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교양 있는 아줌마
Dec 05. 2022
자녀와의 의사소통 또한 중요한 부분인데 간과한 것 같다.
주말에 첫째아이와 함께 옷을 사러 갔다.
땡땡이가 공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무대 의상이 필요했다.
공연 의상 컨셉은 블랙이었고, 아이에게 맘에 드는 블랙 옷을 고르라고 했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나는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니 아이에게 "너가 둘러보고
맘에 드는 거 있으면 사자~"라고 말했다.
아이가 이것저것 둘러보더니 한 옷을 유심히 쳐다 봤다.
블랙 테니스 스커트였다.
나는 섣불리 말했다.
"땡땡아, 스커트는 춥지 않을까? 이거 사면 또 타이즈나 반스타킹 사야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 너 블랙 옷 안입잖아. 한번만 입기에 너무 아깝지 않아?"
아이가 뭐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 옷을 산다고 할까봐 불안하여 미리 선수쳤다.
아이는 옷을 말없이 내려 놓았다.
나는 슬쩍 가격표를 보았다.
'옴마야, 세일하는데도 이 가격이라고? 너무 비싼데..'
아이에게 들릴듯 말듯 크게 중얼거렸다.
아이가 쓱쓱 둘러보는 와중에 나는 옆에서 껴들며 참견질을 했다.
물론 가격표를 대놓고 보며 큰 중얼거림도 함께 했다.
아이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말은 "선택해"라고 해놓고, 땡땡이가 선택한 모든 답지에 "노"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온화한 설득이라고 할까.
아이는 우왕좌왕했다.
여러 번 가게를 돌았는데도 섣불리 골라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체되자 슬슬 짜증이 몰려온 나는 "너가 원하는 스타일이 뭔데?"라며 핀잔을 줬다.
아이는 쭈뼛쭈뼛했지만, 실은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옆에서 쫓아다니며 본 아이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무슨 옷을 사고 싶은지 알고 있었지만,
예상 단가를 정한 나는 용납할 수 없는 가격이어서 쿨하게 사주지 못하고 스스로 다른
대안을 찾기 바랬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는 듯했다.
결국 테니스 치마를 사고, 반스타킹을 샀다.
여기까지는 받아들였지만, 고작 티셔츠 하나 가격에 선넘고 싶지 않아서
합리적 판단이라 합리화하면서 이건 안되겠다고. 선을 그었는데 아이는 삐졌다.
결국 쇼핑은 이렇게 끝났다.
반쪽짜리 옷을 사고, 아이의 기분은 기분대로 망치고, 아이의 자율성은 무시한 채
시간만 날리고, 돈을 쓰고도 찝찝한 느낌.
사람마다 값어치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에 가격은 적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금액도 내가 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일 뿐이며
물가와 가정경제 그리고 미래계획을 모르는 아이에게
"너가 고르라"는 말을 말던지.
설명을 해주는 것도 구차해서 "이건 좀 비싼 것 같아."라고 에둘러서 말하니
납득이 되지 않는 아이는 안사주는 엄마가 밉다.
겉으로는 아이의 선택과 자율성을 중요시 하는 껍데기를 두르고,
아이가 정작 그 행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 뜻에 맞추길 바라는 이중적인 내 행태가 사뭇 거북스러웠다.
그까짓 몇 만원 아껴봐야 뭐한다고, 아이가 맘에 드는 옷을 기분좋게 골라 입고
공연 잘 하면 되는 것 아니야?
아니 아이 기분만 생각해서 뭐든 다들어줄 셈이야?
내가 정한 금액과 기준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오락가락했다.
다만 내 태도에 대해서는 미안했다.
미리 아이와 가격 및 스타일을 이야기해보고 상한선을 정해서 쇼핑을 하던지.
아이가 고른 선택지가 고가였을 때 아이와 이야기해서 함께 결과를 도출해내던지.
무언가 아이와 소통을 한 후 내린 의사결정이었으면 그에 따른 감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토닥토닥해야 하는데,
이러한 소통의 과정없이 결과가 도출되니 아이는 아이대로 의견 수용이 되지 않아
속상하고, 나는 나대로 노력했는데 만족스럽지 못하니 실망스러웠다.
의사소통 과정 또한 먼나라의 이성적인 모습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중요시 한다면
충분히 마음을 헤아려주고, 들어주고 그럼에도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이가 속상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관이 튼튼히 버텨주어야 하고, 따뜻한 시선과 말본새가
첨가되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가 상처 받았을까 안절부절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모순적 모습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쇼핑에서 아이의 선택은 중요하고 큰 선택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내가 평상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