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리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이사 온 첫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진 뭉터기 짐들을 정리하다. 밤이 오는 줄도 몰랐다. 가로로 놓은 침대를 세로로 바꿔 옮기면서. 침대플레임의 아귀가 맞지 않게 조립해 놓고 간 이삿짐센터가 원망스러웠다. 삐뚤어진 아귀를 바로 잡으려고 프레임을 몇 번 들었다 놨다.
쿵쿵쿵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웠다.
문을 열면서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래층 아줌마는 늦게까지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한소리를 쏘아붙이고 내려갔다.
며칠 뒤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아줌마는 문을 두드렸다. 발소리가 크게 난다며, 자신이 갱년기라 예민하니까 조심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웃 간에 문제없이 살고 싶었기 때문에 성능이 가장 좋다는 실내화를 사서 룸메이트와 내 발에 신겼다. 누가 놀러 오기라도 하면 나는 살살 걸어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명절 때가 되면 명절선물세트를 사서 아래층 아줌마에게 건넸다. 아줌마는 이런 건 필요 없다며 발소리만 내지 말라고 나에게 사정했다. 오래된 빌라의 층간소음은 필연적인 것이라서 성인이 걷기만 해도 쿵쿵 소리가 난다. 특히 남자애들이 놀러와서 내는 발소리에 지레 내가 먼저 놀라고 만다. 아쉬운 소리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제발 살살 걸어줘. 아랫집 아줌마가 갱년기래.
갱년기라면 모든 여성들이 겪는 만큼 나도 조심해주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발망치 소리에 아줌마로부터 시끄럽다는 문자라도 오는 날이면. 그날의 산통은 다 깨지고 만다. 서둘러 친구들을 돌려보내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진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이다. 무의식적으로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소리도 없이 온다고 깜짝 놀라곤 했다. 미끄러지듯이 걷는 습관 때문에 밖에서는 아주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걸려 넘어진다.
그날도 쌍둥이 남동생들은 집안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랫집 아저씨가 한소리를 하러 올라왔다. 일상의 소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동생 대신 엄마와 죄송하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부터 내 발소리를 작아지기 시작했다. 나라도 소리를 덜 내야 무서운 아랫집 아저씨가 쫓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주택에 살아 발소리가 큰 룸메이트에게 새 실내화를 강제로 선물하며, 발소리가 날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손으로 누른다.
없는 소리를 난다고는 하지 않는 아래층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핸드폰의 문자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