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된장국 끓이기

일상 2 (2023. 11. 3.)

by 프로스윤

I. 날씨가 흐리다. 중부지방에 비와 강풍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렇게 흐린 날은 기분도 별로다. 특히 가을에 흐린 날은 더 그렇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서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느지막하게 깨어서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좀 더 피우다가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 어제 솎아 둔 청경채, 봄동의 새싹으로 된장국을 끓였다.

새싹 된장국은 어머니가 종종 해 주시던 국이다. 그때만 해도 밥 먹을 때 할머니와 아버지 밥상에는 항상 국물이 있어야 했는데 밭에서 나는 것 이외에 따로 국거리가 없으니 남새밭의 새싹은 늘 즐겨 먹는 국거리였다. 된장 푼 물에 호박을 넣으면 호박 된장국, 배추를 넣으면 배추 된장국, 시금치를 넣으면 시금치 된장국이 된다. 나는 어머니께서 어떤 양념으로 어떤 방법으로 국을 끓였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당시에는 남자는 부엌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고 초가집 구조상 부엌은 별도 칸에 있어 어머니의 요리 모습을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요즘 나는 국물요리에는 무조건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우린다. 새싹 된장국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서 건져내고, 된장을 반 스푼 정도 푼 다음에 씻어둔 새싹을 몽땅 넣고 조금 더 끓여주면 끝이다. 너무 많이 끓이면 안 된다. 요즘은 제법 숙달되어 간도 볼 필요가 없이 입에 맞다. 싱거우면 멸치 액 젓을 조금 넣기도 하지만 된장의 짠맛이 있으므로 된장국에는 별도로 더 추가할 필요가 없다. 된장을 아주 조금만 풀었기 때문에 다시마와 멸치 국물의 시원함이 그대로이고 새싹의 풋내를 된장이 완벽하게 잡아주어서 그 시원함이 기가 막히다. 어제저녁에 술을 먹지 않았지만 해장으로도 최고일 것 같다. 여기에 햇반 반그릇을 말면 한 끼 식사로도 완벽하다.

II. 길고양이 쫄보가 와서 밥 달라고 보채어 현관문을 열고 나와보니 밤새 바람이 제법 세찼던 모양이다. 낙엽이 현관 앞 목조 데크에 널려있고 어제 벗어 둔 장화며 연장들이 넘어진 채로 뒹굴고 있다. 흐린 가을날이다. 정원 한편에 마련해 둔 텃밭에 나가보니 밤새 새싹들이 제법 더 자란 것이 눈에 띈다. 쪽파와 마늘도 좀 더 컸고, 청경채와 봄동은 새싹 순의 수준을 넘어서 제법 잎의 형태를 보이는 놈도 있다. 잎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남겨두고 싹들은 더 솎아주어야 하는데 자꾸 미루게 된다. 길고양이 까망이가 청경채 새싹 있는 곳에 똥을 싸고는 제 딴 에는 덮는다고 덮었지만 똥 덩어리가 그대로 보이고 뒷발로 흙을 파서 덮으면서 옆 고랑의 새싹을 마구 파헤쳐 놓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쪽 칸은 고양이 화장실로 주어야 할 것 같다.

IMG_0808.jpg


keyword
이전 01화강화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