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란 융단

익숙한 듯 가을을 맞지만

by 빨강



집 앞에서 5분쯤 걸어가면 중학교가 나온다. 학교에서 걸어 나오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나풀거린다.

지천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들이 지나가는 차 위로 사람들 발치로 떨어진다. 은행잎이 사람들과 치 바퀴에 밟혀 조각조각으로 부서졌다. 샛노란 자연의 색. 아직 노랗게 흔들리는 은행잎은 가지마다 가을꽃처럼 흐드러져 있다. 검은 가지에 매달린 은행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소리를 낸다.


빨래방을 가는 길. 자박자박 은행잎을 밟는다. 노랗게 말라 부서지는 이파리는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를 낸다. 카펫은 여름내 무거운 공간을 채워주었다. 가을에 들어서 습기와 먼지를 머금은 카펫을 거뒀다. 오늘은 먹구름이 수 놓인 카펫을 빨러간다.


세탁기에 카드를 찍고 버튼을 누르자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흰 거품이 인다. 왼쪽으로 돌아가며 재색 구정물이 나온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면서 돌아가다 물이 세차게 거품을 씻어낸다. 사랑하는 무엇의 흔적이 빨린다.

빨래방에 앉아 세탁기가 헹굼과 탈수를 번복하는 동안 책을 읽는다. 읽다가 덮어둔 책. <장미의 이름은 장미>. 그곳에선 미국에 거주하는 장기여행자가 있다.


돌이켜 보면 사랑하는 무엇을 잃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부고 문자.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새로 얻는다. 매일 작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이 가을처럼 사라진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떨어져 밟히고 부서져 사라져 간다. 매년 익숙하게 가을을 맞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할 때 가을은 아름답다. 사라지는 것들에 애도를 표하고 마음이 먹먹해진다. 많은 이를 잃은 이 가을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가을에 아름다움이 피고 진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