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인간 정보원에 따르면 기철이 사라진 직후 소말리아는 내전 상태로 돌입했다. 각국 정부는 소말리아를 전장으로 삼아 대리전을 펼쳤다. 인류에게 더 이상 부족한 것은 없었지만 더 넓은 영토를 위해, 더 많은 실험체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각 국가들은 저마다 군사 자문단을 파견해 부족별로 파트너십 관계를 체결했고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점령할 때마다 패배한 부족을 후원하는 국가가 배상금을 지불했다. 자국민을 희생시키지 않고 벌어지는 전쟁은 세계의 국가에게 일종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그들은 소말리아에서 패배한 후 그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 인근 국가에 거주하는 부족들을 후원하여 전쟁에 참여시켰고 이는 곧 아프리카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대륙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대륙뿐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 위치한 낙후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러시아가 [중국-러시아 전쟁 : 울란바토르 대리전]에서 중국이 패배한 후 배상금을 물지 않자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며 중국을 침략하여 대리전은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었다.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가 시행된 이후 238년 만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이다.
Cade는 전쟁을 촉발한 전범을 규정되어 해체 수순을 밟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세계는 Cade가 가진 수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이자 연구소로 세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Cade에게 단일 국가가 책임을 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자국 영토 내에 존재하는 Cade 지부를 향해 압류를 시행했고 Cade는 거대 기업에서 일개 연구소로 전락했다. 압류에 대한 핑계는 거창했다. '인체 실험 자행 등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 '부전 조약에 위배되는 대규모 살상 무기 생산을 위한 기초 기술 연구' 등의 수십 가지의 죄목이 Dr. Lee와 리처드 박사를 비롯한 Cade 수뇌부에게 선고되었고 네덜란드 덴하그의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다만 리처드 박사는 소재를 알 수 없어 집행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시술을 받아 영생을 누리던 사람들은 이제 전장에서 영생의 불꽃이 꺼질 때까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해야 했다. 시술의 효과가 어찌나 탁월한지 사지가 날아가 피를 뿜어내는 사람도 의무실에서 하루만 보내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육체에 비해 인간의 정신은 나약한 것이었다. 자신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내장이 쏟아지는 상황을 수없이 지켜보며 인간은 무력함과 상실감에 젖어들었고 죽는 게 차라리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사망률 프로젝트의 잔재는 점차 사라졌고 국가 수뇌부를 비롯한 중요 요인을 제외한 인류 대부분이 불로불사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가 예상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졌지만 아직 불로불사를 포기하지 않은 자들이 남아있고 인류는 전쟁의 불씨가 사그라든 후에도 다른 방식으로 자멸을 계속할 것이기에 '우리'의 계획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약간의 수정은 거쳐야 한다.
-아스터의 기록 중 일부 발췌-
"대장."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모니터 속 기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수염이 얼굴을 덮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대장, 혹은 리처드 박사라 불렀다. 그는 기철이 소말리아에서 사라진 후에 반란군과 함께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여러 임무를 수행했으며 그들의 임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원래 계획은 약간의 혼란을 야기해 Cade를 주축으로 한 세계정부를 수립한 후 최대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안드로이드를 인간 세계에 녹여내는 것이었지만 인류의 폭력성과 Cade 내부의 파벌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해 계획이 틀어졌다. 그 사이 랜버본과 바티스는 죽었고 반란군 내부에서 유일하게 시술을 받은 리처드 박사만이 과거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누군가'가 인공지능이며 계획을 고안하고 만든 자가 니시무라라는 사실을 꽤 오래전에 알아차렸다.
"전쟁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예상대로 Cade는 다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 이제는 Cade 없이 운영할 수 있는 국가가 없습니다. 계획을 다음단계로 이행할까요?"
리처드 박사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래.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는 그리움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