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여성으로 태어나 또한 여성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측면을 부각해 일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 일에 열중하고 싶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하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협력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왜 지속해서 불평등함을 겪어야 하며 성별과 직위를 막론하고 경쟁자로 인식하여야 하는 것일까.
일종의 상업처럼 내가 누군가의 가족이 되는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다. 나 또한 또 다른 누군가가 가족으로 들어감에 따라 무한한 참견과 지속적인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사이가 멀어지고 그들과 좋았던 관계마저 사라지게 된다. 인간의 믿음은 한없이 약하다.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듯이 그들의 편안함과 그들 나름의 긍정적인 참견은 누군가를 나약하고 위태롭고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간혹 남에게 친절인지 불평등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로써 작용하는 경우의 여러 가지 예시를 보았다. 과연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였을까. 인간의 마음에서 ‘불평등하다.’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 마음으로도 희석되지 않는다. 불평등함이 무엇일까.
나는 누가 만들어 준 길이 때로는 내 인생에서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없는 이 무질서한 이 공간에 행복감과 고단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얻는 경험과 고단함 속에서 얻는 사소한 기쁨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그것을 발견할 때 그들이 있어서 조금 더 분발하고 삶을 유지하고 싶어 진다. 나는 때로는 자유롭고 부족한 이 삶 속에서 나보다 더 나약한 것인 것 강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서 거울처럼 또는 유리처럼 타자를 바라본다.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나는 구분 지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무엇으로 구분될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나 모두가 보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의식한다고 하더라도 습관처럼 남아 있기에 변화되지 않음에 나는 내가 느끼는 기쁨을 곧 행복이라 생각하리라. 보고 싶은 나의 마음의 가족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인간에게 남는 것, 과거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동반되는 겹겹이 쌓인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내가 과거에 누군가를 도와 배운 그 과정 속에서 의도치 않게 다친 경험이 있다. 그때 다쳤고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그 공간에서는 시급하지 않았던 그 과정이 지금 와서 나도 모르게 나에게 남은 후유증이 되었다. 그 당시, 왼쪽 눈에 화학 물질이 틔어 급하게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시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기다렸다.
나는 그 공간에서 응급 환자는 아니었다. 나는 응급 상황이었지만 더 시급한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는 응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나의 왼쪽 눈은 안 좋아졌다. 사람의 육체는 지독하게 솔직하다. 내가 겪은 무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의 문제는 언제든지 그것이 다시 나에게 남은 무언가가 된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엇이로든 남는 것에 오늘날에 이르러 굉장히 웃으면서 슬프면서 인간의 삶이 어떠한 삶인지에 관해 놀랍고 신기하다. 지금에 이르러 좋은 것을 주었던 것인지 일부로 나쁜 일들을 시도한 것인지 그러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 본인이 기준이 그러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은 것을 강요하지 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강요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육체에 남은 기억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는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는 오늘 생각했다. 내가 오늘 예약한 10월 4일은 백신 예약을 신청한 날이다. 또한 건강 검진도 받는 날이다.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해보았다. 공간과 시대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또한 백신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에 관해서 생각하며 불과 얼마 전까지 죽음이 앞에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것이 죽음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목전에 두고 나니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엄청난 아픔이 생긴다면 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이 목전에 있으며 눈앞을 맴돌 때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그 기분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조금 편해진 안락감에 좀 더 살고 싶어졌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작은 행복이 눈앞에 올라올 때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