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뛰면서 남긴 끄적임들
러닝 하나를 하면서도
사람마다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정말 다 다르더라고요.
거리에 둘 것인지,
시간에 둘 것인지,
속도에 둘 것인지,
심박수에 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걸 다 두고 달릴 것인지.
“넌 목표가 뭐야?”
누군가 물으면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해요.
“이 곡 하나 끝날 때까지. “
달리기가 무섭고 싫었던 제가
‘이 곡 하나 끝날 때까지만.’ 하고 뛰다 보면
그다음 곡이 궁금해지고,
또 그다음 곡이 궁금해지고,
그렇게 뛰다 보니
거리도 시간도 조금씩 늘어나 있더라고요.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다 다르겠지만,
저는 늘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거 하나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살다 보니
어설프고 부족해도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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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않아도 될 이유는 늘 많았어요.
“어제 요가를 세 타임이나 했잖아.”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쉬어도 돼.”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싸 덕분에
오늘은 다시 뛰어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달리기는 제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에요.
왜 그 고통을 굳이 선택하냐고요?
그 고통을 견디다 보면
제 일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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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아저씨의 이 문장도 좋아해요.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10km 겨우 도전하면서
풀코스 마라톤에 트라이애슬론까지 뛰는
하루키 할아버지 얘기에 공감한다는 게
조금 부끄럽네요.
아직은 참 어설픈 인생이지만,
이 곡 하나 끝날 때까지.
오늘도 저는 걷고, 뛰고, 반복합니다.
그렇게 또 달리다 보면 어디쯤에 닿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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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마더의 한마디
경윤아,
과연 뛸 수 있을까 불안해하면서도
묵묵히 달리는 네가 참 멋졌어.
‘어거 하나 끝날 때까지…’
그게 쌓여서 결국
너만의 멋진 길이 될 거야.
다음은 또 어떤 걸 끝내게 될까?
너의 다음이 기대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