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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은 Oct 22. 2023

운수 좋은 날과 첫 직장의 상관관계

초조함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어떤 행운은 결말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품고 있다. 심지어 도박판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첫끝발이 X끝발이라고.      


일의 시작은 이렇다. 대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졸업을 앞둔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학과에는 취업 추천을 학번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풍습이 있었다. 어느 평범한 날, 조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학과 취업 추천에 뽑혔다는 것이다. 우. 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사소한 이벤트조차 당첨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어떻게 당첨이 되었지? 동기들의 축하 속에 나를 추천하는 회사는 어린이교육출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우리 과 선배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던 그 자리를 내게 바통터치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출판 쪽을 미래 직업으로 염두에 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소위 언론고시 준비생이었다. 언론고시 스터디를 하며 2년여를 보내고 그즈음 몇몇 시험에서 이미 낙방한 후였다. 사실 스터디 모임에서는 공부보다 포켓볼을 더 많이 치러 돌아다녀서 그 모임이 언론고시 모임인지 포켓볼 모임인지 나중에는 헷갈릴 지경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언론인이 아닌 결과로 도출되었지만.      


처음에 나는 당연히 그다음 제비뽑기 당첨자에게 정중히 행운을 건네주려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리자, 엄마는 그런데... 나는... 이라며 운을 떼기도 전에 너무 축하한다, 당장 취직하자며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조심스레 그 회사에 안 들어가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 후 엄마는 3일 밤낮을 전화해서 나를 설득했다. 취업시장 현황의 어려움과 이런 행운을 놓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정직원도 아니고 인턴생활이니 일단 들어가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알겠다는 강압적인 긍정의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고시 합격이라는 확신을 안겨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어쩌면 내 직장생활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때 엄마가 나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설득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아 보곤 했다. 


엄마는 친척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왔다. 그들은 졸업 6개월 전에 취직에 성공한 내가 이미 사회적 성공을 거둔 것처럼 추켜세웠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큰 실수를 저지르고 그곳의 생활을 1년 만에 접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 봅슬레이 사건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잘못된 행운인지 살피고 건너야 한다

지나고 내가 깨달은 바는 이것이다. 초조함, 다급함이 섣부른 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계속된 언론고시에 낙방했고, 포켓볼에만 심취해 있던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조했고, 마침 내 앞에 떨어진 잘못된 행운에 몸을 던졌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불나방의 선택인지 아닌지,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신중하고 신중하게 여러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장 위기를 모면하려는 선택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한 치 앞보다 더 먼 지점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때 만약 내가 심지를 굳건히 하고 언론고시 재수까지 불사하면서 계속 처음 목표를 향해 나아갔더라면 어쩌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첫 시작을 잘 내딛길 바란다. 상황에 쫓겨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최후의 보루까지 가지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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