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태생에 약한 기관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감기에 잘 걸리진 않지만, 걸렸다 하면 기침, 가래, 모세기관지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을 꼭 같이 달고 와 고생을 하곤 한다. 철마다 배도라지청을 챙겨 먹였었고, 혹시라도 동물의 털이 아이의 기관지에 악영향을 미칠까 더더욱이 반려동물과의 동거는 엄두도 내지 못했더랬다. 그런 우리 집에 털이 무쟈게 많은 털뭉치 녀석이 무쟈게 사랑받는 막내가 되어 있다.
털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슬픈 애들 아빠는 루루의 털을 쓰다듬으며 털이 많은 막내를 부러워한다.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슬픔을 예측하지 못하는 아들은 루루의 이마를 보며 루루도 아빠처럼 M자 탈모가 오나?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고, 그리고 그 곁에고양이 털을 빗겨동글동글한 공을 만드는 취미를 가진 햇님이와 항시 조용히 털을 수집하고 있는 엄마집사가 있다. 엄마집사는 아이의 기관지가 걱정스러워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삶을 선택했더랬다. 물론 쉬지 않고 돌아가는 펫전용 공기 청정기가 집에서 가장 부지런히 열일을 해주고 있고, 그 다음으로 엄마집사가청소기를 돌리고아침저녁으로 집사의 필수품인 돌돌이와 밀대를 밀며 부지런을 떨고 있다.
루루는 단모종이기에 장모 고양이들 보다는 덜하겠지만 여하튼 털을 뿜는다. 털 부비며 지내는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상당한 양의털들을 발견할 수 있다.엄마 집사는 건강과 청결에 약간의 강박이 있는 터라 루루 털제거도 강조하고 있다. 이제 5학년이 되는 아들도 그 정도는 충분히 협조할 수 있을 것 같은데루루의 털을 떼어내기는커녕, 입고 다니는 것만 같은 아들의 게으름이 엄마는 내심 못마땅하다.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니 루루 털 좀 털고 떼고 다니자하니, 아들은 루루의 털까지도 사랑한단다. 아이들 사이에서 루루의 털은 자랑스러운 집사의 징표로 인식되고, 덕분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하며, 루루 털로 루루 생각이 나서 행복하다는 그의 지론. 아들의 엉뚱함에 웃음이 났는데.... 이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옷에 따라붙어 온 루루의 털이 집에 있을 루루를 생각나게 한다. 어머, 우리 루루도 이렇게 엄마랑 같이 왔구나. 루루가 작은 털로 따라나선 것 같아 마냥 귀엽다. 항시 루루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니 나름 일상이 더 행복해지는 듯도 하고. 아들의 지론에 설득당한 엄마집사는 더 이상 외출 전 돌돌이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더불어 집안 청결에 부지런을 떨었던 이유에서인지, 아들의 기관지 걱정이 기우였던 것인지 가족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오히려 잘 지내고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고.
이제는 털 떼기가 아닌 털 빗기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루루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말이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털을 그루밍하면서 매일의 몸단장을 한다. 빠지는 털만큼이나 그루밍으로 삼키게 되는 털의 양도 어마어마하고 그 털들이 몸속에 쌓여 헤어볼이라는 덩어리가 된다 하여 걱정이다. 헤어볼은 응아나 구토를 통해 배출되기도 하고, 배출이 안될 경우 장폐색이 될 수도 있다니...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 헤어볼 배출을 돕는 영양제의 도움을 조금 받고, 죽은 털들을 미리 떼어낼 수 있도록 사랑의 빗질을 해준다.
햇님이는 루루 빗질 후에 털들을 동글동글 굴려 조그만 공을 만들어 놓길 좋아하는데, 루루도 햇님이만큼이나 자신의 털공을 좋아한다. 오늘 밤은 요걸로 놀아보자며 조그만 입에 앙 물고 오는 루루.
사랑하는 대상과, 혹은 사랑하는 대상을 두고 드는 생각의 차이. 설령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성실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또 충만하게 받아들이며 이제는삶에 보다 유연해질수 있음을 집사의 삶을 통해 배운다.
보드라운 털을 쓰담쓰담, 여기저기 털 뿜는고양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