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겹쳐진 걸음들
흰 눈이 밤사이 어둠 속 소리를 삼키며 내렸다. 지붕 위마다 내려앉은 눈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추위에 떨던 길고양이들이 누일 곳을 찾아 밤사이 길고 낮게 울었다.
밤 산책을 나온 날, 골목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나 있다. 작은 발자국, 큰 발자국, 여러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발자국들이 길을 내고 있다. 자동차 바퀴 위로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 사이, 작은 동물의 발자국이 담장 위로 이어져 있다.
눈이 내리던 날, 솜 점퍼를 입은 우리는 골목에 세워진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을 뭉쳐, 도망가는 친구에게 던졌다. 어깨에, 등 가운데에 눈이 부서져 얼룩을 만들었다. 붉은 점퍼가 어두운 피색으로 물들고, 파란 점퍼는 호수물색으로 물들었다. 하얀 눈밭에 색색깔의 점퍼들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단독주택에서 나온 노인이 싸리빗자루로 집 앞을 쓸기 시작하면, 동네 어른들이 눈 위에 연탄재를 부숴서 뿌렸다. 재색으로 변한 눈뭉치는 더 이상 하얗지 않았다.
밤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다. 재색으로 변한 발자국 위로 눈이 쌓인다. 이 길을 걸어간 모든 사람들의 걸음을 감추는 밤. 눈이 소리도 없이 이 밤의 소리를 삼킨다.
동네 주민들이 모퉁이에 놓인 노란 박스 안에 염화칼슘을 아스팔트 위로 뿌렸다. 오래된 목화솜이불 같은 눈길에 구멍이 난다. 눈구멍에 검은 물이 고인다. 눈이 천천히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