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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집착하게 했던 책들

by 부만나 Mar 18. 2025

나는 어릴 때부터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시험 전날이면 잠을 설치고,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엔 시간을 세 번씩 확인했다. 이런 불안을 해소할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했고, 대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그 감정을 잠재워왔다. 친구들은 농담 삼아 "책으로 사랑을 익히는 사람"이라 불렀다.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나는 항상 책부터 찾았으니까.


임신을 확인하던 날, 기쁨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그래서 더 압도적인 두려움이었다. 생명을 품는 일에 대한 설렘도 잠시, 이내 밀려온 질문들.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익숙한 방법, 책을 찾았다.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 중 건강관리에 관한 책을 한 권 집어들었다. 다음 날은 출산 준비와 신생아 돌보기에 대한 책 두 권을. 임신 확인서를 받아든 그날부터 나는 서점의 육아서 코너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꼭 완벽하게 준비해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동안의 불완전함과 실수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한 권, 두 권, 다섯 권... 모으던 책들은 어느새 내 방 한쪽 선반을 가득 채웠다. '하루 30분 태담으로 영재 만들기', '좋은 부모가 되는 30가지 방법', '완벽한 엄마의 임신 다이어리'... 책마다 다른 방법을 제시했지만, 모두가 한 가지는 같았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아이의 평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무언의 압력.





가족들은 책상에 수북히 쌓인 책들을 보며 웃었다. "뭐 이렇게 많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아이는 사랑으로 크는 거야."


하지만 그런 말이 내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법도 책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엄마로서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태교 음악은 정확히 하루 세 번, 매일 같은 시간에 들었다. 책이 권장하는 영양제는 한 알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먹었다. 태담은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에, 긍정적인 말로만 했다. 선반에 꽂힌 책들은 내 삶의 교과서가 되었고, 그것들을 따르지 못하는 날에는 죄책감까지 느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더했다. 수면 교육서가 말하는 대로 정확한 시간에 재우려 했고, 이유식 책이 말하는 재료와 순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랐다. 특히 가장 집착했던 것은 수유 시간. 책에서는 정확히 3~4시간 간격으로 수유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배고파 울어도, 시간이 되지 않으면 보리차를 먹이며 달랬다.


"몇 분만 참아. 아직 먹을 시간이 아니야."


시계를 보며 중얼거리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항상 시계를 확인했다. "다음 수유 시간까지 1시간 20분 남았네." 모든 일상이 수유 시간표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가슴 아픈 순간들이다. 배고픔에 울던 아이의 눈빛, 보리차를 마시고도 여전히 허기진 듯 입맛을 다시던 모습. 그 기억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책의 지침을 맹신하던 내가, 아이의 실제 필요보다 정해진 규칙을 우선했던 그때의 나를 용서하기 어렵다.


하루는 어른들이 놀러 오셨다가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내가 보리차를 먹이는 모습을 보셨다. "왜 젖을 안 주니? 애가 저렇게 울고 있는데." "아직 수유 시간이 안 됐어요. 책에서 규칙적인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를 키울 때 책 한 권 없이도 잘 키웠단다. 배고프면 먹이고, 졸리면 재우고... 별거 있나."


그 말이 그때는 전통적인 육아법으로만 느껴졌다. 전문적이지 않은 방식,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들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가장 현명했다.


"책에 나온 대로 하는데도 아이가 안 자요." "이유식 거부가 심한데 어떡하죠?" "발달 지표가 책과 다른 것 같아 걱정돼요."


육아 카페에 올린 나의 질문들. 그때마다 다른 엄마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우리 아이도 그랬어요. 괜찮아질 거예요." "책보다는 아이를 보세요." "아이마다 다 달라요. 배고프면 먹여주세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을 붙들었다. 그 페이지 안에 완벽한 답이 있을 거라 믿으며. 내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했다.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도 "아직 3시간이 안 됐어"라며 보리차만 내밀었다. 그것이 더 '과학적'이라고 믿었으니까.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도 모두 책의 틀 안에서만 느꼈다. 아이가 웃을 때도 "6주차에 사회적 미소가 시작되는 것은 정상 발달"이라는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느라 정작 그 웃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육아서의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평가되었다.


아이가 여덟 달이 되었을 때도, 책에는 '여덟 달이면 혼자 앉기가 가능하다'고 써 있었고, 우리 아이는 아직 뒤뚱거렸다. 주위의 "책 좀 내려놓으면 어때? 아이는 책이 아니라 저기 있잖아"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도,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나는 책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도, 첫 단어를 말할 때도, 내 기쁨은 항상 "정상 발달 범위 안에 있다"는 확인 뒤에 찾아왔다.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고, 책은 계속 늘어갔다.


가장 후회되는 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진정으로 아이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의 배고픔보다 시계를, 아이의 미소보다 체크리스트를 더 살폈던 시간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서 서서히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이는 내가 계획한 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책에서 말하는 발달 순서를 정확히 따르지 않았고, 내가 읽었던 어떤 육아서에도 정확히 묘사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지금 나는 그때의 불안과 집착을 이해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고, 실수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완벽주의가 오히려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게 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이제는 안다.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지만,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되는 데 필요한 지혜는 서가에 꽂힌 책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낸 모든 순간 속에 있었다는 것을.


서점의 육아 코너를 지나다닐 때면 가끔 처음 부모가 된 이들을 본다. 그들의 손에 들린 책들, 그리고 그 눈빛에서 나는 예전의 나를 본다. 불안한 눈으로 책장을 넘기며 확신을 찾으려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책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책이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시간을, 졸려 우는 아이에게 스케줄표를 들이대지 마세요. 그 순간들은 돌이킬 수 없답니다."






부모가 되는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책은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 아이와 함께 써 나가는, 그 어떤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이야기.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헤매기도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한 페이지씩 채워나간다.


이제 내 서재에서 가장 소중한 책은 육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로 가득한 앨범, 그리고 서툴게나마 기록해 온 육아 일기다. 전문가의 이론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가르쳐준 것들이 더 소중하다.


그때의 불안과 집착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염려했던 많은 것들이 결국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늘 함께 있어주는 것,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불안에 떠밀려 찾았던 수많은 책들. 결국 그것들이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때로는 책을 덮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비록 나는 그 교훈을 제때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이제는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비결은 책 속에 있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 속에, 그리고 그 실수와 후회 속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모든 육아서들을 찾아 헤매던 내 모습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책을 통해 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일찍 엄마를 잃은 아이는 엄마되기 과정에서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과 불안을 채워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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