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대가족 안에 살면서 외로움이라고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나였는데, 어쩐지 서울 생활은 가끔씩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고향집에서는 집에 혼자 있을 일이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과자나 과일은 아무리 많이 사둬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귤은 한 번에 10개를 넘게 까먹었다. 서울에 올라오니 귤을 사도 한 두 개 까먹고 먹지 않게 됐다. 가끔은 썩어 있는 과일을 버려야 했다. 고향집에서는 애가 셋이니 안 먹으면 다음에 내가 먹을 건 없다는 걸 알고 본능적으로 먹은 걸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더 이상 귤을 10개씩 까먹지 않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제가 여럿인 건 경쟁의 굴레에 내던져지는 것이구나.
형제 없이 혼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럼 서로 비교당할 일도 없고, 내 방도 생길 거고 다른 친구들이 엄마에게 듣는 '우리 공주님' 이런 소리도 들으며 자라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서울에서 집에 들어와 깜깜한 단칸방에 불을 켤 때면 가끔은 헛헛하고 한숨이 나올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가 사는 원룸은 숨이 막혔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싱크대, 화장실문, 책상, 옷장, 침대가 보였다. 좁은 방에 하나 있는 창문, 그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평생 살다가 원룸에 와서 사니 적응할만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숨이 막혀왔고, 정말 피곤하지 않은 이상 답답한 방보다 밖에 놀러 나가는 편이 좋았다.
내가 이렇게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니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두 번째 서울 직장에 들어가서는 입맛이 좋아져서 밖에서 식사를 하면 많은 양도 남김없이 싹싹 다 먹었고, 배불리 먹어도 이상하게 계속 허기가 졌다. 평소 말랐던 내가 조금씩 살도 찌고, 회사에 같이 일하는 어떤 직원은 내가 대식가인 줄 알만큼 계속 먹었던 때가 얼마간 있었다.
그때쯤 '마음이 외로우면 허기가 진다.'라는 말을 어디서 보았던 것 같다. 입맛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서울에 가족 없이 혼자 있으니 외로워서 먹는 걸로 채우고 있었던 건가? 어찌 되었건 잘 먹는 건 좋은 거니까. 그렇게 좋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여고 시절 친구들도 서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끔씩 친구들도 만나고, 회사 직원들과도 가까워져 가면서 그런 외로움은 사라져 갔다.어느새 혼자 있는 원룸방이 고향집보다 편해지는 순간이 왔다. 여전히 답답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았다. 그렇게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