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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잔혹한 동화

by 고전을 마시다

마침내 두 의식은 현실로 돌아왔다. 지독히 울적한 과거로의 여행 녀를 정신병이란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밀락 말락 롱하고 있었고, 들은 슬픔에 잠겨 숨을 멈출 뻔했던 바로 그 직전 아슬아슬하게 그들 속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참담한 비통을 피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을 만큼 다행스러움 가슴을 가득 메웠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매일같이 의지를 다잡고 무엇이라도 해내보려 발버둥 쳤지만 그건 그물 걸린 짐승의 애처로운 몸짓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 시기, 미움, 비겁함, 뻔뻔함을 한 데로 똘똘 뭉쳐 한 인간을 증오하고 괴롭히는 데 사용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향하는 원한은 모난 인간들을 의기투합하게 하여 부족한 악덕을 서로 채워주기까지 했습니다. 외로운 외지인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쳐드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은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감사하고, 자신과 무관한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는 의지에 감동했지요. 하지만 인간이란 마치 껍질 벗겨진 알맹이처럼 금방 부패해 버리기 마련이라 고마움은 순식간에 갈색으로 변해 버리고, 결국 썩어버린 자신의 양심을 선의를 베푼 자의 탓으로 돌려버리죠.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추악함에 무뎌졌는지, 어렴풋 알았을 테지만 애써 외면해 버렸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눈동자에 담기던 영혼을 잃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약해지기 시작했어요. 잘 되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잘 못 되는 일은 전부 아버지의 책임이 됐어요. 심지어, 들짐승이 작물을 망쳐놓는 것 마저 그리됐지요.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입지는 좁아져가고 그것은 여러 나쁜 고리들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공식적인 장소에서 아예 발언권이 사라지고, 부족하나마 끊이지는 않았던 먹을 것이 드문드문 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미 인간들의 본성을 경험하신 바 있기에 늘 자신이 심판의 날에 사용한 검을 허리에 꼭 차고 다니셨다고 해요. 검집에서 검이 뽑힌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늘 사람들은 존경심으로 포장한 두려움으로 그를 대했습니다. 한 인간이 사람들을 거느릴 때 두 종류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합니다. 인간은 인정과 의로움만으로 계도될 수 있다는 것과 인간은 겉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속은 짐승과 같이 폭력적인 것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입니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다시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느냐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 극단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할아버지의 첫 마음가짐은 알 수 없지만 늘 폭력과 억압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인간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아마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당할 수 있는 갖은 고통을 당하고도 지금 이 순간조차 하늘에서 인간에 대한 최후의 선함을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어젯밤 처참히 죽임을 당한 이고르와 흄이 여러 명을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정확히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지요. 문을 걷어차듯이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그들의 모습을 난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흄은 아버지에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부족하니 큰 집을 가진 이로써 희생을 해야 마땅하다고 소리쳤습니다. 선대인 할아버지는 자신이야 말로 끼니를 굶을지언정 마을주민은 굶기지 않았다면서요. 그런데 아버지는 혼자도 아닌 세 입구멍에 무언가를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으니, 이는 자질도 도리도 없는 행동이라고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그때라도 아버지는 그 자의 말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게 아니라 그의 오만불손한 행동과 무례한 언행을 심판해야 했어요. 당장이라도 할아버지의 검을 꺼내와 그 자의 목을 내려쳤어야 했다고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선의에서 나온 것인지 비겁함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오판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무엇이 됐건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지요. 그것은 호인으로서 아량도 양보도 아닌 무뢰배의 강압에 굴복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떤 무리한 요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비루한자로 전락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은 옥수수가루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건 아버지는 손도 대지 못하고 우리에게만 하루에 단 한번 물에 타 소중히 먹이던 것이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웃으며 그것을 건네자 흄은 받지 않으며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그것을 덥석 받으면 사람들은 그가 남의 것을 억지로 뺏은 것이라 오해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지켜보는데서 자신에게 제발 이것을 받아달라 간절히 빌라고 소리쳤지요. 그래요. 그때라도 아버지는 칼자루로 그 자의 짙은 쌍꺼풀 아래 툭 튀어나온 눈알을 향해 힘껏 후려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야 했지요. 네 놈 얼굴에 번뜩이는 기름은 대체 무얼 먹고 만들어진 것이냐고.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멍청하게 수긍하였습니다.


어떠한 절망적인 순간의 연속이라도 그것을 끊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당사자가 피한다면 그건 스스로 감당할 몫인 거겠지요. 아버지는 당당히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죄인처럼 수그린 채 뒤쫓았습니다. 저는 동생의 손을 잡고, 제발 아버지가 그들의 뜻대로 하지 않길 바라며 따라 나갔습니다. 마을의 표지판이 세워진 공터에 이미 모든 주민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흄은 준비된 초라한 단상에 올라갔고, 아버지는 축 늘어진 채 그에게 자루를 바쳤습니다. 흄은 세 번이나 받지 않는다며 거절했지만, 아버지는 네 번이나 받아 줄 것을 간청했을 뿐 아니라 애원할 때마다 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제야 흄은 받으며 외쳤습니다. 앞으로 르 백작가의 식량은 그들이 직접 마련해야 한다고. 그뿐이었습니다. 그 식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선 단 한마디도 없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첫 비굴함에는 가문의 명성이 산산이 부서졌음을 두 번째 애걸복걸에서는 한 남자의 권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세 번째 구걸에서는 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지켜줄 필요성이 없음을. 높은 곳에 위치한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만큼 더 깊숙이 추락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행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무엘의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입은 열려있었다.


난 평소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은 것은 되도록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상상할 능력자체가 결여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사지가 찢긴 이들의 비열함과 저열함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같은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마땅히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원죄가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도 그런 추악함이 숨겨져 있을까? 난 내가 갖고 있는 것과 자신으로서 오롯이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을 모조리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자 삶의 이유, 나만의 특권이었다. 그래 그것을 누군가 아무 이유 없이 빼앗으려 든다면, 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지저분한 방법을 쓸지도 모른다. 어떤 비열한 짓을 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그 침입자의 손을 몽둥이로 으깨버리는 정도밖에 생각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검은 동굴 속에서 백일이 넘게 틀어박힌다 해도 인의 인간성을 부정해 버릴 방법은 강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이 뻗치는 것만으로도 내 살갗에 지네가 올라오는 것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며 모든 것을 떨쳐냈을 것이다. 상대의 존엄을 말살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인간성 먼저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생각을 마치고 난 다시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거북함을 진정시켰고, 인간의 처절한 행위의 청취를 갈구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이전에는 마주치면 예의상으로나마 했던 행위들은 깡그리 사라지고, 마치 더럽거나 불길한 것을 본 것 마냥 시선을 돌렸습니다. 우리 몸에서 뿜어지는 공기가 불결하거나 부정한 것인 마냥 침을 뱉거나 코를 풀며 지나갔습니다. 어떤 험상궂게 생긴 자는 발을 심하게 구르며 위협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깊은 산 중에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남자의 행색은 거친 여정을 해온 게 역력했음에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거짓된 눈매를 지녔고, 여자는 동전 몇 닢에 팔려버린 노예처럼 처진 입술과 죽어버린 눈깔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처음부터 축복이니 기적이니, 선택받은 사람들과 장소라는 말, 구원, 인도 그리고 사랑과 징벌을 동시에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은 현혹됐고, 몇 명의 사람들은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원래 마을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마을 집회를 그자를 이용해 맹신의 회합으로 바꾸었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던 공간이 몇몇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하게 할 세뇌의 고문실로 변질됐습니다. 아버지는 마을 행사와 결정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게 끝이었다면 좋으련만 강요된 수락은 더 잔혹한 강탈을 불러올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우린 젊은 행정관에게 집을 빼앗겼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몸에 걸친 것들만 지닌 채 마을 변두리 창고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믿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남자를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바깥세상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마을을 떠나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는 아무도 가려하지 않은 숲으로 나아가 작게나마 무언가를 일궈왔습니다. 그는 매일 늦은 밤이 돼야 돌아왔고, 산딸기며 버섯이며 작은 새의 알 같은 것들을 으깨어 아직 어린 우리들의 입에 넣어줬습니다. 그는 달빛 아래에서 우리가 잠결에 눈을 비비며 무언갈 오물거리는 모습을 지켜봤지요. 전 행복을 만끽하며 미소 짓는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둡고 비좁은 환경이었지만 아버지는 우리가 말을 가려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우릴 보살피셨는데, 부엉이가 심하게 우는 어느 날 밤 나가신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었요. 사람들은 우릴 버리고 도망친 것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렸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 위한 한 번의 들숨 순간, 집회장의 무거운 문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새로운 아침을 알리는 빛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내 어두운 그림자들이 그것을 가렸다. 나는 순간적인 빛을 감당하지 못해 잠시 눈이 멀었다.


가르라, 그는 백정이 도살한 동물의 가죽을 받아 남겨진 살을 말끔히 발라내 무두질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에 말수도 적거니와 나서는 법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는 선두에 서 사람들을 이끌었다.


“대체 밤새 무슨 난리를 낸 거야? 저주받은 자식들로 인해 이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버렸어. 이 년 역시 이 마을과 땅에 불길한 씨앗이라고! 당장 끝장내버려야 해.”


뒤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에 웅성거리더니, 이후 작게나마 동조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


“인간의 탈을 쓴 악령의 앞잡이일지도 몰라,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를 자식을 낳았고 결국 그것이 흘린 피가 마을에 스며들어 이 땅을 병들게 했어. 하늘이 다시 우리들을 굽어볼 수 있도록 우리는 이자를 어떻게든 해야만 해.”


“우리들은 성실하게 시킨 대로 한 거밖에 없어. 우리가 이런 불행을 겪을 이유가 없단 말이야! 저주받을 것들, 이 더러운 자식들!”


침을 뱉는 자가 나타나더니, 어떤 자는 이윽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송두리째 잡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우둔한 짐승들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컹컹컹, 꿀꿀꿀, 꽥꽥꽥 알아 처먹을 수 없는 소리만 시끄럽게 내질렀다. 자신의 생각은 일절 없이 남이 명령하는 대로 살아왔으며, 이 마을이라는 울타리 속 개돼지 같은 존재들, 그들은 자신들에게 채찍을 내리쳐 줄 주인님들이 사라진 것에 분노하여 난동을 부렸다. 모처럼 나타난 변화의 동인을 무참히 짓밟고, 촉발된 활기를 짧은 냄새만 풍긴 채 사라져 버리는 분노로 승화시켰다. 가녀린 여인은 그대로 그들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짐승들의 거친 날숨이 내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속에는 미세한 가시가 수없이 돋아져 있었고 그대로 내 폐 속 여기저기를 찔러댔다. 혼란함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이 그녀를 그리 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됐다. 난 나보다는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내 진심을 그러했다. 그러나 세상 전부를 만족시킬만한 결정은 결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녀가 그들에게 능욕당해서는 안된다며 난 외쳐야 했다. 끌려가는 그녀를 향해 나는 있는 힘껏 쫓아갔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큰 소리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강렬한 뙤약볕에 타버린 잡초처럼 무게감 없이 바래진 색감만 유지했다. 한 마디로 난 모든 생명이 소진됐다.

차가운 집회장 마룻바닥에 난 엎드려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잠들어있었던 것일까? 뻣뻣해진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뒤틀리고 굳어버린 몸속의 뼈마디 하나하나가 저항했다. 아직 나의 의지가 그것들보다는 강했으므로 일어설 수는 있었다. 나무 바닥 군데군데 위치한 쥐구멍들을 보며 내 손가락, 발가락, 귀가 무사한지 만져보고 세어보았다. 코 또한 그대로인지 여러 각도로 더듬거렸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무사히 그대로였다. 당장 발견하지 못한 어느 부분이 쥐들에게 갉아 먹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감각과 사고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푹 잠들기 전 며칠은 뿌옇고 악취를 풍기는 연기 속에 뇌가 절여져 있었던 것만 같았다. 집회장의 문을 나와 땅을 내딛기 전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몇 개 안 되는 계단이지만 조금이나마 높은 곳에서 본다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 소란과 혼란은 온데간데없이 마을은 잠잠했다. 아니 그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는데도 뚜렷한 변화가 없다니 무심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관찰은 무의미할지 싶어 땅에 발을 디뎠다. 어디부터 찾아가야 할까. 아니 누구부터 찾는 것이 내게 가장 의미가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문득, 난 그 지독한 여정으로부터 마을로 돌아온 남자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의 눈과 얼굴을 다시금 면밀히 살피고 싶었다. 그가 한 말이 정녕 거짓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리고 그 거짓으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난 한달음에 내달려 마을 귀퉁이에 있는 집으로 들어섰다. 우적우적 더러운 그릇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는 나를 흘낏 올려 다 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쩝쩝쩝 거리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채웠다. 그 모습만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의문은 의미를 잃었다. 그건 마치 돼지의 행동과 울음을 이해하려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몸을 돌려 바깥을 향했고, 다시 땅을 딛기 전에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망설였다.

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만 했다. 가장 인간적이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쟈빈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실체 있는 무언가를 일궈낸다. 그것은 우리 입속으로 들어와 살과 근육을 이룬다. 참으로 유익한 것이다. 그 행위의 반복을 지겨워하지도 않으며 스스로도 가치 있는 인간이라 여긴다. 거기에 자신은 삶을 더 이어가야 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삶의 의미를 알고 더 살고 싶은 존재야말로 인간다움의 표본이리라. 짧은 생각에 맞춰 그의 집 앞에 도달했다. 반쪽밖에 남지 않은 문의 손잡이, 망가진 창틀, 내려앉은 처마가 눈에 들어왔다. 난 조심조심 문을 열었다. 제발 내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게 더 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온 건 말라비틀어진 사물들뿐이었다. 온갖 벌레들과 어울리는 사물들, 그 형태와 쓰임을 구별할 수 없는 집구석을 향해 난 물었다.

“쟈빈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난 반드시 그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파리인지 무언지 모를 날곤충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고, 뒤 이어 힘겨운 대답이 이어졌다.

“쟈빈은 부엉이가 또렷이 울던 때 나무꾼과 함께 식량을 구하러 떠났어요.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난 그때 그가 떠나기 전 남긴 잡곡 한 줌을 먹지도 못한 채 기다리고 있다오. 그가 돌아왔을 때 함께 씹으면서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고 싶어서.”


난 그 음성이 흘러나오는 말라비틀어진 것 앞에 놓인 작은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그 안은 이미 텅 비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쟈빈의 집은 마을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숲과 어우러진 다채로운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마주한 모습은 적막함이었다. 눈앞에 수많은 생명들이 저마다 활기를 뿜고 있었지만 생명이 살아 숨 쉼을 실감하게 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음속이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까닭에 난 고독함이 선사하는 쓴 입맛을 다셨다.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할 감정에 스며든 김에 더욱 깊은 곳까지 빠져 들어보기로 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세상을 빨아들이는 거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피부 속을 파고들었으나 막상 들어서니 그 어떤 변화도 일지 않았다. 우선 며칠간 일어난 사건들을 순서대로 이해하려 했다. 그리곤 가슴을 채우고 있는 감당 못할 감정들을 하나하나 분리시켜 설득시킬 수 있는 것들은 진정시켜 제자리로 돌려보내려 했다. 내 안의 심연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 발밑 잔나무가지들이 뚝뚝 부러지는 게 느껴지고, 이름 모를 새들의 속닥거림이 들렸다.


허무함만이 폐부를 가득 채웠다. 난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늘 위로 붉은 기운이 넘실넘실 뻗쳐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 주변 공기는 일그러진 채 일렁였다. 불길한 예감이 마구 솟구쳤다. 이 마을에서 뭔가를 불태운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서둘러 불길을 향해 뛰어갔다.


날씨는 화창하고 맑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직접 이룩한 어둠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들은 뭔가를 태웠다. 군데군데 형체를 잃은 부분도 있었으나, 어떤 형상인지는 명백했다. 아마 어른들은 무서움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지라도, 순수한 아이는 분명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로 빚은 사람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칭송받을 조화를 부린 것이거나, 지옥불에 떨어질 악업을 행한 것이다.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물체,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맡아본 적 없던 고소 하면서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냄새가 온 마을을 뒤덮었다.


‘우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회색의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명쾌히 정리됐다. 이리 당연하고 단순한 결론에 어찌 그간 도달하지 못했는지 실소가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어떻게’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결국은 그리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난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사람들은 의식을 치른 뒤 각기 자신의 갈 길로 사라졌다. 어느 누구 하나 이 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큰 의미조차 부여하지 않을 별일 아닌 것처럼 굴었다. 만일 어떤 이가 매끈한 돌을 들고 호숫가에 서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절묘한 물수제비를 선보여 호수의 끝까지 다다르게 할 수만 있다면, 그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고 그 재주가 비의 신을 감복시켜 이 마을에 비를 내리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그 남자는 신중히 돌을 뿌렸지만 역시나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헛수고였고, 그는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며 돌아서버린다면, 그날 저녁 가족들에게 꺼내놓을 거리조차 안 될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였다며 스스로를 비웃은채 금세 그 일을 잊었을 것이다. 흩어져가는 군상들의 표정이 내 상상 속의 남자와 다르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오랫동안 불길의 흔적과 그걸 벌인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눈으로 그들을 담고 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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