단했었다.

‘어 이게 뭐지? 끝에 바윗돌이 있었나?’ 아니다! 분명히 예전에 접촉사고 때 느낀 그런 것 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짝! 뻑! 이런 소리가 아니다.’ 그럴 때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지만, 지금은 심장이 멎을 정도로 오싹했다! 추돌 체는 단단한 것이 아닌 처음 겪는 그런 느낌이다.

차는 10여 m를 지나서 멈췄다. 우선 백미러로 뒤를 살폈지만, 빗줄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온몸이 부들거린다. 빨리 원인을 확인하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 차 밖으로 뛰쳐나온 그는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자 일단 안도하며 돌아와 차를 살폈다. 오른쪽 방향지시등 커버가 깨진 것이 확인되자 그는 가슴이 또다시 쿵 내려앉으며 파편이 떨어진 현장을 중심으로 언덕 아래까지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마치 바윗돌이나 부상한 동물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핸드폰 후레시 불빛을 비치며 이리저리 뛰었다.

‘이상하다. 왜 아무것도 없지? 고라니가 부딪히고 놀라 도망갔나? 트럭에서 뭐가 떨어졌나?’ 일단 아무런 추돌 체가 보이지 않자 불안과 안심이 서로 노려보며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는 일단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현장에 떨어진 사고 파편들을 전부 챙겨 차에 오르다 현장을 뒤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길 언덕 아래 고랑을 넘어 밭 채소들 사이 고랑에 희미하게 비치는 색채가 있었다. 비로 뒤집어쓴 몸이 순간 얼어붙었고 힘이 빠진 다리가 후들거린다. 저것은 최소한 동물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미끄러지듯 구르듯 내려간 언덕 아래 풀 섶 뒤쪽 배수로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위쪽으로 뻗어 나온 두 다리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여자 두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어두워 상태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촉감으로 젊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고 머리에서는 검은 액체가 빗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손목에서 맥박은 모르겠고 온기는 느껴진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리 흔들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큰일이다 어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는 주머니에 전화기를 찾았다. 119에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전화기가 안 보인다.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차와 풀밭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더구나 여자의 전화기도 찾을 수가 없다. 허둥지둥 혼란스럽다.

그는 갑자기 길을 잘못 들어 지옥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허둥댈 시간이 없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는 여자를 둘러업고 언덕을 기어올랐다. 다행히 여자는 작고 가벼웠다. 여자의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옆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자를 뒤 자석에 눕히고 비로써 실내등에 비치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헉!” 순간 그는 뒤로 놀라 나자빠지고 말았다.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여자의 한쪽 눈동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고 다른 쪽 눈동자가 위로 올라붙어 보이지 않았다. 한쪽 머리통이 움푹 들어가고 검은 피로 물들어 얼굴이 반쪽밖에 없었고 흐르는 바닥으로 타 고내리고 있었다. 아마 차에 치인 순간 나가떨어지면서 콘크리트 배수로 모서리에 강하게 머리를 부디 친 거라 추측된다. 도저히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그 차에 같이 타기가 무서웠다. 정신을 차리고 차를 급히 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지?’ 혼돈의 수렁 속에서 계속 헤매다가 응급실 있는 병원은 30분 거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어둠의 비바람 속으로 돌진했다. ‘아~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혹 꿈인가 내가 이 시간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지금 내게 벌어질 일이 아니야! 잘 못 그려진 그림이야! 찢어버리고 다시 그리면 되지 않은가! ‘리셋’하고 다시 입력하자!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는 절규했다.

’ 만약 여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아니 이미 사망했다면? 머리가 움푹 깨져 피를 많이 흘리고 있는 머리를 물웅덩이에 오래 박고 있었으니 가망이 없을 거야.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럼 난 어떻게 하지 ‘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하여 상상하기도 싫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제일 먼저 은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드디어 서로의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 속에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렵게 태어나 열심히 노력하여 가족을 이루고 자녀들 모두 성공시켜 이제는 뒤늦게 자신의 행복을 위한 후반기 인생을 시작하려 하는데 그 모든 것 또한 끝이란 말인가?’ 그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그는 영화 [어비스]의 심연으로 깊이깊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족과 사회와 그리고 그 애틋한 은지를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절망의 깊은 바다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안돼! 안돼!” 그는 머리를 강하게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렇게 무서운 전화벨 소리는 처음이다. 마치 지옥에서 악마가 걸어온 듯했다. 혼이 다 빠져나가듯 놀란 그는 그게 자기 전화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찾던 전화기는 의자 옆에 떨어져 끼어 있었다. 이 시간 전화할 사람은 당연히 아내다. 그는 전화벨 소리에 그 여자가 깨어나지는 않나 살피며 전화를 받았다.

“어디예요?, 아직 집에 안 들어갔어요?”

“어! 지금 들어가고 있어.”

“비 많이 오죠? 어떻게 해.”

“어! 어! 그래!”

“집 뒤에 고랑에 찌꺼기 때문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치워주고 이참에 지붕에 물 새는 곳은 없나 살펴보고요.”

“어! 알았어.”

“그리고 진짜로 전화 한 이유 뭐게요, 어제 ㅇㅇ납품 건 계약 했어요 하하하, 정 회장님이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정말! 잘됐네.”

“당신 언제 올라올 거예요? 그분 벼르고 있는데 당신이 한번 만나봐요. 하하하!”

“다음 달에나 갈게!”

“어! 그리고 김 원장이 당신 배 불편한 것은 술 때문이라고 하니 잠시 술 좀 줄여 보라고요, 그런데, 당신 목소리가 안 좋아. 괜찮아! 어디 아파?”

“아냐 괜찮아! 나 지금 비도 많이 오고 운전 중이니 내일 통화해.”

곧 닥칠 깊은 낭떠러지를 모르고 마냥 행복해하는 아내의 목소리, 그는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정말 코스모스 같은 여자다. 매혹적이지는 않지만 질리지 않은 향기가 있고 때에 따라 아플 정도 가슴 설레게 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는 아내가 낌새를 차릴까 봐 조심스럽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옆에 피를 흘리며 생사를 오가는 남모른 여자, 그리고 삶에 부풀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여자, 그는 그 공간에 던져져 선택을 강요받고 결심을 해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이제 악마는 납품하기 위해 성과품을 포장하고 있다.


차는 병원 앞 사거리에 멈췄다. 지금 앞에 차들이 막고 서 있다. 그는 검게 피 묻은 손바닥을 내려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미동도 없다. 발견했을 때 숨과 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 다시 여자의 손목을 잡아보고 수건을 제쳐 얼굴을 살폈다. 온몸의 온기는 사라지고 싸늘함이 손끝에서 올라온다. 이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절망과 함께 또다시 공포와 온몸에 소름이 올라온다. 이 사거리를 건너 저 병원으로 들어서면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자신은 음주 상태가 아닌가. 그는 이 여자가 누구며, 누구의 가족인지, 그녀의 삶에 대한 걱정과 사고에 대한 죄스러움 등은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놀라는 의사들, 화난 경찰의 얼굴, 무서운 유족들의 절규, 절망하는 내 가족들, 사라지는 이웃, 내 꿈! 내 그리움! 내 사랑! 그리고 차가운 감옥, 그는 삶의 남은 시간을 생각했다. 30년!’

“아니야!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 인생이 아니다!” 순간,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시간에 지나간 사람이나 차량 등 목격자가 없다는 것과 차량 파편도 다 치웠으며 이렇게 많은 비속에 현장에 남을 흔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여자는 이미 죽었다! 살아나지 않는다!’ 앞차가 빠지자 그는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핸들을 꺽어 우측으로 돌렸다. 자신이 지금 가야 할 곳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곳에 가면 이 고통, 이 무시무시한 공포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 희푸르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악마의 제자가 되었다. 잘 생각했어. ‘빨리 이 지옥에서 빠져나와야지.’ 차는 어둠 속을 계속 달렸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어둠도 약해졌다. 시계는 8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온 차는 산모퉁이로 빠져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그 끝에 그가 최근에 다녀왔던 낚시터가 있었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저수지로 통과하는 길도 없어 특별한 목적 없이는 오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낚시터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는 그림에 좋은 풍경을 찾아 겸사겸사 두 번 왔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그는 차의 전조등을 껐다. 구름 사이의 조각 달빛에 둑 길은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는 조용히 저수지 입구의 반대편까지 차를 몰아갔다. 그곳에는 산등성 절개지 밑에 자연스레 움푹 파인 곳이 있고 뒤편에는 황토 절개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언덕 절개지 면은 손을 대기만 해도 황토가 아래로 쏟아져 쌓이는 곳이라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평소 차에 싣고 다닌 낚시가방에서 먼저 부삽을 챙기고 여자를 들쳐 메어 그곳으로 옮겼다. 고랑에 반듯이 눕히고 그는 먼저 그녀의 눈을 감겼다. 얼굴을 덮었던 수건을 찾아 얼굴의 피를 닦아냈다. 무의식에서 나온 그녀에 대한 궁핍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에 박꽃같이 하얗다. 젊은 사람이다.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함과 젊음에 대한 애통함을 애써 외면하고 그는 부삽을 들어 황급하게 황토벽을 긁어 고랑을 메우기 시작했다. 손쉽게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혹시 자신이 떨어트린 것이 없나 현장을 정리하고 차에 오르면서 그곳을 돌아봤다.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 공포에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는 비로써 오열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흑 흑! 정말 미안해” 울음은 급기야 대성통곡으로 바뀌고 그칠 줄 몰랐다. 그녀에 대한 애통함과 자신의 비통함에 대한 울분이 노도 같이 흐른다. 모든 것이 3시간 안에 일어나고 끝났는데 마치 1년 동안 겪은 악몽과도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불 꺼진 집 마당에 들어서니 그곳은 예전의 그 집이 아니다. 아침에 이곳을 떠나갈 때 만 해도 모두 정상이었는데. 이미 모든 시간과 공간은 사고 전과 그 후로 나뉘어 있었다. 차 머리를 집 쪽으로 향하도록 주차를 하였다. 그는 밖에서 옷과 신발을 벗고 어두운 마당에서 웅크리고 앉아 샤워를 마친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 불도 켜지 않은 채 고목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손발 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생각해도 도저히 모든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그냥 있으면 되나?, 시신은 안전한가?, 완전히 묻히기는 했는가?, 발각되면 내가 용의자로 지목될 단초가 있는가?, 내일은 뭘 해야 하나? 그 여자는 누구일까? 동네 사람인가? 한 번은 오가다 만난 사람일까, 아직 젊은데, 이를 정말 어떻게 하지?’

아직 정신 줄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눈물이 복받친다. 이때였다.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벌떡 일어나 긴장하고 어둠 속 현관 쪽을 응시했다. ‘이곳에 차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 누가 이 시간에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그러나 더 이상 아무 소리가 없자 그는 살금살금 창가로 다가서 밖을 살폈다. 마당에는 달빛이 있었다. 그런데 차 옆에 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모든 털이 곤두섰다.

‘이 시간에 누가 왜? 남의 집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그림자가 그를 향해 돌아서 다가왔다. 여자였다. 무표정한 하얀 얼굴,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 눈동자, 분명 그 여자다.

“악! 아악!” 그는 비명과 함께 거실로 뒷걸음쳐 도망갔다. 그러자 밖에서 현관문을 심하게 흔들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고 외쳤다.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럴 수는 없다 이것은 분명 꿈이다! 나는 빨리 이 지긋지긋한 꿈에서 깨어나야 해!’ 그는 발버둥 치며 마침내 눈을 떴다. 환한 아침이다. 정말 꿈이었다. ‘그렇지! 이 모든 것이 꿈이었어! 나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 그는 뛸 듯이 기뻐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뭔가 보통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뛰어나가 차를 살펴본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지옥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 어제보다 나락의 고통은 더 깊고 컸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