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다른 사건
다른 사건
“은행 건은 왜 보고가 없나? 아직 안 알아본 거야?” 임 반장은 직원들을 채근했다.
“예 은행 조사가 아직 안 끝나서 말입니다. 오늘 중으로 사건 보고 올리겠습니다.” 시중 은행에서 여직원이 횡령하여 잠적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직원이 갑자기 무단결근하자 뒤늦게 조사를 해보니 다량의 자금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장 순희 대리 23세] 임 반장은 그녀의 주소를 찾아갔다. 거의 정신 줄을 놓은 부모들은 자기 딸은 절대로 남의 돈을 훔칠 아이가 아니고 부모에게 연락도 없이 잠적할 아이는 더더욱 아니라며 딸의 행방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10/24일 토요일 아침에 누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간 후 전화 연락도 되지 않은 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회사에서는 무단으로 잠적한 그녀가 수상하여 자체 감사를 실시한 결과 10억에 가까운 자금이 불법 인출된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우선 그녀가 집을 나간 뒤 만난 사람을 찾기 위해 그녀의 인터넷과 핸드폰 사용 내력 및 카드사용 흔적 등을 조회하였지만 수상한 단서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전화기는 그 후로 계속 꺼져 있으며 목격자나 동료로부터 도움이 될만한 정보도 없었다.
그녀의 행방과 함께 그 많은 돈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6개월 동안 불법 인출된 돈은 그녀의 개인 통장을 통하여 대포통장으로 들어간 뒤 바로 인출되어 행방을 감추었다. 그녀의 다른 모든 금융거래 계좌와 집까지 수색했지만 역시 돈이 머무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임 반장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범행의 깔끔한 형태로 봐서 어린 여자 혼자 처리하기는 어렵다 보고 공범이나 내부 조력자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방향을 우선 은행 내부로 돌렸다. 그녀는 인물도 반듯하고 똑똑하고 사교적으로 회사 일도 열심히 하여 대리 진급도 빨랐다고 한다. 특별히 친하게 지낸 친구나 사귀는 남자도 없다고 했다. 경찰은 모든 직원을 상대로 각자 토요일의 행적을 묻고 전화 통신 내력도 조사했지만, 그녀와 관련된 사항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와 업무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은 김 종수 과장이다. 현재 징계위에 회부되어 있었고 결과에 따라서 결손에 대한 추징도 당할 위기에 있는 그는 장대리를 굳게 믿었고 그 점을 이용한 그녀가 자신의 인장을 위조하여 독단으로 처리한 일이라 본인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며, 더욱이 회사 손실에 배상 책임이 있는 자신이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런 일에 관여할 수 없음을 강변하였다. 그의 말대로 모든 서류는 위조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업무 또한 능히 혼자 처리할 수 있는 허점이 있었다.
임 반장은 그녀의 통화기록을 들여다보며 수사가 장기화가 될 가능성을 걱정했다.
‘도대체 그날 어디서 누구를 만났을까? 그리고 왜 이 시기에 잠적했을까, 특별히 범행이 발각될 우려도 없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잠적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통화나 문자기록에 뭔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 전날 어머니와 통화를 마지막으로 최근 1개월 동안 기록에는 가족 외에 광고나 카드사용 알림 등 일반적인 내용밖에 없었다.
경찰은 그녀의 생활반응과 회사와 주변의 CCTV에 그녀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조사하는 등 한 달 이상을 매달렸지 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임 반장은 그녀의 어머니를 다시 찾아갔다. 혹시 무슨 소식이 있나 싶어 바짝 긴장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물었다.
“어르신 혹시 최근에 따님에게 이상한 점이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으세요? 작은 내용이라도 다 말씀해 주시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애는 아는 남자도 없고 특별히 만나는 친구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럼 출퇴근 외에는 계속 집에만 있었나요.”
“하도 회사 일이 많아서 가끔 늦게 들어오고 토. 일요일도 회사를 나가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회사일 빼면 거의 집에 있었다고 해야죠.”
“그럼 그전 토요일도 회사에 출근했나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 해주실 내용은 더 없으세요.”
“예! 특히 더 생각나는 것은 없네요.”
“그럼 뭐든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꼭 전화 주세요, 우리 경찰이 전부 찾아 나서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저씨!” 어머니는 뒤돌아 나가는 임 반장을 멈춰 세웠다.
“한 달 전인가 우리 애가 전화를 했는데 모르는 번호였어요. 왜 네 전화기가 아니냐 물었더니 자기 전화기 배터리가 떨어져 전화기를 빌려 거는 것이라며 자기 신용카드가 없어졌다고 자기 옷 주머니를 봐달라는 것이었어요.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굳이 있다면 그런 일은 한 번 있었어요.” 임 반장은 그 번호를 찾아 적었다. 어쩌면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흥분되었다.
그는 그 번호의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그 번호는 대포폰으로 판명되었고 통화 내력에 의미심장한 번호를 발견했다. 그것은 김 과장 전화번호와 일치하였다. 이제야 실마리가 풀려나간다. 그는 은밀하게 김 과장의 모든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동안 그녀가 가지고 있던 대포폰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고 그날도 2번이나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임 반장은 그날 두 사람이 통화한 기지국을 중심으로 김 과장 차량 동선 추적에 나섰다. 일주일간의 근처 모든 CCTV를 검색한 끝에 마지막 통화가 잡힌 기지 근처에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과 그 후 2시간 후에 임 과장 혼자 외곽 국도로 나간 후 2시간 반 만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확인했다. 지난번 조사 당시에 온종일 집에 머물렀다는 진술과는 달랐다. 김 과장의 자금 흐름 조사도 마친 경찰은 이제 그를 소환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 김종수 너는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임 반장은 생각했었다. 김 과장과 장대리는 내연관계를 맺고 이를 이용한 김과 장이 장대리로 하여금 금융사고를 일으키게 하여 자금을 편취한 것으로 보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김 과장에게 헌신했고 이에 김 과장의 보답이 만족스럽지 못해 그날 둘이 뜻하지 않은 언쟁이 벌어졌고 장대리의 협박에 순간 위협을 느낀 김 과장이 차 안에서 그녀를 살해 후 외곽 어느 곳에 시체를 처리하고 돌아온 것으로 유추한 것이다.
그러나 임 만장은 자신이 조금 성급했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김 종수씨 지난번 진술에서 그날 외출하지 않고 집에 하루 종일 있었다고 했지요?”
“제가 그랬었나요?”
“기억 안 나세요? 그런데 그날 아파트 CCTV에 김 종수씨 외출 장면이 있던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 그래요, 생각해 보니 제가 일요일과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외출한 것이 맞습니다.”
“아니, 그렇게 중요한 날을 착각할 수가 있습니까?”
“같은 휴무일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요. 당시로서는 특별히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깐요.”
“그럼 그날 장대리와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했는데 확실합니까?”
“예! 확실합니다.”
“그럼 핸드폰을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의 표정을 굳어진다.
“예민한 사생활 문제로 그것은 곤란합니다. 그것은 변호사가 선임되면 상의하고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사생활 부분은 들여다보거나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은 비밀에 부치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또 한 이것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형사사건의 수사에 관한 것으로 거부하면 오히려 당신이 용의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 과장은 마지못해 자신의 핸드폰을 내놓았다. 그는 대포폰 번호를 민구라고 저장해 놓았다. 임 반장은 문자메시지부터 확인하여 그 번호가 장대리라고 특정할 내용을 찾으려 했으나 내용에는 그럴만한 단서가 없었다.
“여기 민구라는 사람과 많이 연락했는데 누구입니까.”
“예! 친구입니다.”
“친구요 친구라, 그럼 내가 이 사람과 통화 한번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그는 당연히 통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당당히 말했다. 임 반장은 난감했다. 이제는 대포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 거짓말은 그만하세요. 당신 진술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다 있습니다. 여기 민구라는 전화는 그동안 장대리가 이용하면서 이번 금융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된 대포폰이라는 것이 확인됐어요. 그날도 이 번호로 당신과 장대리가 2번이나 통화했잖아요?”
“나는 지금 형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대포폰은 무슨 소리며 거기에 장대리가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임 반장은 그의 뻔뻔함에 정말 기가 막혔다. 임 반장은 초조해진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네가 빠져나갈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좋습니다. 대포폰 관계는 곧 밝혀질 것이니 그렇다고 치고, 조금 전 그날 전혀 장대리와 통화하거나 만나 적이 없다고 했는데 확실합니까?”
“예!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자신감이 없었다.
“자 보세요. 여기 그날 이렇게 당신이 신촌에서 장 대리를 만난 증거가 있는데, 계속 거짓말할 겁니까? 이제 털어놓으세요 장 대리 만나서 어떻게 했어요?” 그는 얼굴이 굳어지고 동공이 흔들리며 말없이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기가 죽은 그가 입을 열었다.
“저, 형사님 담배 한 대만 피울게요.” 임 반장은 드디어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형사님! 모든 것 다 말하겠습니다. 대신 조금 전에 약속하신 저에 대한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말하는 투로 봐서 임 반장은 이놈이 또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구나 싶어 기운이 빠진다.
“사실 장대리하고는 1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모든 것 밝히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날도 상대리과 만나기는 했습니다. 그냥 모처럼 차 한잔하고 식사하고 오후에 약속이 있다고 하여 그 장소에 내려주고 저는 골프연습 마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역시 그는 빈틈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그리고 대포폰이라는 것은 저는 모릅니다. 그것이 당연히 장대리 전화로 알고 있었고 집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 남자 이름으로 저장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 말이 맞지 않아요. 여기 보세요. 오후에 외지에 나가서 늦게 돌아온 사실이 있는데 어디를 왜 다녀왔는지 말해봐요.”
“아! 거기요! 거기에 골프연습장이 있어요. 맞아요. 거기 다녀온 것입니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 반면 임 반장은 그곳에 골프연습장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라 당황했다. 확인 결과 그가 골프장에 들것은 사실이고 귀가 시간도 거의 일치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 후 경찰은 혼란스러웠다. 오늘 그와 싸움에서 이쪽 패만 다 보여주고 결국 수 싸움에서 밀리고 만 꼴이다. 김 과장이 금융사고에 관여한 정황도 밝히지 못하고 장대리의 실종에 관여했다는 어떠한 증거 확보도 실패하면서 수사는 난항을 거듭했다.
7월 24일
“오늘 이천 지방은행에서 한 직원이 고객의 자금을 몰래 인출하여 잠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은행 측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저질러온 범행을 뒤늦게 발견하여 부랴부랴 경찰에 신고하여 수사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해당 직원의 행방과 빠져나간 돈의 행방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재호는 방송을 들으면서도 이 사건이 자신의 운명과 만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