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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당신으로 인한 죄, 우리에 의한 대속

by 고전을 마시다

이 마을에는 단 한 명의 광대가 살고 있다.

언제부터 광대 노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어떤 죄로 인해 신세를 망쳤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눈앞에 닥친 하루를 나는 것에 몰두했다. 배고픔을 버티기 위해 식량을 생산하고, 추위와 부끄러움을 견디려 옷을 만들고, 온몸을 부스러뜨리는 푸른 달빛과 짐승의 이빨을 피할 집을 짓는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육신을 보존하는데 없어선 안 될 것들이었다. 반면, 어째서 있어야 하는지 모를 직업도 마을에 존재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오늘을 잊게 만든다. 당장 급급한 먹고사는 일은 제쳐두고, 쾌락과 기쁨을 권한다. 그래야지 진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존재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광대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 마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다소간의 여유가 있어야지만 의미가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광대는 성가신 존재일 뿐, 거기다 심신이 더욱 지친 요즘 같은 시기에 그는 더욱 관심을 받지 못한다.


오직 마을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무엘만이 그에 대해 상세히 말하고 있다.


'그는 허연 분칠 속에 더 창백한 얼굴을 숨긴 사나이였다. 곧게 솟은 코를 중심으로 팔자주름이 둥글게 나 있다. 얇은 입술은 과하게 길고, 볼은 그늘이 질 정도로 파여 있다. 깊고 그윽한 눈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진한 어둠에 가려져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얇은 눈꺼풀 속에 불룩이 튀어나온 눈동자와 길게 쓸어내리는 눈썹을 볼 수 있었다. 가녀린 달걀형 얼굴 형태에 겨우 들러붙은 가죽을 뒤집어쓴 슬픈 얼굴. 우리 마을의 유일한 광대는 한 여름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에 의해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평소 허옇게 얼굴을 분칠하고 눈썹은 날마다 다른 모양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과할 정도로 치켜세워진 입가의 분장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 이 남자는 어떤 이든 눈을 마주치면 웬만한 봉변을 당하지 않고서야 그 눈맞춤을 끝까지 이어갔다. 손목 끝에는 달랑거리는 작은 방울이 매달려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요란하게 울려댔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찍이 종소리가 들리면 이 거북한 남자를 피하려 애써 돌아갔다. 그걸 노린 것 인지 그는 늘 몸짓을 심난하고 과장되게 해댔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존재인지 괴롭히려는 악동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어딜 가던 환영받지 못했다. 마을 행사에 나타나면 빙글빙글 춤을 추는 게 고작이었다. 타인의 웃음을 먹고사는 게 아니라 미움을 얻기 위해 사는 것만 같았다. 광대의 이름을 알려져 있지 않다. 나이는 사십 대에서 오십대로 여겨진다. 딱히 근거는 없었다. 이 마을 법에 따르면 혼인하지 않은 여자와 잠자리한 남자는 광대가 되는 벌을 받는다. 그 상대는 몸을 파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을 유일의 광대인 이자의 여자는 몸을 팔았던 아니 혹 지금도 팔고 있을지 모를 콘스탄틴의 어머니일 것이다. 여자 쪽이 훨씬 나이 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나이 지긋한 여인이 젊은 사내를 탐했을지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는 알 길도 말해주는 이도 없기에 추측할 뿐이다. 이 마을에는 사람들이 궁금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려고 들진 않는다. 콘스탄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이 사내. 이뤄지지 말았어야 할 만남에서 비롯된 괴로운 관계, 기구한 운명, 단단히 꼬여버린 속박, 뗄 수 없는 방울을 달고 다니는 그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몇 번이나 말을 건네 볼까 싶었지만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차갑게 씻겨 내려간 그날, 나는 그의 본 얼굴을 보았다. 모든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며, 달게 벌을 받는 자. 마치 남이 저지른 죄를 기꺼이 대신할 성인처럼 성스럽고 고귀한 얼굴을 지닌 자. 하지만 아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그의 죄로 인하여 손가락질받는 청년 콘스탄틴은 가엾기 그지없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의 씨앗과 형벌의 양수, 낙인찍힌 요람에 눕혀졌을 뿐이다. 측은한 운명, 거기다 젊은 시절 저 광대가 정숙한 여자를 억지로 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라면 자신의 아랫도리 행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 그러므로 저 남자는 죄를 더 무겁게 받아 마땅하다. 돌을 맞아야 한다. 당신이 지은 죄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 사내와 그리고 정숙한 여자로서 누군가의 아내가 됐을지도 모를 여자가 함께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덤으로 난 듣기 싫은 방울소리와 욕지기를 일으키는 표정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 치욕스러운 숙명을 짊어진 자로서 마을의 본보기가 될 지어다. 그들 외에 아무도 그런 벌을 받고 있는 자가 없음은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가련함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는 사무엘마저 그에게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대체 이 남자에게 부여된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의 풍속을 지키기 위한 본보기로 충분한 것일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누구에게서 어떻게 얻어 살아남은 것일까. 이 회색이 내린 세상에서고 그가 과연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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