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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an 27. 2024

깊은 강물 같은 무사 이야기

〈황혼의 사무라이〉

일본 영화〈황혼의 사무라이〉는 사무라이 계급이 몰락해 가던 막부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하급 사무라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사무라이가 출세나 복수 같은 세상의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다른 일본의 영화들과 결이 다르다. 나에게는 가난한 주인공의 그런 깊고 기품 있는 모습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인기 역사소설가인 슈헤이 후지사와(藤沢周平)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요지 야마다(山田洋次) 감독의 사무라이 시대극 3부작(‘무사의 체통’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 ‘황혼의 사무라이’ ) 가운데 하나이다. 요지 야마다 감독의 사무라이 영화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어 좋다. 2003년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 12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누드화보집 〈산타페〉로 유명한 미야자와 리에가 속 깊은 무사를 사랑하는 ‘토모에’ 역을 맡았다.    

 

영화의 제목인 ‘황혼의 사무라이’는 주인공 ‘이구치 세이베이’의 별명이다. 그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해가 지는 황혼이면 일이 끝나자마자 술 한잔 하자는 동료들의 청을 늘 거절하고 바로 집으로 바로 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살림에 폐병으로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병든 노모와 어린 두 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급 사무라이 월급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집에 돌아가서는 가외 돈이 되어줄 새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출세를 할 수 있는 칼 대신 영주의 창고를 관리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칼을 다루는 데 있어 예사롭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간다. 너무 가난해 재혼을 할 형편도 안 되지만, 그런 세이베이의 깊음을 알고 사랑하는 ‘토모에’의 마음을 거절한다. 아름답고 교양 있는 토모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명문 사무라이 가문에서 풍족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에게 시집을 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세이베이에게 원치 않는 영주의 명이 떨어지고 그 일을 계기로 세이베이와 토모에는 다시 연결되어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는 격동의 시대. 메이지유신과 함께 발발한 일본 내전에 참가한 세이베이는 관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사랑하는 토모에를 다시 만나 행복을 누린 지 겨우 3년여 만의 일이었다. 

    

메이지 시대 세이베이와 뜻을 같이한 친구들 가운데는 출세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영화의 화자인 둘째 딸은 말한다. 출세한 친구들이 아버지를 두고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는 것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겨우 다섯 살이었던 둘째 딸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버지는 출세를 바란 분이 아니었고, 스스로 운이 없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다. 아버지는 딸들을 사랑했고, 아름다운 토모에 아줌마에게 사랑받으며 그 삶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무사의 칼싸움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황혼의 사무라이’는 평범하게 정도를 지키며 살아간 한 하급 사무라이의 모습을 통해 삶의 기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은 강물처럼 보여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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