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ako from Spain
알베르게뿐만 아니라 우체국도 죄다 문 닫아서 절망한 나를 (그 와중에 배가 더 고팠던 나를) 그는 일단 식당으로 데려가 하몽 듬뿍 올린 빵과 맥주를 사주었다. 스페인 현지에서 처음 먹는 맥주 맛은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그때까지의 하루를 모두 잊게 할 만큼 기가 막혔다. 유럽에서는 식당에서 생수를 당연히 사야 하는 줄도 모르고 어디 정수기 없나 두리번거리며 물을 찾는 나에게, 올라코는 앞으로 필요할 테니 가지고 다니라며 2L짜리 생수까지 사다 주었다.
그가 이토록 과하게 친절을 베푸는데도 경계심은 들지 않았다. 우선 함께 다니는 동안 그가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집 아줌마, 유모차 끄는 친구, 학교 교수님이라는 분들과 몇 번이나 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눈에는 오히려 순진한 올라코 옆에 붙어있는 낯선 동양 여자애가 더 의심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도 영 쑥스러워하고 그 흔한 능글거리는 표정이나 농담 한 번을 할 줄 몰랐다.
내가 맥주 맛에 감탄할 때도 오로지 본인 전화만 붙잡고 세상 초조한 얼굴로 문을 연 알베르게만 찾는 그였다. 표정만 보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올라코 같았다. 결국 그는 불굴의 의지로 그곳에서 6km 떨어진 시수르Cizur Menor 마을에 문 연 알베르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쯤 되면 내가 매력이 너~무 없어 차인 건가 싶다.)
오늘 밤 길바닥에서 잘 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올라코와 함께 시내 관광을 하고 그의 차로 알베르게에 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 읽은 책에서 산티아고를 걷는 방식은 도보 말고도 자전거, 버스, 택시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난 첫날부터 히치하이킹이다!
무거운 배낭도 올라코의 차 트렁크에 모두 넣어버리고 날아갈 듯한 몸으로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팜플로나는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도시였다. 가이드로 변신한 올라코의 설명을 들으며 축제 때 소를 몰아서 들어가는 경기장도 보고 오래된 성벽과 요새도 구경했다.
다시 찾아간 여행안내 센터에서 WiFi의 소중함을 느끼며 급히 정보를 모았다. 그동안 잠시 사라졌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소몰이 축제 그림이 그려진 예쁜 물통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걸 사겠다고 기념품 코너 앞을 서성거렸을 그를 생각하니 콧등이 다 시큰거렸다.
물론 그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다음 날부터 순례길 마지막 날까지 수통水桶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주통酒桶이 된 이 물통의 운명을. (와인이라는 진통제 없이는 걸을 수 없었던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이 물통에 와인을 따라 채우는 경건한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이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나를 ‘빨간 물통에 와인을 넣어서 마시며 걷는 이상한 애’로 기억하기도 했다.)
곧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시수르까지 10분 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코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그가 쉽게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는 혹시 문이 닫혀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며 먼발치에서 지켜봐 주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최대한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이 길을 걷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오늘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서.
옷깃이 스치려면 전생에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평소처럼 공부하러 가는 중이었던 그가, 그저 길 잃은 여행자일 뿐이었던 나와 잠시 스쳤다. ‘억겁’의 시간이 걸린 인연으로 그 ‘찰나’의 순간, 그 골목에서 우리는 스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기꺼이 한나절의 시간을 내어주었고, 그의 진심과 배려는 우리의 인연을 ‘억겁의 시간이 또다시 억겁만큼 필요한’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녹을 수 있다고 한 올라프처럼, 올라코도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그의 진심을 녹여 진정한 우정을 가르쳐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기꺼이 녹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한 발, 한 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이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