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치매 중등도에 이르면 어휘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남력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살고 있으나 옛 시절, 거기에 머물 때가 많다. 그것은 학벌을 초월한다. 고도의 경험도 소용없다. 천천히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하기도 하지만, 현저하게 보이는 예도 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주옥같은 어록들을 가졌던 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35년을 봉직했다. 하여 종사자 전부가 초등학교 어린이로 보여서 어머니의 말들은 언제나 ‘얘’이되, 다른 이들이 쓰지 않아 가히 어록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너는 어쩌면 머리가 비단결 같니?”
“얘, 그건 몰상식한 말이야. 나쁜 사람들만 쓰는 말이잖니.”
“저 아이는 오늘 하루 종일 뾰로통하구나. 내가 쟤를 사랑하는데, 쟤는 나를 먼 나라 여우 할멈처럼 보는구나.”
.... 그런데 근래에는 새들의 노래처럼 온 자리를 상큼하게 하던 어머니의 말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표정도 무덤덤했다.
오후 1시, 식사 후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라운딩 길에 올랐다. 식사 자리에서 당신의 방으로 이동하던 어머니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어머니가 몸을 복도 안전 손잡이에 맡긴 채 게시판에 달린 글자를 읽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김○○ 어르신 점심 약 드리지 마세요. 독감 주사 신청하신 샘들 이○○. 김○○. 박○○. 신○○.’
어머니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당신 이름은 알겠는데, 독감 주사라는 말에 당신 이름이 연결되지 않았다. 하여 게시된 글자를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어머니가 말했다.
“얘, 나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김○○ 어르신 독감 주사가 뭐니?”
“어머니, 김○○ 어르신과 독감 주사는 각각 다른 말이에요. 요기 마침표가 찍어져 있으니까요. 마침표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마침표가 뭐니?”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마침표를 잊었으니까. 말수가 적어진 어머니를 감지하기는 했다. 얼마나 좌절되었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렇더라도 빨랐다. 어머니가 마침표를 잊는 데에는 어머니의 교편생활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밖으로 표출되던 수려한 어록들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머리에 지우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 없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여기 어머니 이름과 독감 주사는 따로따로 예요. 어머니에게는 점심 약을 드리지 말라는 뜻이고요, 종사자들 네 명은 독감 주사를 신청했다는 말이에요.”
어머니가 뜨락이 비어 있는 듯, 쓸쓸하게 말했다.
“내가 약을 먹으면 안 되는 거니?”
“아니에요. 어머니가 미열이 있다가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혹시 오늘 종사자들이 잊어버리고 어머니에게 약을 드릴까 봐 염려되어, 여기에 써 놓은 거예요.”
“그랬구나.”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이 안쓰러웠다. 손을 내밀었다.
“방에 모셔다 드릴게 요. 같이 가요.”
어머니가 표정 없이 내민 손을 잡았다
늦은 시간, 퇴근하기 위해 겉옷을 걸치고 가방을 든 채, 101호실 문 앞에 섰다.
“어머니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한 어머니가 침상에 걸터앉았다가 손을 흔들었다.
“잘 갔다 와요.”
그 옆의 어머니도 배시시 웃으며 푸근한 말을 건넸다.
“밤이 어두웠네. 어서 가.”
다른 어머니는 원장의 퇴근을 알아차리고, 얼른 현관문으로 이동했다.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원장실 가까이에서 생활하므로 출근할 때 가장 먼저 만나고, 퇴근할 때 가장 늦게까지 만나는 사이였다. 101호에 이어서 102호 앞에서도 똑같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어머니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두 어머니가 각각 침상에 누워서 손을 흔들었다. 예의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등을 돌린 채 손을 씻고 있었다. 어머니가 잘 못 들으시니, 원장도 못 보았으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로비를 거쳐 출입구에서 신발을 꺼내 신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온 어머니가 턱에 숨을 달고 말했다.
“너, 어디 가니?!”
잘 다녀오라고 말하기 위해 곁에 섰던 다른 어머니가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워낙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파리한 얼굴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보행이 어려웠다. 함께 산 이후 결코 뛰는 걸음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반드시 복도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이동할 수 있었다.
“어머니, 제가 집에 다녀오려고요.”
어머니가 되물었다.
“집?”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마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통하여 원장의 실루엣을 보았으리라. 순간 손을 다 씻지 못하고 뒤따라왔으리라. 빠른 보행이 어려우니, 안전 손잡이를 잡고 사력을 다하여 겅중겅중 뛰어서 말이다. 아니다. 당신을 두고 떠나는 원장이 수상해서 말이다. 이제 어머니에게는 원장이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는 퇴근한다는 것이 머리에서 사라졌으니까. 가방을 들고나가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어머니의 놀람과 급한 보행에 가슴이 뻐근했다. 어머니에게 또박또박 천천히 귀엣말했다.
“어머니, 제가 집에 가서 한 밤 자고 다시 올게요. 어머니는 여기에서 안녕히 주무세요.”
“얘, 네가 집에 갔다가 다시 온다는 말이니?”
“네, 제가 집에 가서 한 밤 자고, 아침에 다시 올 거예요.”
어머니가 뜨악하게 물었다.
“여기서 자면 안 되는 거니?”
대답이 궁색했다. 잠시 후 어머니가 겨우 표정을 풀고, 말했다.
“얘, 나는 네가 가서 안 오는 줄 알았어. 내일 아침 오는 거, 맞지?”
“그럼요. 내일 아침 일찍 올게요.”
“얼른 갔다 와.”
원을 나섰다. 어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다른 어머니도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퇴근길에 출입구와 로비 큰 창 너머로 아직도 손을 올려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어머니로 인해, 젖먹이를 떼어놓는 아이 엄마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