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 남매 중 맏이였다. 우리 집은 방이 4칸이었다. 꽤 넓은 집이었지만 할머니, 엄마, 아빠, 나,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다 보니 나 혼자만의 방을 가질 수가 없었다. 늘 동생과 방을 같이 써야 했다. 학창 시절, 외동딸인 친구집에 놀러 갈 때마다 본인 방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독립해서 내 공간을 가진 것이다.
가족이 같이 살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고 반년 동안은 일은 힘들었지만 마치 여행 와서 일하러 다니는 기분이었다. 회사를 마치면 가까운 홍대, 신촌으로 놀러를 다녔는데, 그게 왜 이리 신나던지. 버스킹 하는 이름 모를 가수들은 드라마 같던 순간에 bgm을 깔아주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흠뻑 즐겼다. 시끄럽고 북적이던 홍대 골목길도 나쁘지 않았던 때였다. 어쩌다 kbs <연예가중계>에서 홍대에 와서 연예인과 게릴라 데이트를 하는 걸 보게 됐을 때는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게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지방에 살면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일 뿐이었던 서울 맛집들도 찾아가 볼 수 있었다. 한강, 광화문, 대학로, 여의도, 이태원, 강남, 동대문, 남산 같이 서울 하면 떠오르는 곳들과 연세대, 경희대, 이화여대 같이 예쁘다고 소문난 유명 대학들도 가보고, 연극이나 뮤지컬도 보면서 쉬는 날에는 여행을 다니는 기분으로 살았다.
회사도 처음 한 달 정도는 텔레비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생 경상도 사투리만 듣고 살았는데, 사무실에서 서울말 쓰는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걸 듣고 있으니 어릴 적 어렴풋이 보았던 드라마 <손자병법>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서울말이 주는 그 묘한 드라마틱함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서울말이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지만, 다정한 서울말이 세고 투박한 사투리보다 좋았다.
나는 그렇게 서울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집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