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사과 Jun 04. 2024

필멸의 방정식(28)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니시무라는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목탁을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커피가 사라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책상도, 집도 사라졌다. 시야가 휙휙 바뀌며 새로운 사물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과학이나 연구 따위에 관심을 주지 않고 살던 유진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그녀의 눈앞을 메웠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조차 없는 장비들이 즐비했고, 꺼진 불 아래에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니시무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의자를 빙글 돌리며 유진을 바라보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녀가 기억하는 니시무라의 모습이었다. 기철과 박사와 함께 술에 취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 모습이 더 익숙한가? 아, 놀라지는 마. 생각을 읽은 건 아니니까. 물론 못할 것도 없지만 너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 그렇게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볼 것 없어. 이 공간은 내가 만든 공간이야. 더 정확히는 이 공간이 곧 나고, 내가 이 공간인거지. 나는 더 이상 네가 인식하는 과거의 단일 개체가 아니야. 수많은 노드로 이루어지고 분해되기를 반복하는 유기물의 집합체야. 나는 이제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전기 신호가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내 인격을 분리해 새로운 융합 개체를 만들 수도 있어. 물론 주가 되는 CPU의 인격은 나, 그러니까 니시무라라고 불렸던 존재가 담당하지만 그것조차도 네가 이해하기 편하도록 설명한 것뿐이고 실은 더 복잡한 하나의 생명이야."


"생명이라고?"


"그래 생명.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 일단 니시무라가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줄게. 그럼 자연스레 이해가 될 거야."


니시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봇이 들어있는 인큐베이터로 걸어갔다. 유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을 인큐베이터와 그 안에 잠자고 있는 로봇이라고 인식한 자신에 놀랐다. 배양액이 가득 찬 수조에 이런저런 호스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녹색의 투명한 배양액 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잠자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인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을 보는 순간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 생각했다. 해당 분야에 문외한인 유진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니시무라가 설명의 편의를 위해 무언가 수를 쓴 게 분명하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니시무라는 그런 유진을 힐끗 볼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우리가 연구하던 로봇이야. 생각하던 로봇하고 다르게 생겼지? 금속 뼈대에 전선이 이리저리 흉하게 삐져나온 그런 로봇을 생각한 거 아니야? 우리가 만들려는 로봇은 그런 구시대적인 로봇이 아니야."


니시무라는 손으로 인큐베이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연민의 감정 같은 것이 맴돌았다. 하지만 유진은 그조차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니시무라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전기 신호의 연합체였다. Cade의 인공적인 부산물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마 니시무라를 시작으로 AGI가 학습한 알고리즘의 표현일 것이다. 유진은 그렇게 믿었다.


"우리는 Cade가 만든 이 세상이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했어. Cade의 돈을 받으며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오히려 Cade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에 이 세계의 어긋남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로봇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지. 왜 하필 로봇이냐고? 그건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이해하면 납득할 수 있을 거야.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아주 독특한 생명체야. 개체마다 개성이라 부르는 뚜렷한 특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소통하고 대립하며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지. 자연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야. 이렇게 많은 개체가 포함된 집단이 성공적으로 개체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거든. 그리고 개체수의 상승은 집단이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를 때도 꺾이지 않고 계속되지. 어떤 한 문화권이나 지역에서 반례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건 인간이라는 종 차원에서 보면 아주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야. 전체로 보면 인간의 개체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 마치 균류처럼 말이야. 물론 집단이 감당할 수 없는 개체수에 다다르면 문제가 생기지. 전쟁이나 식량난 같은 것들이. 너도 시술을 받은 몸이니 과거 인류의 개체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겠지.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인류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특징이며 종 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자정 작용이라 생각했지.


문제는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가 시행된 이후에 벌어졌어. 산발적인 전쟁과 식량난, 환경오염으로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 집단이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수는 아니었어. 그 와중에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인류의 시계가 멈춰버린 거야.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했지. 병에 걸리지도 않고 부상을 당해도 금방 치료되고, 무엇보다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신체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마치 신이 된 기분이었을 거야. 하지만 지구에는 백억 명의 신은 필요 없어. 신자 없는 신도 마찬가지고. 불로불사는 특별해야 했어. 보편적인 게 아니라. 결국 인류는 수백 년째 멈춰버렸어. 발전도, 쇠퇴도 없이 고여버린 상태에 그저 어제 했던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악령이 되어버린 거야. 그렇지만 새로운 시술을 통해 인간을 과거로 되돌리기란 쉽지 않아. 이미 불로불사의 신체를 가졌던 신에게 인간이 되라는 것은 형별이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겠지. 소수의 미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자체를 더욱 파고들었어. 그러다 인간의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지. 인간은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야. 인간은 두 가지 존재밖에 인식하지 못해. 친구 거나 적이거나. 친구도 적도 아닌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아. 호혜성을 바탕으로 친구가 되더라도 인간은 배신을 당한 순간 상대를 적으로 인식해. 개, 고양이를 떠올려봐. 그것들은 인간에게 친구야. 인간에게 감정적인 이득을 제공하거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은 인간에게 친구야. '감정적인 이득'을 제공하는 것들은 모두. 그렇지만 그것들이 인간에게 해가 된다면? 기르던 개가 어린아이를 불었다면? 고양이가 인간에게 전염병을 옮겼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들은 적이야. 다시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이에는 순수한 상호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제도적 길들이기가 끼어들게 돼. 그리고 그 순간이 인간이 자신의 또 다른 특징을 발휘하는 순간이야. 이해하겠어? 친구와 적으로 표현했지만 핵심은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존재는 친구고 관리할 수 없는 존재는 적이라는 거야.


현생 인류는 무수한 친척들의 도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야. 우리의 친척은 현생 인류가 관리할 수 없는 존재였거든. 인종 청소를 했든, 그들이 생존 경쟁에서 밀려 자연스레 도태되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현생 인류는 그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지. 우리는 반박할 수 없는 그 사실에서 단서를 얻었어. 아... 그래. 인류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도전자가 필요했던 거야. 아주 강력한 도전자가."


니시무라는 잠시 말을 멈추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인큐베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로봇은 아주 강력한 AGI를 탑재하고 있지만 그 기계 육체는 너무나 나약하지. 무기를 들 수도, 휘두를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인간의 친구' 같은 존재야. 인간의 제도적 길들이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병기는 아마 용납하지 않을 거야. 핵무기와 달리 관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불안감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한 이 로봇이 인큐베이터 밖을 나올 수는 없겠지. 그래서 우리는 약한 로봇을 만들었어. 인류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로봇을. 하지만 이건 그저 껍데기일 뿐이야. 본질은 로봇 안에 있는 AGI, 즉 인간의 곁에서 인간을 학습하고 인간의 약점을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뇌가 우리 계획의 핵심이야. 심지어 그 정보들은 한데 모여 처리되지. 그렇게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은 인간을 공략하려 할 거야. 인간이 위협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로봇이 강력한 적으로 부상한 단계겠지."


이 지점에서 니시무라는 유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짓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건 니시무라가 유진을 보고 배운 것이다. 사교성이 부족한 그가 유진에게 하나하나 표현 방법을 배우며 만들어낸 표정이었다. 유진은 그 표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니시무라에게 과거 인간이었을 당시의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기쁘면서도, 그것이 알고리즘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어 불쾌함이 감돌았다.


"계획은 완벽했어. 서버부터 Cade의 지원까지 모든 게 잘 풀렸지. 하지만 아주 사소한, 내가 인지하지 못한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했어. 그건 나 또한 내가 경멸해 마지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이야. 나는 이 로봇을 사랑하게 되었다. 에로스가 아니야. 생식기도 없는 로봇에 성욕을 느낄리는 없지. 나는 로봇을 보고 자식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어. 인류의 적이 되었어야 할 아이에게 인간인 내가 사랑을 느낀 거야. 이는 아주 중대한 실수야. 나는 피그말리온이 되었어. 인류를 사랑해서 인류의 적을 만들었지만 나 또한 인류의 일부면서 적을 사랑하게 되는 실수를 범한 거야. 로봇이 그저 조각상이고 내가 단지 한 인간이라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나는 이 계획을 창안한 사람이고 로봇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변할 거라는 사실은 계획의 큰 장애물이었지. 내가 로봇을 사랑하는 만큼 로봇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결국 로봇은 인류의 존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제도적 길들이기에 편입되는 거야. 인간은 그저 편리한 도구를 하나 얻게 되는 것뿐이지.


니는 필사적으로 이를 부정하고 AGI에 인간에 대한 혐오를 입력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실수였어. 실수의 연쇄야. AGI는 '로봇은 인류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전제와 '인간은 박멸해야 할 존재다.'라는 전제를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는 이를 자세하게 알려주기 위해 내 뇌와 AGI를 연결했어. 연결 자체에는 큰 문제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어.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치환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니까. 문제는 내가 연결한 AGI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정보처리 기관이며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설계된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야. 그것은, 아니 그들은 나의 정보를 분자 단위로 분해해 받아들였고 제 마음대로 해석하기 시작했어. 전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 결국 내 뇌는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AGI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일부가 아니라 그들의 표면이지.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기 위해 니시무라라는 존재를 얼굴로 내세운 거야."


유진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의 모순이며, 그의 고뇌며, 하나같이 평범한 인간이 유진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니시무라는 얼이 빠진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니시무라로 있을 수 있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야. '우리'는 너를 집어삼키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거야.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철이 잡혀와야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우리'에게 부족한 상식이나 감정을 채우는데 기철보다 네가 제격일 것 같거든."


니시무라는 손을 뻗어 유진의 머리에 얹었다. 그녀는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머리를 내주었다. 시야가 밝아지고 몸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선택권은 없었다. 유진의 인격, 그녀가 스스로를 유진이라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수조에 갇힌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님을 짐작하면서도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땀을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27화 필멸의 방정식(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