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제9길을 걷
연휴에 삼남길 9길 10길을 완주하여 마무리하려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대부분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고 실행은 시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지거나 말로만 떠들다가 신기루같이 사라진다.
완벽한 계획과 시간 일정까지 만들어서 메모장에 적어 놓고 기다렸지만, 막상 닥치니 애들이 여행을 간다고 며칠 동안 애견을 맡긴다고 하니 거절할 수 없어 또 포기하고 주말에 제9길이라도 걸으려고 각오를 다졌다.
한 달 만의 트레킹이고 계절이 바뀌어 가을 초입이라 긴 팔과 가벼운 점퍼를 준비하고 나름대로 장비를 챙기다 보니 1시 넘어 잠들었는데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트레킹의 설렘인지 휴일의 기대감인지 구별이 안되지만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시계가 7시를 가리킨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맘도 있지만, 이제는 일어나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전철로 오산역까지 이동하고 오산역사 2층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을버스로 원동초교에 하차한 후 도보로 맑음터공원까지 이동하였다.
제8길인 오산생태하천길을 완주 후 오산에코리움에서 오산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니 의미 없이 지루하여 이번에는 버스를 선택했다.
제9코스 진위고을길(맑음터공원~원균장군묘역)은 17.9km (4시간 50분 소요예정)이라 안내되지만, 난이도 어려움으로 6시간 정도 예상하고 출발하였다.
맑음터 공원에서부터 시작하는 제9길 진위고을길은 한동안 도심 구간을 지나야 한다. 도심은 아직 개발 중인 곳이 많고 국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공단처럼 터를 잡고 있어 공사를 대기 중인 빈터가 많고 개발이 덜 되어서 도로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고 특히 공단과 작은 중소기업들이 많이 존재해서 트레킹하기 좋은 길이라고 표현하기는 억지스럽다. 특히 흙길보다는 포장된길이나 많아 걷기에 불편하였다.
맑음터 공원에서 야막리 방향으로 남진을 하면 양쪽으로 논길 가운데를 지나는데 추석이 지났으나 아직 추수하지 않은 벼들이 비와 태양을 모두 이기고 이제는 무거움을 가누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추수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논 위쪽으로는 온실이 많이 보이는데 야막리는 수도권 채소1번지로 80년대는 무, 배추가 주된 농작물이었으나 지금은 수막재배, 수경재배 등으로 현대화하여 ‘진위오이’‘진위호박’등이 농수산물 시장에서 이름을 날린다 한다.
도심을 지나 진위면 봉남리 쪽으로 접어드니 오래된 느티나무가 반겨준다.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려고 자세를 잡는데 동네 분이 오더니 느티나무 옆에 서라며 찍어 준다고 한다. 나무관리가 잘되었다고 하자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어렸을 때 이나무에 줄을 매고 그네를 타고 어르신들은 막걸리 파티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추억도 없고 애들도 동네에서 뛰노는 것을 보기 힘들다며 한탄한다. 다들 지나온 추억은 아름답다.
가곡리 마을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옆의 현수막이 눈에 뜨인다. 개인사 유지이니 통행 시 토지주의 허락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저 정도로 살벌한지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을의 배나무밭 사이를 지나 진위향교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삼남길 리본 외에 섧길 이라는 리본이 자주 눈에 뜨인다. 가끔은 혼동이 온다. 배나무밭이 끝날쯤에 마을이 내준 길에 감사하고 주민피해 없이 걷기를 부탁하는 입간판이 있다. 지금은 모두 수확한 뒤지만 무더운 여름에 걷다가 갈증이 나면 시원한 배의 유혹을 참기 어려울듯하다.
배밭을 지나니 밤나무밭이다. 작은 소로길에 밤송이가 널려 있다. 몇 개 주워 상태를 보니 절반은 벌레가 있는 듯하여 다 버리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산을 넘어오니 열두 시가 넘었는데 적당한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마을 입구 정자에 자리 잡고 준비한 빵과 과일 그리고 과자와 음료수를 벌여놓고 점심을 대신한다. 간식으로 준비한 것이 주식이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되었다.
잠시 쉬었다가 진위초등학교를 거쳐 향교로 향한다. 초등학교를 지나자 소몰이 국밥집, 중화요리 등 음식점이 모여있는 거리를 만났다. 조금 더 걸어서 여기까지 와서 점심을 해결할 걸 잠시 후회가 되지만 이제는 늦었다. 조금 더 걷자 진위향교가 보인다.
진위향교의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18세기의 건축기법이 잘 녹아든 건물이기도 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스탬프함을 찾는 데 몇 바퀴를 돌았다. 스탬프함은 주차장 끝쪽의 화장실 축대 아래에 자리 잡았으나 그 앞에 큰 차들이 주차되어 보이지 않아 몇 바퀴를 돌았다. 주차된 차들이 없다면 쉽게 눈에 뜨일 위치이나 많은 차로 시야를 방해받아 못 찾았으나 원망할 곳도 없다.
향교를 나와 진위천을 건너 마산리에서 잠시 고민한다.
여기서 지정된 길은 산길로 접어들어 덕암산 정상을 지나 원균장군 묘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도를 보니 317번 국도를 중심으로 큰원을 그려 돌아가는 길이다. 잠시 고민을 하다 31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잠시 요령 피운다. 카페 길섶을 지나 계속 걷자 도로는 확장공사로 인도가 없어졌다. 카페 길섶 직전에 우측 산길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하는데 지나쳤다. 돌아가기는 멀리 왔고 그냥 내친김에 도로를 따라 걷는데 인도가 없어져서 차도를 따라 걷는다. 지나던 차들이 속도를 늦추거나 피해간다. 지정된 길을 무시하고 나 편한 대로 큰 도로 걸은 대가가 매연과 먼지가 다 내 것이고 큰 트럭이 지날 때는 그 후폭풍에 몸이 다 휘청거린다. 요령의 대가는 크다.
도로를 따라 한 시간쯤 걷자 왕뒤길에서 마을 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지도에 표시된 정상적인 트레킹 길이다.
마을 입구 논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데 트렉터를 몰고 지나가자 벼들이 잘리고 벼만 남아 자동으로 포대에 담아진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지원사업 나가면 낫으로 벼를 베어 마르게 서로 기대어 세워 놓아두면 며칠 후에 다시 지원사업으로 나가 타작기로 타작하고 삽으로 벼를 포대에 담던 봉사를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종착점인 원균장군묘 근처에 도착하자 유독 원씨 성을 가진 분들의 집 문패가 많이 보였다. 이곳이 원균장군이 태어난 곳이고 원씨 성을 가진 분들의 집성촌인듯하다.
원균장군묘 입구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원균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워야 한다며 과거 평가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원균이 역적은 아니지만, 이순신을 부각하려고 반대로 원균을 역적으로 몰았고 이제는 재평가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고 내가 평가할 부분도 아니다. 그리고 동년배라 젊은 시절 같은 시대를 겪어 삶에 관한 많은 공통된 이야기가 주제에 올랐고 많은 부분을 서로 공감했다. 더욱이나 퇴직 후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많은 공감대를 얻었다.
커피 한잔과 잠시 대화가 한 시간을 넘겼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서정리역까지 태워준다고 한다. 서정리역에서 전철을 타니 퇴근 시간과 겹쳐 앉을 자리가 없다. 병점에 오니 경로석에 자리가 생겼다. 평소라면 양보할 일이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경로석 대상자가 나뿐이라 눈치 보지 않고 앉는다. 평안한 마음으로 고생한 내 육체에게 칭찬하고 잠시 눈을 감는다. 수고했다.~~ 이제 삼남길은 제10길 소사원길만 걸으면 삼남길은 완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