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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익숙한 곳에서 낯선 냄새가 난다

by 빨강



2박 3일 집을 비웠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난다.


며칠 동안 닫혀 있었던 집안의 냄새. 여행 전날 먹고 간 음식이 채 환기되지 못한 냄새. 쓰던 이불의 냄새. 고양이의 냄새. 디퓨져의 냄새. 모두 뒤 썩인 냄새가 훅 안정감을 준다. 집 안에 고여있던 공기가 3일 만에 바깥공기와 만났다.


케리어를 연다. 낯선 곳의 냄새가 딸려 왔다. 빨랫감엔 낯선 곳의 냄새와 내 체취가 같이 묻어 있다. 케리어에 들어있던 옷과 속옷, 양말, 울빨래를 나눈다.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따로 정리한다. 버터 쿠키와 마그네틱 몇 개, 조카에게 줄 장난감을 구분한다.


여행가방에서 택을 떼고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다. 7년 만의 여행이 종료된다.


여행지에서 지도를 더듬어 찾아가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간판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뜻을 알 수 없는 표지판, 영어와 그 나라의 글자가 동시에 표기되어 있다.


목적지는 늘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도착해 보면 그리 멀지도 않았다. 지도에 나와 있는 걸어서 몇 분 거리는 걷다 보면 나오기도 하고, 걷다 보면 멀어지기도 했다. 그럼 다시 뒤를 돌아 걷고,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인공의 불빛 사이에 수줍게 떠오른 둥근달을 보며, 건물 사이로 불어 온 바람에 뜨거운 땀을 식혔다. 통유리로 된 난간에 가까이 갈수록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머리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눈높이가 맞는 빌딩 속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려 눈을 찌푸렸다. 노랗고 하얀 불빛들 속 풍경이 비슷비슷해 보였다.


사람들 사는 데야 다 똑같지.


오래 걸어 운동화 속 발이 화끈거렸다. 여행 마지막 날, 숙소에서 샤워를 하다가 왼발 세 번째 발톱에 멍이 든 걸 보고 내가 지금 여행 중이구나라고 실감했다.


몸은 한동안 여행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발톱을 잘라낼 때마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잠깐 다녀온 도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익숙한 냄새에 취해 잠시 내가 다녀온 나라의 냄새를 동시에 떠올리며, 잠이 들듯 말 듯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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