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회피형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또 한 번의 용기, 그리고 내려놓는 연습

by 강경윤

포돌이와 연락을 안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

넷플릭스가 안 된다.


괜스레

포돌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넷플 안 되지 않아?”


읽지 않는다.


전화를 걸까 말까 하다가

결국 걸었다.

바로 받는다.


“어디야?”

“양평.”

“누구랑?”

“친구들이랑.”


이 와중에, 이걸 왜 묻는지.


“그럼 넷플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네.”

“어, 못 봤어.”

“알았어.”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또 톡을 보냈다.


“양평 간 김에

캠핑 의자랑 테이블 좀 챙겨 와 줘.

나 이번 주말에 필요해.”


다음 날 톡이 왔다.


“이거 빨리 가져가.”

“나 다음 주에 필요한데?”

“거슬리니까 빨리 가져가.”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의자를 옮겨 싣고,

같이 밥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잡고 걸었고,

또 티격태격 싸웠다.



“내가 보낸 영상 봤어?”

“아니.”

“그럼 부재중 전화는 왜 남겼어?”

“전화하라며.”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별 앞에서

포돌이도, 나도

둘 다 회피 중이었다.



‘그래.

그럼 그 영상은 끝까지 보지 마.‘


돌아서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직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오랫동안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인 척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야 솔직해진다.

나는 강해서 버틴 사람이 아니라,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114kg이었을 때도,

사랑에 배신당했을 때도,

번아웃으로 몸이 먼저 망가졌을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 지금 너무 무서워.”



그리고 어쩌면,

포돌이에게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사랑이 끝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다가

내 마음이 더 닳아버릴까 봐.



대신 나는 늘 같은 말만 했다.


“괜찮아.”

“내가 잘히면 돼.“

“일단 내가 책임질게.”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살아남는 법은 박사급인데,

쉬는 법은 아직 유치원생이다.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다.

일이 나를 지켜줬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일을 방패 삼아

숨어 있었을 뿐이었다.


일은 묻지 않는다.

내가 외로운지,

화가 났는지,

사랑받고 싶은지.


그래서 나는

사랑보다 일을,

관계보다 역할을,

감정보다 성취를 선택했다.


그게 더 쉬웠으니까.



나는 사실 회피형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면서,

행동으로 증명해 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이렇게 묻는다.


“왜 말을 안 해?”


이 패턴은 낯설지 않다.

사실, 내 이야기였다.



포돌이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글로 적고 보니 보였다.


어쩌면 내가 불안했기에

그가 회피적 성향이 강화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그 ‘귀찮다’는 말이

왜 그렇게 아팠을까.


결국 내가 원했던 건

거창한 설명도,

완벽한 태도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

그 하나였다.



포돌이에게 말했다.


“난 자기가 날 좋아하기만 하면 돼.

그럼 헤어질 마음 없어.

그게 아니라면

연락 안 해도 돼.”


그 뒤로 연락이 이어졌다.

이렇게 한 번 더,

이번엔 정말 천천히

맞춰가 보고 있다.


어렸다면

이런 여유는 없었을 거다.


이 나이 먹고 나서야

겨우

사랑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꿀팁

이번에 네가 제일 잘 한 건

도망치지 않고,

네가 불안형이라는 걸 인정한 거야.

불안형은 사랑을 너무 열심히 해.
그래서 늘 먼저 지치고,
먼저 상처받고,
결국 먼저 헤어짐을 말하게 되지.

하지만 사랑은
상대의 반응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야.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느냐로 완성되는 거야.

도망치는 회피형을 탓하지 마.
그 사람은 그저 너무 벅찼던 거야.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줘.
“괜찮아. 이번엔 나부터 나를 달래 볼게.”

그게 바로 불안형이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는 첫 순간이야.

그리고 경윤아,
그걸 이번에 네가 진짜로 해낸 거야.


다음 화 예고


나 : “크리스마스이브엔 뭐 하지?”

포돌 : “그날 우리 팀 회식인데?”

나 : “이브에 회식하는 회사가 어딨어?”

포돌 : “다들 그때 하자는데… 어떻게 해?”

나 : “크리스마스엔 나 내시경 전날이라

아무것도 못 먹는데…”

포돌 : “…”


헤어질 줄 알고

그날로 내시경을 잡아버렸더랬지요.


여전히,

포돌이와의 타이밍은

조금씩 어긋나네요.


이번 포돌이와의 크리스마스는

어찌 보내게 될까요.

저도 궁금해집니다.


모두,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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