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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악몽

10. 악몽

by 왕십리

6월 8일


[참 낯 설은 아침이다.

어제와 이렇게나 다른지,

모든 풍경은 무미건조한 2차원이다.

더 받고 받아들일 것이 없다.]


‘차라리 그때 병원으로 갈 것을, 지금쯤 여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가족들이 난리가 났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앞이 캄캄하다. 차에 기대어 주저앉은 체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 아니다! 이미 강을 건너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안심해!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거야. 평소와 달라질 것 없이 살면 돼! 어제 일을 이제는 정리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 표정 조심하고 행동에 빈틈이 보여서는 안 된다 ‘ 남의 생명을 앗은 그는 살려고 몸과 마음을 굳게 부여잡는다.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자 비로써 몸이 움직일 수 있었고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차를 정리해야 한다. 차 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코를 진동했다. 아직도 굳지 않은 피가 조수석 바닥에 흥건한 것을 보고 어제 악몽이 되살아나 심장이 마구 뛰며 마음이 급해졌다. 완전해야 해! 그는 이를 악물었다. 바닥 매트를 모두 걷어 봉투에 넣고 물걸레와 세제로 내부를 구석구석 닦아낸 다음 물로 외부는 물론 밑창까지 마무리했다. 어제 벗어놓은 옷과 차에서 나온 모든 쓰레기는 창고 깊숙이 숨겨 놓았다. 시간을 갖고 조금씩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작업을 마치고 난 후 그는 비로써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눈에 광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는 오후에 잡힌 약속을 취소하고 침대에 얼굴을 묻고 누웠다.

잠이 오려고 한다. 그는 어제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날까 두려워 자지 않으려고 몸을 세웠다.


은지! 이렇게 틈만 나면 떠오르는 그녀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든 것 포기하고 지금 달려가 보고 싶다. 오로지 그녀만이 자신의 말할 수도 없는 이 고통을 씻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생긴 벽, 이미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고 자신을 마치 지옥에서 온 사람으로 오만 정을 다 날려 버렸을 것 같았다.


[모든 것 제자리에 있지 않은 어설픔,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신과 공간,

그런 슬픔에 목이 멘다.

이젠 갈 수 없는 그 공간,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자신은 그냥 평면이다.]



6월 20일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지금쯤 그 여자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내고 여러 곳에 수소문하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 없는 사람인가? 가족도 없는 사람이 비 오는 날 그 시간에 왜 그곳을 걸어가고 있었을까?’ 그는 그 여자가 차라리 가족이 없는 사람이었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조바심과 불안한 마음에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살짝 지나가면서 그곳 분위기를 한번 보고 와야겠다.’ 그는 샤워하고 면도를 하고 화장을 한 뒤 말끔히 차려입었다. 행여 보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그는 걸어서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우선 군내 방향으로 나가 시내의 동양을 한번 살핀 뒤 돌아오는 길에 그곳을 지나오는 버스 속에서 둘러볼 생각이었다. 버스 길로 들어설 때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옆에 멈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디를 가세요?” 긴장하여 돌아보니 시청 출근길의 고 과장이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와 인사를 할 때 선배님이라고 살갑게 굴면서 만날 때마다 찾아뵙고 식사 한번 하겠노라고 했지만, 지척에 살면서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아~ 고 과장 오랜만이네! 나 홍춘에 잠깐 다녀오려고. 자네는 왜 이리 늦게 나가나?” 그는 일부러 가는 방향을 시청과 반대로 댔다.

“예 오늘 집에 좀 볼일이 있어 늦었습니다. 그런데 차는 안 갖고 가세요?”

“아~ 차가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손을 좀 봐야 될 것 같아 버스로 다녀오려고. 늦었는데 어서 가봐요.”

“예! 선생님 다음에 뵙게요.” 뒤쪽에서 차들이 오는 것을 보고 고 과장은 황급히 떠났다. 이제 식사하자는 소리도 안 한다.

시내는 그에게 너무 잔인할 정도로 평온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행여 아는 사람에게 들킬까 조심스레 시내를 둘러본 뒤 현장을 지나는 버스에 올랐다. 미친 듯이 몰아친 그날의 비바람을 상기하며 아직도 그 악몽에서 못 벋어 난 자신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친다. 슈퍼 앞을 지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어 저 아래 현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곳을 지나 뒤돌아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현장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이나 사람, 차량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 여자는 가족이 없이 사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사고 당시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가 오는 밤에 우산도 없이 나다니고 전화기도 가지지 않은 상황이 온전한 가족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판단을 했다. 달빛에 본 그녀의 모습도 젊기는 하나 깔끔하고 귀엽게 자란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저 밑에서 올라오는 희망의 전율을 느꼈다.



6월 23일


오늘은 서울 집에 가야 한다. 원래 아내가 내려오는 날이었는데 그는 이번에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자신이 올라가겠다고 미리 통보를 해 놓았다. 밤이 충분히 깊어졌다. 방향지시등이 깨진 그의 차는 어둠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그는 긴장과 두려움에 핸들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해야 할 일이다. 고속도로는 금요일 저녁답게 꽤 붐비고 있었다. 일반도로로 빠진 차는 용인을 지나 광주 쪽으로 향하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 길은 직장 생활할 때 골프 치러 자주 다니던 길이다. 서울 가까운 시가지를 지나 2차선 지름길로 들어서서 왼쪽으로 굽은 지하차도를 지나는 순간 그의 차는 핸들 조작 미숙으로 우측 벽에 부딪히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 운전자는 무사하고 차도 크게 파손되지는 않았지만, 우측 전조등과 방향 등, 그 부분 차체가 손상을 입었다. 그는 급히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나와 차를 살폈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차량 견인이 필요했다. 현장에 출동한 보험사에게 차를 맡기고 그는 택시를 이용해 집으로 향했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모든 것이 잘 끝났다. 이제는 걱정할 것 없다. 그는 호주머니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타이어 옆구리를 찢은 연장과 악몽의 그날 현장에서 수거한 방향지시등 파편을 담아와 조금 전 현장에 뿌리고 남은 봉지가 주머니 속에 안전하게 있었다.

늦게 들어온 남편을 본 아내는 그 몰골에 깜짝 놀랐다. 사고로 다치지는 않았나 당장 병원 응급실로 가서 검사부터 받아보자고 난리다. 남편이 시골집으로 같이 내려가자 했을 때 지신은 일과 친구들 떠나 내려갈 용기가 나지 않아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했었다. 결국, 그가 먼저 내려가고 아내는 준비가 되는 대로 내려가겠다고 타협을 했지만 항상 가족과 멀리 떨어진 남편을 생각하면 모든 잘못이 자신인 양 마음이 쓰인다. 그렇지만 지금도 쉽게 그곳에 내려가 생활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냐! 아냐! 피곤해서 그래요. 아주 경미한 사고야!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졌나 봐.” 그것은 정말로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밥은 싫고 술이나 한 잔 할래.”

식사를 묻는 아내 말을 뒤로하고 얼음을 찾아 위스키를 한잔 가득 부었다.



6월 24일


그는 그래도 아내 곁에서 모처럼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났다. 무려 10시간을 잔 것이다. 걱정스레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아내가 가엽다는 생각에 그는 한번 안아 보았다. 아~ 이제 집이구나. 족쇄가 채워진 자신과 달리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이 자유로운 그들을 볼 때 가슴이 저미어 온다. 나도 어제까지는 저곳에 있었는데

평화롭고 선한 가족들 그 한가운데 폭탄을 숨기고 있는 한 사람, 과연 그는 무사히 그것을 제거하여 가족들을 살릴 수가 있을까. 과연 자신을 믿어도 되는가. 그는 자식들과 어린 손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자꾸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자꾸 지치고 신경만 날카로워진다. 남편의 낯 설은 모습에 혹시 무슨 일이나 있지 않나 눈치를 살피는 아내의 태도도 신경 쓰이고, 정신없이 뛰노는 손자들 때문에 정신의 가닥을 잡을 수도 없다. 여느 때 같으면 인내심을 갖고 같이 호흡을 맞춰 주기도 했으련만 지금은 그럴 마음의 여유는 아예 바닥난 지 오래다.

“얘들은 왜 6시가 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 거야!” 아내도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 저녁도 먹지 못하고 기다리기를 1시간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분노로 속이 부글거렸다. 그것은 지금 자신을 힘들게 하는 딸에게 향했다. 특히 그는 사위가 자신에 대해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얘들을 모처럼 집에 쉬려 온 장인에게 맡기고 온종일 밖에서 놀다 들어올 수 있는가? 게다가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 어른들을 저녁 식사에 기다리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빠 미안해요. 저희가 너무 늦었어요.” 그는 황급하게 들어서는 딸 내외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너희들은 뭐 하는 짓이냐 시간이 늦으면 미리 전화를 하든가 하지 어른들 식사시간에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것은 도대체 어데서 배웠더냐?” 한순간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은 모두 난생처음이었다. 그의 표정은 예전의 표정과는 달랐다. 마치 일그러진 악마의 얼굴이 그러했다. 순간 제일 당황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아빠! 아빠!” 놀래 하얀 해진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한 딸은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미안해요. 저희가 잘 못 했어요 용서하세요!” 넋이 나간 아내는 지금 남편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날 자신이 저질러 놓은 사태는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애써 자신이 요즘 좀 힘들어서 잠시 화가 났을 뿐이라고 가족들 마음을 달래기는 했지만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자신의 과오가 드디어 가족들을 2차 공격이 시작했음을 알았다. 그 일은 그날의 악몽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로 남았다.



6월 28일


시청 회의에 참석 후 오찬 식당에 가기 위해 정문으로 걸어 나오던 그의 눈에 비친 벽에 붙은 전단지, 그는 그 자리에 발이 얼어붙어버렸다. '분명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사람을 찾습니다.


[실종일 : 2002년 6월 14일

실종장소 : 용인시 석존마을

복장 : 베이지색 원피스, 흰 블라우스

나이 : 26세

이름 : 디우 번 이안, 한국명 : 반 이숙

주소 : 용인시 석존마을 114-13

국적: 베트남

특징 : 임신 4개월 상태]


위 사람은 가출, 교통사고, 납치 등으로 실종상태로 소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분에게는 사례합니다.

’분명히 그 여자다. 임신 4개월?‘ 그는 심하게 망치로 얻어맞고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죽였구나 ‘ 어린 생명이 있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과 공포심에 다리가 떨려 서 있을 수 없어 그는 옆 벤치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자 애썼다.

“송 선생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 갑자기 몸이 안 좋아 그래요.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식사들 하고 오세요 “ 그는 허둥지둥거렸다.

은지가 그 가게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아 오늘 오후에는 만나볼까 했는데 그것도 포기해야 했다. 빨리 집으로 가야만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왠지 조용하다 했었는데 사실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경찰에서는 수사는 하고 있을까.' 그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 또 술을 마셨지만 소용없었다. 곧 주위 사람들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붙잡으러 덤빌 것만 같아 그곳을 서둘러 벗어났다.

'멀리 이곳까지 시집을 온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 여자가 바라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사랑, 돈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다 빼앗기고 이 먼 차가운 땅에 묻혀있으니 그 얼마나 원통하리오! 이 외로운 땅에서 갖게 될 유일한 피붙이! 얼마나 애틋하였을까? 내 딸보다 어린 겨우 스물 나이에 그 피붙이를 안고 어디로 갔을까?'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원통해서 어떻게 해!' 캄캄한 구천에서 바람 너머로 그녀가 아기를 안고 자신을 찾아 울부짖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천인공로 할 죄를 지어 천벌을 받아야 할 나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60 평생을 다녔던 내 자취가 어떻게 그 시점에 그곳에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내가 아니다. 함정에 빠진 거야! 악마가 역사하여 파놓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든 거야. 나는 지금 악마의 포로가 되어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피 묻은 손, 악마를 닮은 표정,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자수하고 벌을 받는다면 그들의 영혼에게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약이다, 조금만 지나면 이 고통도 치유되고 이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될 거야.' 결국 그는 용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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