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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Jun 21. 2024

사랑했던 남자가 끔찍해졌다.

feat. 사건의 지평선

"끔찍해. 내 인생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ㅂㅅㅅㄲ."


전남편이 나의 연재북을 보고, 내가 써놓은 글들을 '배설'이라 표현하며, 기분 나쁘니 다 삭제하라고 했던 날.

나는 40년 인생, 가장 사랑했던 남자에게, 끔찍하다고 했다.

어떤 결혼 생활이었고, 어떤 이혼 과정이었든,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해서 버텼다.

그랬는데, 그런 사람이 끔찍해졌다니.

그 사실이 슬펐다.





사건의 지평선 :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공간의 영역의 경계를 이르는 말.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이혼을 생각하고 결심하는 과정에서 많이 들었던 노래이다.

'와 가사 진짜 미쳤다.' 생각하면서 '우리'를 '나의 나름대로' 정리했더랬다.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에겐 우리가 지금 1순위야.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 둔 것 같지만.

→ 미루고 미뤄왔던 그 생각을 이제는 정말 해야 했다. '이혼'에 대한 결정, 이혼 후의 삶에 대한 계획.

첫 외도 이후 깨진 유리병을 이어 붙여 '안전한 유리병'이 되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이미 금이 간 유리병'에 금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전남편의 두 번째 '바람'을 묵인한 채.

갑작스러운 이혼 요구, 밝혀진 세 번째 외도.

이제는 정말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생각하기 싫어 접어놓고 회피하고만 있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하는 결정은 실수가 많은 법이다. 차분한 마음이 될 때까지 미뤄두었었다. 자꾸만 심란한 마음이 들 때는 마치 활자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주구장창 책만 읽었다. 나의 독서는 현실도피형 독서이다. 그리고 차분한 마음이 되었더니, 머리와 가슴이 일치했다.

'이혼'. 그것이 내 생각의 최선이었다.


기억나? 그날의 우리가 잡았던 그 손엔 말이야 설레임보다 커다란 믿음이 담겨서 난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울음이 날 것도 같았어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 나에겐 사실 결혼기념일보다 소중한 날이 있었다. 스물셋이었던 내가 스물 넷이었던 전남편과 처음 만나던 날이다. 2007년의 눈부신 여름날. 이 글의 발행일 즈음의 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오후엔 쨍한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그날. 반짝반짝 빛나던 우리. 함께 맞잡았던 그 손의 온기. 다친 내 손에 밴드를 붙여주던 떨리던 그 손. 그곳에서 함께 본 노을과 그날의 공기. 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내려올 줄을 몰랐던 달뜬 마음들. 스물셋의 나는 스물넷의 전남편과 1년 조금 넘게 연애를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이 즈음이 되면 그곳에 가서 노을을 바라보곤 했다. 나만의 '이별순례'였던 셈이다.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 그렇게 헤어졌던 전남편과 스물여덟에 다시 만났고,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다. 서른 하나, 이 집에서 동글이를 낳았고, 이 집에 전남편이 있는 게 당연했었다. 전남편이 퇴근하면 동글이의 울음소리, 웃음소리에 섞여 밥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던... 그러던 이 집이다. 이제 이 집에서 전남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이 집에서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머리와 가슴의 일치로 '안녕히.'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각자의 실수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어도, 결혼 생활 내내 불행했던 것은 아니기에, 행복했던 기억들은 전남편과 내게 어떤 식으로든 힘을 주기 마련이라 생각했다. 전남편의 외도로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그로 인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많아져서, 나는 분명 성장했다. 나는 해 볼 때까지 다 해 봤고, 아낌없이 반짝였고, 아낌없이 불태웠다. 그래서 '이혼'으로 결정했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 익숙함. 정말 무서운 단어다. 집 안에 우리 셋이 있었던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익숙함에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서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진심을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 가사처럼 이혼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전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여긴, 너와 나의 끝이 아닌, 나의 새로운 길 모퉁이이다. 이제 여기서, 시작하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전남편과 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다 도려내고 싶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있지만, 그 10년을 이어가며 분명 행복한 추억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미화된다고 한다. 전남편의'외도'와 내가 한 수많은 실수들은 '잘못'이었지만, 동글이를 낳고 동글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공유한 수많은 삶의 페이지들은, 전남편도 나도 예쁜 추억으로, 많이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고맙다. 진심이다. 나에게 '동글이 엄마'로서의 삶을 선물해 준 사람이니까.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 솔직히, 두려웠다. 이혼이라는 건 남녀가 사귀다 헤어지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가족과 가족의 헤어짐이다. 더더군다나 아이가 있을 때 이혼은.. 이 아이에게 이혼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전남편의 두 번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지켜왔다. 내 가슴이 썩어 문드러져도 내 동글이의 온 우주를 지켜왔다.  그러나 더 이상의 노력은 정말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었다. 아니,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전남편과 나는 최선을 다 했고, 이제 그 최선을 다 할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이제는 이 선택이 우리 셋에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산뜻한, 안녕.

이었다.





안녕, 반짝이던 우리.

이제, 우리의 시간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그래서 이혼할 수 있었다.

내가 전남편을 미워하고, 외도를 복수하려는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랬다면 이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전남편의 행복을 빌었다.


이혼 서류에 꽝꽝꽝 도장이 찍히던 날, 얘기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전남편과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동글이의 아빠로, 내 인생 가장 풋풋했던 때를 아는 사람으로, 차 한잔 마시며 지난 일들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이렇게 산뜻하게 끝.


하고 싶었는데, 웬걸.

끔찍해졌다.

'산뜻한 안녕'이라는 내 바람은 전남편의 성급한 혼인신고와 상간녀 뱃속의 아이로 인해 산산조각 났고, 나의 '배설'적 글쓰기로 인해, 더더욱 끔찍해졌다.

'아름다운 이별'따위, 사치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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