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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Jul 05. 2024

아빠가 울었다.

이혼이고 나발이고, 아빠의 기타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요즘 아빠는 수분이 다 빠져나가버린 낙엽처럼 침대에 누워계시다 포돗이('겨우', '간신히'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휠체어에 몸을 옮겨 엄마와 함께 근처 산으로 맨발 걷기를 다녀오신다.

낙엽은 밞으면 바스슥 소리라도 나지.

아빠는 바스슥 소리조차 낼 수 없는 낙엽 같은 모습이다.


아빠에게 찾아온 암은 십이지장암 3기.

1년 반 째 이어지는 항암주사와 방사선치료와 통증완화용 마약성 진통제로 아빠의 몸은 45kg 낙엽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우리 집으로 온 지 두 달여 만에 사위는 집을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아직 모르신다.

딸의 이혼을.

아빠에게 아직 비밀인 것은 엄마의 의견 때문인데, 엄마가 판단하는 아빠는 '유리멘탈'이라서 이 얘기를 들으면 충격에 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한 듯하다.

작년에는 자주 사위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언젠가부터 어느 정도 짐작을 하신 건지 사위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신다.

아마 이 일을 끝으로 그러신 듯하다.




2024년 2월 5일.


전남편과 서류상 남이 된 지 5개월 차.

전남편이 집을 나간 지 11개월 차.

친정 아빠의 암투병 1년 2개월 차.

동글이가 제 아빠를 만나지 못한 지 한참 되어 이제 더 이상 아빠 얘기를 하지 않던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글이는 영어학원에,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지셔서 정형외과에 가신 오전.

속이 쓰려 3주째 밤잠을 설치시고 살도 많이 빠지시고 기약 없는 항암에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지신 아빠가 아빠 다리를 주무르던 내게 물으셨다.

사위는 왜 안 오냐고. 보고 싶다고. 아빠 때문인 것 같아 속이 많이 상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동안 궁금했는데 못 물어봤다며.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리셨다.


맘 같아서는 그딴 사위는 없는 편이 낫다고,

세상에 장인어른 암투병 중에 외도를 하고, 그렇게 이혼을 말하는 책임감이 억만마이너스쯤 되는 그딴 사위는 기억에서 지워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꾹 눌러 담고.


그런 거 아니라고.

사위가 많이 바쁘다고,

천안이니 남양주니 왔다 갔다 하느라 많이 바쁘다고,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전에는 전화라도 했는데 그럴 수 있냐고,

아빠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진 거냐고,

그래도 주말에 서울로 오는 날에는 본가에라도 가 있을 거 아니냐고,

아빠 다시 광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주말에 자꾸 서울 왔다 갔다 해서 몸도 너무 축나고 힘들어서 본가에 안 간지도 꽤 되었다고,

아빠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방으로 멀리 다니느라 힘들어 그렇다고, 둘러댔다.

아빠가 다시 광주로 가려면 아빠 몸이나 잘 챙기라고,

이렇게 속 쓰려서 눕지도 앉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어딜 가냐고,

그러니까 얼른 기운 차리라고,

아무 일도 아닌 척 웃으며 말했다.


올 초 동글이가 열이 심하게 나서 입원했을 때,

엄마가 병원에 짐 챙겨주러 오신, 집에 아무도 없던 그때

아빠는 사위 방(이제는 창고화 된)에 들어가 옷장을 열어보셨다고 한다.

옷장 속 가득했던 사위의 옷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깨끗해진 모습을 보셨을 터.

그리고 엄마 아빠 두 분이서 점심 식사를 하시다가

아빠가 울먹이며 아무래도 당신 때문에 둘 사이에 뭔가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셔서

엄마는 모르는 척했다고, 엄마도 이상하다 생각은 하는데 일단 딸이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고 하셨단다.

추석 때도 사위 언제 오냐고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동글이가 입원하고 나서 엄마랑 전화하며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말하는 엄마도 울고 듣는 나도 울었다.


든든한 사위였다.

나에게는 바람피우고, 날 바보취급하며, 날 속이는 남편이었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여리고 어리숙한 딸보다 믿음직한 사위였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리바리한 아들, 딸보다 이런저런 셈이 빨라 일을 착착 진행해 주는 듬직한 사위였다.

아빠 수술하시는 날에도 폭설 속에서 서울-광주 왕복 12시간 넘게 운전하고도 장인어른 장모님 걱정이 우선인 따뜻한 사위였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서글서글하고, 따뜻하고, 믿음직한 사위를 당신 자식만큼 아끼셨다.

그런 사위가 이런 상황에서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는 것이 아빠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필시 무슨 일이 생겼다 여기는 것이다.



아빠의 그런 마음들 때문이었을까.

사위가 보고 싶은 마음,

당신이 우리 부부 생활에 폐를 끼쳤다는 미안한 마음,

그러나 물어도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는 상황,

그리하여 아빠 혼자 웅크려 안고 끙끙대던 걱정들,

그런 마음들이 아빠에게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일까.


그날의 물음 이후

아빠의 암은 방사선 치료에도 불구하고 재발했고,

재발한 암이 암성통증을 유발했고,

생활이 힘들어져 마약성진통제를 처방받았고,

현재 다른 주사로 바꿔 항암을 진행 중이시다.

그 사이 아빠는 더 많이 말라 이제는 '뼈에 살가죽이 붙어있는 느낌'이 뭔지 확연히 알게 해 주었고,

새로 바꾼 항암 주사가 머리카락을 빠지게 해서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 '간디 할아버지'가 되었고,

마약성진통제로 인해 통증은 없어졌지만, 기억력도 함께 없어지는지

요즘은 방금 물어본 걸 또 물어보시기도 한다.


이런 나날 속에 가끔 아빠의 까무룩 감긴 눈이 떠지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가족 모두는 믿는다.

우리 아빠는, 몇 번의 위기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슈퍼맨이니까.

심장 스텐트 시술 시 의사가 '길에서 쓰러져 발견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천운으로 이렇게 스텐트 시술을 받게 되었다 하지 않았던가.

서울로 기차 타고 올라왔다고 하니 의사가 '암덩어리에서 이렇게 피가 줄줄 새는데 기차 타고 아무 일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기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암덩어리에서 피가 새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심장 스텐트 시술한 지 두 달도 채 안 되어 심장이 버텨줄지 모르겠다고, 빅 5 대학병원에서도 처음 해 보는 수술이라고 했던 그 수술에서 잘 버텨준 아빠이지 않던가.

그러니까, 아빠는, 다시금 기적을 일으켜 건강을 되찾으실 것이다.

이만큼 버텨온 걸 보면, 아빠는 '유리멘탈'아닌데, 엄마는 자꾸 아빠를 못 믿는다.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아빠에게도 얘기할 것이다.

딸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려 하고, 이혼한 시기에 대해서도 앞당기려 한다.

사위를 미워하며 힘들어하는 것보다, 그리 되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아빠의 건강을 위해 더 좋고,

아빠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미안해하는 것보다, 전부터 둘 사이가 안 좋았구나 하는 편이 아빠의 건강을 위해 더 좋기 때문이다.


아빠는 기타를 좋아한다.

정퇴 후 지역의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어떤 모임에 참여하며 이곳저곳 공연을 다니시기도 하셨다.

항암 초반에는 광주에서 기타를 가지고 오셔서 가끔가끔 집에서 기타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동글이에게 가르쳐주시며 딸보다 낫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 기타는 창고가 된 사위방 구석에 있다.


가끔 아빠는 아빠가 기타를 치시던 그때의 영상을 보신다.


이혼이고 나발이고,

나도,

아빠의 기타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내가 조금 더 현명한 결혼 생활을 했다면, 아빠 곁에 지금 사위가 있었을 텐데..

그러면 그런 걱정들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암이 재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아빠가 조금 더 굳건한 마음으로 항암에 임할지도 모를 텐데..


아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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