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4. 2022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오은영박사님의 책을 많이 읽었고, 내가 사는 지역에 강연이 잡혔을 때는 시간을 내어서 들으러 갔었다.
금쪽이도 가끔씩 보면서 오은영 박사님이 거기에 출연하는 부모들을 관찰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나를 빗대어 거울치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핵심을 찌르는 정확한 단어 선택과 논리적인 상황설명, 분명한 어투와 군더더기없는
간결한 말들이 나에게 그저그러하게 들렸다.
책 또한 다 그렇게 느껴졌다.
엄마는 욱하면 안돼요. 머하면 안돼요. 아이는 원래 그래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씁.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육아를 열심히 하고자 한 나의 열정과 상담심리 공부가 재밌어서 몰두한 나의 마음에 쉼이 필요했다.
열심히 하고자 한 의지와 행동은 좋았으나 버거웠다.
나는 편안한 육아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육아를 통해 늘 채워지지 않는 빈틈을 보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으며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기에 순간 순간 '내가 아이들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자책이 들었다.
노력하고 자책하고,,,, 노력하고 자책하고,,,무한 굴레의 소용돌이가 펼쳐졌다.
내 마음의 빈틈이 커질때면 답답했다... 열심히 한만큼 좌절감은 컸다.
나는 왜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며
'왜 꼭 노력하면서 육아를 해야하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내 생각대로, 내 행동대로,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육아를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때부터 부족한 나의 행동을 채우고자 찾았던 육아서적을 보지 않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 마음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드는 생각, 마음, 감정에 대해서 궁리했다.
나는 어릴 적 양육경험에서 학대는 아니지만 그리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절대적 존재로서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않은 채 엄마가 되었기에 우리아이들은 나같은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전제가 있었다.
그 전제 하나가 나를 육아가 힘든 엄마로 만들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다복하게 자란 다른 엄마들을 봤을 때
그 아줌마들은 편하게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데
나는 유독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비교가 되었다.
일례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육아를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 같은데 나는 속으로는 피곤하고 힘들면서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며 놀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지쳤고, 아이들도 피곤해서 잠투정을 하면 그 순간 열심히 놀아준 엄마를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고, 나 또한 피곤해서 예민하게 굴었다.
그냥 굳이. 안 놀아줘도 되는데( 물론 내 마음이 놀아주고 싶으면 놀아주고 지켜보고 싶으면 지켜만 보고)
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피곤하다는 육체적 스트레스 단서를 무시하고 저리 열심히 했다.
그래서 나에게 육아는 힘들었다.
내 마음 안의 부족한 빈틈을 채우고 상처를 메꾸기 위해서,
나는 나의 엄마보다는 아이를 더 사랑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 나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헛된 완벽주의 욕심을 쫓아서,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지우고, 다른 모습을 자꾸 덧씌우려고 하니 버겁고 지쳤던 것이다.
또 다시 오은영 박사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꺼림칙한 마음에 흘깃흘깃 보았지만,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이 있었다.
무릎을 탁 치는 동시에 마음의 평온함과 개운함이 찾아왔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늘 부족한 사랑을 받았고, 그렇기에 나는 사랑을 온전히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못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이렇게 이뻐죽겠는데, '왜 엄마는 우리를 예쁘다고 표현하지 않았던거지?'
더 엄마가 이해가 안가고 미운적이 있었다.
<화해> 책에는 이렇게 나온다.
"자식은 서러웠다고 하는데 부모에게는 그 기억이
전혀 없는 이유는 부모는 그 말과 행동을 한 자신의
본심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늘 자식 잘되라고 한 말과 행동이니 부모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이나 자식은
부모의 표현 방식을 강렬하게 기억하며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을 왜곡되게 해석하기도 한다."
내가 엄마한테 예전에 서운했다고 이야기하면 엄마는 기억 안난다고 하고 또 그 말이 나를 더 서운하게 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알게 되니까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아,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의 표정과 말투, 그때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한 느낌이 기억나는 것이고, 실제
말과 사건은 내 바탕 느낌에 의해 각색될 수도 있겠구나...
또한 책에는 부모가 미운 것은 사실 나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인 것이니 나와 화해를 하고,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에 의한 창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새 창을 만들어서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덧붙여 세상에 나쁜 사람은 있지만 못난 사람과
더 나은 사람은 없으며 '더 나은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흠, 나는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 모습 중에 모난 모습이 더 보여서 이런 마음이 드는걸까?.....
아니다.
더 발전되고 싶은 나의 마음인 것이니 깨닫고 알아주고, 다독여 주어야겠다.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동안 많이 애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