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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푼 Oct 03. 2024

경단녀 신고식 4

4.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3주 동안 그 두꺼운 책을 세 번이나 되돌며 모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젠 더 전화할 곳이 없다. 그런데도 실장은 같은 곳이라도 계속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저…. 이제 도저히 못 하겠어요. 다른 일을 주시던지, 아니면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현주는 참고 참았던 말을 내뱉는다. 그러자 실장은 참다 참다 내뱉은 현주의 말에 온화한 미소로 다독이며 말한다.

“그렇죠? 힘들죠? 전화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사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며칠 전부터 여직원 두 명이 안 보인다. 정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실장에게 물어보니,

“아니…. 뭐……. 일이 있어서….” 라며 얼버무린다. 현주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니, 새로운 여직원이 한 명 있다.

“안녕하세요.”

현주는 흠칫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했다.

‘뭐야! 인원 충원 안 한다더니…. 내가 마음에 안 든거야?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다 이거지? 와...비참하네... 난 3시간짜리 알바가 딱 이라는 건가?’

현주는 점점 힘이 빠진다.      


 며칠 후 실장이 현주를 밖으로 부른다. 사무실이 워낙 좁아서 남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가 보다.

“현주씨, 사실 그 여직원 두 명 퇴사했어요. 한 명은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또 한 명은 몸이 아파서…. (쯧쯧 혀를 차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핑계도 가지가지야. 그 여직원들 일을 남자직원이 받아서 혼자 다 하고 있었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여직원을 뽑은 건데, 일머리가 없어. 어리고 알바만 하다 보니, 사무직 일을 못 해. 그래서 말인데…. 현주 씨가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

현주는 속으로 생각한다.

‘뭐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써보고 안되니까 결국 만만한 나야?’

현주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입으로는 벌써 이렇게 외치고 있다.

“네. 할 수 있어요!”     


 현주의 대답에 표정이 밝아진 실장이 이런저런 말들을 꺼내놓는다.

“현주씨 회사건물이 낡고 작죠? 사장님 부모님 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만들었어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요.”

안 그래도 현주는 회사의 화장실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화변기….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쪼그려 앉는 화변기라니…. 화장실을 한 번 사용한 후로는 참고 참았다가 집에 가서 볼일을 보는 현주다.

‘아~ 그래서 화장실도 화변기였구나.’

현주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 쎄한 느낌은 뭐지?’

현주가 실장에게 묻는다.

“혹시 사장님 부인이세요? 사모님?”

실장은 호호호 웃으며 답한다.

“맞아요. 시부모님 집이었어요.”

‘헉! 뭐야? 가족회사인 거야?’

현주는 속으로 화들짝 놀란다.

‘그럼 설마 설마…. 샤우팅 하는 이사님은…. 사장님이랑 생김새는 사뭇 다르지만, 목소리는 똑같은 그분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현주는 또 묻는다.

“그러면 혹시…. 사장님과 목소리 비슷하신 이사님도 가족이세요?”

실장은 어떻게 알았냐는 갸웃하며 말한다.

“도련님이에요. 남편은 친탁했고, 도련님은 외탁해서 서로 안 닮았죠?”

‘띠로리~~~~~’

현주는 겉으로는 생긋 웃었지만, 마음은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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