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일상

모기 잡고 요리하고 커피 마시기(2023. 11. 1.)

by 프로스윤

I. 새벽에 모기 1마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모기소리에 깨어나 불을 켜고 잠을 깨운 이 녀석을 잡으려고 온 방안을 수색했으나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잠만 설쳤다. 하긴 요새는 모기가 아니라도 매번 중간에 잠을 깬다. 소변을 보러 일어나기도 하고 소변과 무관하게도 3-4시간 자고 나면 깨곤 한다. 잠도 체력이 있어야 잘 자는 것인데 체력이 약해진 탓일 게다. 내 또래 60대들은 다 그렇다고 하는데 왠지 좀 서글프다. 나이가 드는 것은 당연하나 남들과 똑같아진다는 것이 뭔가 좀 아쉽다.

그놈의 모기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9시 반까지 침대에 누워있다가 기어이 어제 그 녀석을 에프킬라를 뿌려서 잡았다. 새벽에는 보이지 않던 놈인데 시꺼멓게 몸이 단 큰 놈이 침대머리에 앉아 있어서 냅다 에프킬라를 퍼부었는데 시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파리나 모기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게 대했다. 나는 모기를 잘 타지 않는 체질이라 잘 물리지 않았고 윙윙거리는 소리나 팔다리에 앉는 감각이 느껴져서 금방 쫓아버릴 수 있었다. 파리가 가끔 방에 들어와도 창문을 열고 쫓아내기만 했는데 강화도 시골에서는 쫓아내어도 금방 들어와 그 성가심이 좀 심하다고 느껴져서 이제는 아예 파리채를 사 와서 보이면 그냥 때려죽인다. 산 생명을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이 좀 꺼림칙해서 쫓아버리는 방법으로 가급적 살생을 피하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파리나 모기나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인데 우주 대자연에서는 죽는 것이 별로 특이하지 않은 현상이고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그들의 목숨을 거두나 밖에서 얼어 죽으나 어차피 죽게 되어 있는 놈인데 나를 성가시게 하다가 맞아 죽거나 독살당하더라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억울한 놈도 있을 것이다. 나를 물어 피를 빨아보지도 못하였거나 이제 막 부화되어서 들어왔다가 제대로 윙윙거리며 날아보지도 못한 파리도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운명이다.


II. 양치질과 세수를 대충 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프다. 아침을 뭘 먹을까 냉장고를 열어 보니 어제 사온 통배추, 청경채, 표고버섯등이 보였지만 늦잠을 자고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어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진다. 좀 오래전에 내가 사 둔 큰 무로 뭇국을 끓여 먹기로 했다. 나 어릴 때 겨울에는 자주 어머니나 누나가 무로 뭇국을 끓였다. 가끔은 그냥 뭇국이 아니라 좀 맵게 한 ‘무 선국‘도 끓여주었다. 그때 먹던 뭇국이 생각나서 뭇국을 시도해 보니 맛이 나쁘지 않아 따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가끔 뭇국을 끓여서 햇반과 같이 먹곤 한다. 뭇국은 먼저 다시마 3-4조각과 멸치로 국물을 우린다. 가끔 직접 요리를 해보면서 깨달은 것은 국물요리에는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우려서 끓이면 그 맛에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이므로 1 대접 정도의 물에 다시마 4조각과 추석에 선배로부터 선물 받은 멸치를 듬뿍 넣고 6-7분간 국물을 우린다. 먼저 다시마를 건져내고 이어서 멸치를 건져낸다. 이렇게 사용된 멸치는 소금기가 완전히 빠져서 집으로 종종 들르는 길고양이인 까망이와 쫄보의 간식으로 최고다. 그렇게 우린 국물에 가늘게 채를 썬 무 한 움큼과 대파를 조금 넣고 고춧가루 1 티스푼을 넣고 푹 끓이면 끝이다. 다시마와 멸치가 우려 지면서 약간 간이 되었고 좀 싱거운듯하면 액젓 반 스푼만 넣으면 충분하다. 다시마, 멸치, 무의 시원한 맛과 고춧가루의 칼칼한 맛이 조화롭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무 선국은 무를 삐뚤게 썰어서 잔뜩 넣고 여기에 고춧가루와 띠포리(밴댕이)를 통째로 넣어서 약간 맵고 짭짤하게 먹는 것인데 그것은 국물보다는 무를 익혀서 먹는 맛과 띠포리라는 작은 생선을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무 선국'을 재현할 자신은 없고 띠포리 마른 것도 집에 없어서 내 나름대로 응용한 시원하면서 칼칼한 맛의 국물 뭇국을 간단하게 만들어 자주 먹는다. 집사람이나 아이들은 내가 끓인 이 뭇국을 그렇게 환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해주면 그런대로 잘 먹는다. 반면에 나는 매번 이 뭇국을 끓여 먹을 때마다 정말 스스로 감탄한다. 어떻게 이렇게 시원하고 약간 칼칼한 맛이 이런 간단한 재료에서 나오지? 이런 맛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내었지? 이렇게 끓인 국물에 햇반 반그룻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옆집에서 담아서 나누어 준 강화 순무김치 4조각을 꺼내어 같이 먹는다. 정말 맛이 최고다. 옆집에 대해 감사하자.


III. 아침 식사가 끝나면 습관적으로 커피가 당긴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사둔 - 다른 커피원두보다 두배로 값이 비싸다는 케냐 AAA 원두를 꺼내어 그라인더에 간다. 전기 그라인더가 아닌 수동 그라인더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오랫동안 검색하여 골라 구매한 대만산 주물 그라인더에 천천히 갈면서 그 진한 원두향을 느낀다. 이 주물 그라인더는 가성비가 괜찮다. 무게가 상당하게 나가고 시꺼먼 주물덩어리로 된 커피투입구와 톱니바퀴, 원목으로 된 받침과 갈린 커피가 담기는 서랍이 제법 잘 어울리고 엔틱 한 느낌과 레토로 느낌이 꽤 괜찮다. 커피의 향은 봉지에서 꺼낼 때, 그라인더에 갈 때, 드롭 포터에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릴 때 그 향이 정말 좋다. 집사람이나 아이들은 전동 그라인더가 편하고 빠른데 왜 굳이 수동을 사서 힘들게 고생하냐고 하지만 나는 그라인더에 원두를 가는 그 행위와 그 냄새가 좋다. 나는 바쁜 일도 없는데 굳이 전동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 필요가 없다. 예전에 종종 반듯하게 모양을 잡아 메어둔 상태의 목걸이형 넥타이를 매고 다닌 적이 있는데 곧 시들 해지고 그냥 일반 넥타이를 사서 직접 손으로 메고 다녔다. 바쁠 때 넥타이 멜 시간도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메어진 넥타이보다는 내가 그때그때 직접 메는 넥타이가 더 좋듯이 수동으로 커피를 직접 갈아서 마시는 것이 더 좋다. 안 바쁘니까.

오후에는 지난번에 뿌려서 제법 싹이 많이 나온 청경채와 봄동의 싹을 속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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