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피는 문어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무 반 개를 식칼로 깎는다. 사각형으로 토막을 내고 냄비에 넣고 끓인다. 냄비 가득 담긴 물은 좀처럼 끓지 않는다.
스티로폼 박스를 뜯는다. 3킬로짜리 남해에서 올라온 돌문어가 아이스팩 밑에 기절해 있다. 검붉은 문어를 비닐에서 꺼내 싱크볼에 옮겨놓는다.
문어의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꺼낸다. 검은 먹물주머니가 반질반질 오색빛을 낸다. 가위로 내장을 자르고 두 눈과 입도 자른다. 볼에 굵은소금을 넣고 살살 주무른다. 물로 세 번 헹군다. 밀가루를 넣고 치댄다. 빨판 사이사이를 훑는다. 헹궈도 헹궈도 밀가루 물이 나온다. 다섯 번쯤 헹구니 물이 깨끗하다. 문어의 점액질과 이물질이 사라져 있다.
물이 수증기를 뿜으면서 팔팔 끓는다. 문어의 머리를 잡고 다리부터 담갔다 빼기를 반복하다가 다리가 붉게 말려 올라가자 머리까지 집어넣는다.
엄마는 갈치의 꼬리를 들고 뒤집었다 바로 놓았다. 시장 초입에는 가판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가 날마다 스티로폼 박스를 부려놓았다. 고등어, 꽁치, 조기, 갈치, 오징어, 멍게, 바지락 그날그날 생선의 가짓수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엄마는 일주일에 세 번은 생선을 굽거나 조리고, 탕을 끓였다.
엄마의 음식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고소하고 기름진 또는 짭조름하고 매큼한 맛이 났었다.
매번 명절에 나는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 본가로 갔다. 어느 때는 전을, 어느 때는 잡채를, 갈비를. 이번에는 문어를 시켰다. 조금이나마 엄마의 수고를 덜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정말 수고가 덜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어를 삶은지 십 분이 지나자 문어가 붉게 아주 붉게 익고 삶는 물이 꽃처럼 끓어올랐다. 문어를 건져내 찬물에 식혔다. 문어의 살이 단단해졌다. 탱글탱글해진 문어를 도마에 놓고 다리를 칼로 하나하나 잘랐다. 지퍼백에 다리를 4개씩 넣고 밀봉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명절 준비가 끝났다.
냉동실에 두 팩의 문어를 넣어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홈쇼핑에서는 새우를 꼬치에 꽂아 전을 만들어 부치는 화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익은 새우의 분홍빛이 입맛을 다시게 했다. 채널을 사이사이에 홈쇼핑에서는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명절을 앞둔 분위기가 물씬 났다. 마감을 알리는 따르릉 소리가 조마조마하게 들렸다.
한자리에 모일 가족들이 떠올랐다. 한 상 차려진 밥상이 떠올랐다. 모두의 앞에 놓인 떡국을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입술을 뜯었다. 피가 입안에 돌았다. 비리고 씁쓸한 맛에 입술을 핥았다.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시원하고, 달큼한 맛이 떠올랐다. 혓바늘이 명절의 맛처럼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