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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Feb 17. 2024

여자 우디 앨런

지적 위트가 넘치는 sit-down 코미디〈도시인처럼〉

넷플릭스에서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한 ‘도시인처럼’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80년대 스타일의 파마 머리에 이상하게 못생긴,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쉴 새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조금 보다 보니 이상한 수다쟁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너무나 솔직하게 정곡을 찌르는 돌직구를 던지는 그의 말들은 신랄하면서 유머와 여유가 넘쳤다. 미국에서 냉소의 여왕이자, 블랙유머 1인자로 불리는 프랜 레보위츠 이야기이다.     


동성애자이자 미국 민주당 지지자인 프랜 레보위츠는 뛰어난 입담과 더불어 패션 또한 매우 독특하다. 뒤집어서 다림질한 리바이스 501 청바지에 남성복 재킷과 와이셔츠를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는다. 커프 링크스는 콜더 작품(알렉산더 콜더의 손자인 샌디 로어가 빌려준 것.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콜더 주얼리’ 단독 전시도 열었다)이고, 빈티지 스타일의 톨토이즈 셸 안경은 프랜 레보위츠의 트레이드 마크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컴퓨터와 핸드폰이 없이 사는 프랜 레보위츠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뉴욕으로 와 택시 운전사, 청소부를 비롯하여 포르노소설을 쓰는 일까지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언더그라운드 잡지에 기고한 칼럼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그 책이 성공하면서 작가로 이름을 얻었으며, 앤디 워홀과 함께 일을 했다.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먹고살기 위해 포르노소설을 쓰던 시절 프랜 레보위츠는 포르노소설을 자신을 퇴학시킨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름으로 발표하는 통쾌한 복수극(!)을 벌였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프랜 레보위츠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마틴 스콜세지와 찰떡궁합 친구인 프랜 레보위츠는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영화〈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맞서는 판사 역할로 나온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외모로도 뛰어난 두뇌가 있고 마틴 스콜세지 같은(!) 친구를 사귀어두면,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러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면 사심이 가득 담긴 마틴 스콜세지의 배우 발탁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본 없이 뉴욕 카페에서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담은 ‘도시인처럼’은 프랜 레보위츠의 날카롭고 솔직한 지적 유머들로 가득하다. 속사포 같은 수다를 들으면 우디 앨런이 떠오른다. 유약한 우디 앨런이 아니라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 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프랜 레보위츠의 제멋대로 단독 주연과 친구 마틴 스콜세지의 맞장구 협찬이 빛을 발하는 이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는 ‘도시인처럼, 문화·예술 그리고 재능, 대중교통에 관하여, 돈은 싫지만, 건강하게 살기, 나이를 먹으면, 책으로 만난 세계’ 총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항상 책을 읽는다면 돈처럼 시시한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프랜 레보위츠. 자신에겐 책을 버릴 능력이 없고, 책을 버리는 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 같다면서(버리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다면서!) 책이야말로 사람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이상하게 매력적인 프랜 레보위츠.


못 배운 게 한이어서 나이 들어 향학열을 불태워 학교졸업장을 받는 할머니들 기사를 볼 때마다 지적인 유머가 가득한 이 다큐멘터리를 권하고 싶다. 학교졸업장이 아니라 책을 읽고 키운 사고의 근육이 ‘지성’의 원천임을 그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     


“말하기 전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 읽어라”     


“음악가들처럼 사랑받는 사람들은 없어요. 음악가들이야말로 우리가 감정과 기억을 표현할 능력을 주니까요. 다른 예술은 그렇게 못해요. 음악가랑 요리사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해롭지도 않아요. 행복을 주는 건 대체로 해로우니 이건 정말 드문 경우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마약이지요.”     


“사기 치기에 가장 만만한 분야가 뭘까요? 시각예술이에요. 순 날로 먹어요. 경매장에서 피카소 그림이 등장하면 쥐 죽은 듯 조용해지죠. 낙찰가가 정해지고 망치를 두드리면 박수가 터져요. 피카소가 아니라 피카소 그림 가격에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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