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자꾸 잊어버린다
한낮에 해가 쨍쨍했다. 낮은 보라색 리본이 달린 뮬을 신고 약속 장소 향했다. 긴 원피스가 다리에 감겼다. 오래된 동네는 길이 고르지 못했다. 턱 하는 순간 걸려 넘어질 뻔했다. 도로방지턱을 넘어가는데 아차 싶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아스팔트 바닥은 울퉁불퉁해서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주변을 둘러 살폈다. 사람들이 어쩌나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성인 여성이 넘어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운동복을 입은 여자가 손을 내밀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다리를 절룩이며 목례를 하고 앞으로 걸었다.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는 잘 넘어지는 사람이다. 길 가다 보도브럭에, 계단에 , 잘 다져지지 않은 흙바닥에, 아스팔트의 푹 꺼진 틈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유년기부터 넘어지기 시작한 내 무릎은 흉터 위로 흉터가 덧대져 있다. 길 가다 넘어진 상처는 고스란히 내 무릎과 다리에 흉터로 남아 있다.
넘어진 자리를 빠져나와 치마를 걷어 무릎을 본다. 붉은 피가 흙과 엉켜있다. 손바닥에 작은 돌조각이 박혀 있다. 다행히 치마는 찢어지지 않았다. 치마 밑자락에 티 나지 않게 피가 살짝 묻어있다. 손톱으로 손바닥에 돌을 빼내고 휴지로 상처 부위를 꾹꾹 누른다. 절뚝이며 약속 장소로 향한다.
내가 잘 넘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리를 높게 들지 않고 걷는 습관. 쓱쓱 미끄러지듯이 걷는다. 그러니 조금만 길이 고르지 못해도 넘어진다.
약속 장소는 전통찻집이다. 조금 일찍 도착한덕에 화장실로 간다. 페이퍼타월을 적셔 무릎을 닦아낸다. 쓰라림에 몸에 털이 쭈뼛선다. 다행히 긴 원피스 자락 덕에 무릎에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손을 세면대에 넣고 씻는다 핏물이 수채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세히 보니 손바닥뿐 아니라 오른손날에 빨간 빗금이 가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니 아마 상대방은 보지 못할 것이다. 여차하면 왼손으로 컵을 들면 된다.
자꾸 넘어지는 내가 부끄럽다.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한 쪽지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하나씩 교실밖을 나가고 빗금이 쳐진 시험지를 들고 나만 남은 것 같다.
쌍화탕 안에 잣과 대추를 우물우물 씹으며 지인의 안부를 묻는다. 서로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따뜻한 차처럼 목구멍을 넘어간다. 위장이 데워지고, 막 더워지려는 날이 벚나무 잎처럼 돋아난다. 손잡이가 없는 찻잔을 집은 손바닥이 아려오고, 무릎에서 심장이 뛰는 듯 욱신거리지만.
돌아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 드레싱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머릿속 한편에서 두근거린다.
나만 아는 상처를 들키지 않고 자리가 파한다. 발등까지 피가 흘려내려와 있다. 휴지로 굳은 피를 닦고 버스를 탄다. 손으로 무릎을 감싼다. 1시간 전보다 덜 아프다. 시간이 지나니 아픔도. 잦아들고 별게 아닌 게 된다. 내일이면 오늘보다 덜 아프고 모레면 또 덜 아프고 그러다 딱지가 앉으면, 아픔도 가렵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넘어졌다는 것도 잊고 아스팔트 바닥을 주의 없이 걷고 있을 것이다.
오래된 습관은 바뀌지 않고. 다시 넘어져야 그때의 아픔이 기억난다. 신체의 고통을 너무 잘 까먹는 나. 마음의 상처는 오래오래 기억하는 나. 그게 손해이기도 이익이기도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