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아녜스 바르다를 알게 된 것은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을 통해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그렇게 보게 되었고, ‘아녜스 바르다’란 인물에 매료되었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가던 누벨바그 영화감독의 한 명인 바르다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만든 영화이다. 무대 사진작가로 시작해 영화감독이 되고, ‘쉘부르의 우산’을 만든 자끄 드미와 함께 한 삶, 쿠바와 중국을 여행하며 했던 사진작업을 비롯해 이웃들과 살아가는 아녜스 바르다의 인생 여정이 그녀만의 독특한 영상 스타일로 이야기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만들고 영화 속 인물이 되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어린 시절 브뤼셀 해변을 비롯해 바닷가 해변은 그녀 인생에게 중요한 공간이다. 영화 제목이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으로 지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아녜스 바르다는 어디서나 마주칠 것 같은 친절한 할머니 같지만,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한 명의 독창적인 예술가로서 한 시대를 거쳐온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내용들이 편안하게 녹아 있고, 그녀의 스타일은 나이 따위의 틀에는 매어있지 않고 개성적이다. 한평생 영화 속에서 살아온 예술가이지만 그녀는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게 좋았다.
자신의 엄마가 나이 들어 자식과 손주 이름을 잘못 기억하고 기억력이 뒤죽박죽 깜빡깜빡한다고 하면서 “바로잡으라고요? 횡설수설하면 좀 어때요? 애교스럽고 재미있던데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좋다. 자신의 오랜 파트너인 자끄 드미가 죽고 나서 누아르무티에르섬의 미망인들과 애도작업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오픈한 전시회에서 아이처럼 춤을 추는 아녜스 바르다가 좋다. 그녀에게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편안함, 장난스러움과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는 그녀가 만든 영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제라르 드파르디외, 장 뤽 고다르, 카트린 드뵈브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특히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보는 것이 놀라웠던 것은 내가 본 영화 속의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항상 거구였는데, 젊디 젊은 시절의 그는 정말 핸섬한 모습이었다.
영화 후반부의 상당 부분은 자끄 드미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각각 개성적인 세계를 가진 영화감독으로서 아녜스 바르다와 자끄 드미는 영화를 만들고, 여행을 했고, 함께 전시회를 다니며 예술작품을 감상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결혼하기 전 아녜스 바르다에게는 전 남자친구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었지만 그런 것은 둘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빌 비올라(*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와 라우센버그(*미국의 화가, 그래픽 아티스트) 작품 앞을 서성였고, 자크 모노리(*프랑스 화가이자 영화제작자)의 곁에 있었으며, 프라스노스의 고양이와 함께 지냈어요.”
‘함께 나이 드는 건 좋은 일이고, 달콤한 경이로움’이라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자끄는 에이즈로 투병생활을 한다. 자끄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그녀는 자끄의 일생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영화가 완성되고 얼마 안 되어 자끄는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엔딩 크레딧이 나와 이제 영화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깜짝 선물처럼 그녀의 여든 번째 생일파티가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튀어나온다. 여든 번째 생일날 여든 개의 빗자루를 선물로 받은 그녀의 밝고 장난기 어린 웃음(생일에 ‘빗자루’를 선물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과 멘트. 이런 귀여운 영화라니, 이렇게 발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 영화감독이 다 있다니!
영화적 상상력과 영화제작비 조달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한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그녀는 여든이 넘어서도 어린 스태프들과 즐겁게 일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그녀의 집이었고, 그 속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