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내가 예약한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이 도착했으니 가져가라는 이메일을 받고 가슴이 벌렁벌렁 두근거린다. 이런 두근거림 너무 좋다. 아이들 학교 가 있는 동안 혼자 도서관 갈 생각에 들떴는데 둘째 아이가 계속 큼큼 거리는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목이 아프다고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으면 안 되냐고 하기에, 혹시 기침이라도 하면 주변 사람들 꺼려할까 봐 고민 끝에 집에서 쉬라고 했다.
큰 아이 하교 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집 태워 먹지 말고 기타 등등 잔소리한 후 집을 나선다. 세 번째 방문이지만 혼자는 처음 가보는 길이고 나는 소문난 방향치라 길 잃지 않도록 집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나선다.
영하 20도 조금 안 되는 날씨에 눈이 날리기 시작하니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구 시가지 와이트애비뉴에 밀집한 상가 거리가 보인다. 20년 전과 거의 바뀐 데가 없어 보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단층 상가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정겹다. 커다랗고 현대적인 상가보다 운치 있고 좋긴 한데 날씨가 참 안 도와준다.
걷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가게가 있어 잠시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핼러윈데이에 쓸 법한 귀엽고 재미있는 모자를 쓴 할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하루에 한 가지씩은 꼭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데 오늘은 이거다 싶은 감이 딱 온다. 영국사람들에게 친숙한 과자, 차, 식료품 등을 소규모로 수입해서 파는 가게이고,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캐나다에 정착한 지 20년이 좀 넘었다는 그녀는 마침 심심했던 차였는데 잘 됐다고 굉장히 반갑게 맞아준다. 근처 도서관에 가던 중이라 뭘 살 생각은 없지만 잠깐 둘러보고 가겠다고 돈 쓰는 손님이 아님을 확실하게 한 후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물건을 둘러보다 보니 카레 가루가 보인다. 카레가 무슨 영국 특산물이냐고 장난을 거니 카레가 얼마나 자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먹거리인지 어필한다. 10년 전까지 활발하게 교류하던 아일랜드 출신 친구가 카레에 건포도를 넣길래 내가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얘기해 주니 영국에서는 카레에 건포도 넣는 건 당연하다고 그 친구를 변호해 준다. 내가 그 친구한테 10년 만에 사과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녀는 별것 아닌 일로도 깔깔깔 소녀처럼 웃는다. 웃음 코드가 비슷해서 대화가 더 즐거워지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인스타 맞팔하고 한국식 카레 할 테니 저녁 한 번 같이 먹자고 즉석에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북미 지역에서 제일 크다는 웨스트 에드먼턴몰에서 20년 동안 영국수입품점을 하다가 이곳으로 이전한 지 이제 세 달 째라는데, 다음 도서관 가는 길에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점점 눈송이가 더 커지니 마음이 급하다. 흩날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도서관에 도착했더니 내가 예약한 책이 없다. 온라인상으로는 뜨는데 책은 없다. 분명 집 근처 도서관으로 신청한 책이 재스퍼 지점에 가 있다고 한다. 당황하는 친절한 도서관 사서 분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실망이 크지만 가던길에 우연한 만남이 즐거웠기에 완전히 헛걸음한 외출은 아니었다고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