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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May 31. 2024

아우디를 긁었다.

운전도 인생도 초보이지만 행복한 오너드라이버입니다.

O.M.G.

아우디를 긁었다.


반려견 댕댕이 미용을 맡기고, 동글이와 함께 댕댕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시동을 켜고, 신난 마음으로 쓰윽 주차 라인을 빠져나가는데 둔탁한 느낌이 났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급히 내려 확인했는데, 오마이갓. 옆차를 긁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동그라미 네 개.

아우디다.

맙소사.

(외제차는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졸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침착하자.

동글이가 같이 있다.

더욱더 침착하자.


옛날 같았으면 "오빠~~ 어떻게 해~~ ㅠ.ㅠ"하고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게 "오빠~~"하고 기댈 남편은 없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상대 차와 내 차 사고 사진을 찍었고,

차주에게 연락했고,

차주는 보험처리를 원했고,

보험회사가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보험회사 아저씨-어쩌면 나보다 젊을지도 모르는데-가 새로운 "오빠"가 된 것인가?)

이로써 나는 침착하게,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멋진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아니, 보험회사 아저씨가 해결해 주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알아서 해결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일까..

전남편을 부르지 않고, 내가 차주와 보험회사에 연락한 것?

그래,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운전 3년 차이지만 동네 출근길과 동네 마트길만 다니는 그야말로 쌩초보이다.

그래서 아직 내 차에는 '초보운전'스티커가 붙어있고,

앞으로도 새로운 길을 운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이 스티커를 뗄 생각은 1도 없다.

(이래서야 '초보운전'스티커를 뗄 수 있는거야?)


그런 쌩초보가 동글이와 함께 대학병원에 다니며 아주 조금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이번 주말에 동글이와 강화 쪽으로 바다를 보러 다녀올까? 도전?'하고 생각하던 참에 일으킨 사고였다.

운전에 자신감이 붙는 운전 1-2년 차에 사고가 한 번씩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딱 그런 즈음이었다.

그렇다면 달리는 차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서,

무엇보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면허를 딴 건 1번 상간녀의 영향이 컸다.

궁극적으로는 동글이에게 여자도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운전학원에 등록을 한 가장 큰 공은 1번 상간녀의 운전실력 덕분이었다.


수능 끝나면 면허부터 딴다는데, 특히나 내가 스무 살 때는 '3일 속성반' 이런 게 있어서 면허 따기 쉬웠는데, 그때는 놀기 바빴고, 대중교통이 이렇게 잘 되어있는데 면허 같은 게 내 인생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전남편을 만났고, 뚜벅이 남친만 만나다 아빠 차를 물려받은 차 있는 남친을 만나니 신세계였다.

그렇게 내게 여러 모로 신세계를 안겨 준 전남편과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차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한 날에는 전남편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뚜벅이 엄마의 삶을 살다 1번 상간녀가 나타났다.

전남편과 1번 상간녀 사이의 대화에 '시속 120', '칼치기' 이런 단어들이 오갔던 걸로 비추어 1번 상간녀는 운전을 꽤나 과감하게 하는 여자였던 듯싶다.

1번 상간녀에 대한 질투로 불타오르던 그때,

내가 동글이와 나들이를 가고 싶어도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이나 택시 이용이 꺼림칙하던 그때,

그리하여 오매불망 상간녀와 데이트 나간 전남편만을 기다리던 그때,

일곱 살 동글이가 물었다.

"엄마, 운전은 남자가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거는 여자가 하는 거지?"

아뿔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야 말았다.

전남편은 신혼 초에 집안일은 여자가, 바깥일은 남자가 하는 것이며 이를 서로 도와주었을 시에는 그것에 대해 서로 고마워해야 한다는 아주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나를 크나큰 혼란에 빠뜨렸고, 앞으로 나의 결혼 생활에 눈앞이 깜깜해짐을 경험하게 하였다.

물론 전남편이 집안일을 아주 '도와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남편은 라면을 잘 끓였고, 이유식도 잘 만들었고, 고기 양념을 잘 재었고, 무엇보다 고기를 아주 맛깔나게 잘 구웠다.

그러나 동글이가 말하는 집안일인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건 모두 내 차지였고, 동글이는 여섯 살 무렵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속상해."하며 대성통곡을 했더랬다.

나는 면허가 없으니 자연히 단거리, 장거리 할 것 없이 전남편이 운전을 했고, 심지어 친정이 멀어 편3시간이 넘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자주 다녔다.

주변에 운전하는 여자는 동글이에게 숙모뿐이었는데, 숙모가 운전하는 차도 직접 타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성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아이들은 본 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의 모습이 중요하다.

"아니야, 동글아. 무엇이든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건데, 엄마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엄마보다 아빠가 운전을 잘하니까 아빠가 운전을 하는 거고, 엄마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걸 아빠보다 더 잘하니까 엄마가 하는 거야. 고기는 아빠가 더 잘 구우니까, 아빠가 고기는 구워주시잖아."


나는 1번 상간녀가 키가 큰 것도, 옷을 잘 입는 것도,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운전을 잘하는 것도, 무엇보다 전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도 모두 다 부러웠고 짜증 났다.

나는 전남편 없이는 어린 동글이를 데리고 어딘가에 가지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동글이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날로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고, 도로주행 5수 만에 드디어 면허증이 내 손에 뿌듯이 쥐어졌다.

면허증을 손에 들고 동글이에게 얘기했다.

"동글아, 이것 봐! 엄마가 네 번 면허 시험에서 떨어졌잖아! 근데 다섯 번 봐서 합격했어!! 엄마가 포기하지 않았더니, 된 거야!"

알려주고 싶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뭔가 하다가 중간에 마음대로 잘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동글이에게 전남편은 "하기 싫으면 하지마. 그만해."라고 했었다.

전남편은 10년의 결혼 생활동안 1-2년에 한 번 꼴로 이직을 했고, 더러는 2-3개월 다니다 그만둔 곳도 있었다.

(물론 이직의 이유가 꼭 '하기 싫으면 하지마.'와 같은 생각 때문은 아니었을 테고, 여러 이유가 있었고, 하기 싫다고 무턱대고 그만두고 나 몰라라 노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아니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인내심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는 '지연된 보상'이 지금 당장의 보상보다 보람될 때도 있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도, 여러 방향을 스스로 고민해 보며, 마침내 그것을 해 내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보람을 동글이가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는 자세. 그걸 꼭 동글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또 알려주고 싶었다.

여자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자든 남자든 정해진 일이 없이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면허를 따고 2개월쯤 지나, 중고지만 차를 장만했다.

면허 따고 바로 운전을 시작해야 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장롱면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처음 혼자 운전대를 잡던 날, 집을 코앞에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때도 있었다.

집 근처 조금 큰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트렁크에 장본 것들을 실으며 혼자 뿌듯해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워낙 겁쟁이인 데다가, 출퇴근도 동네라서, 운전실력이 늘지 않았었다.

전남편은 내게 두어 번 운전을 시켜보더니,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본인이 운전하는 것보다 더 불안하고 불편하다며, 늘 본인이 운전을 자처했다.

그래서 차에 기름도 전남편이 넣었고, 세차도 전남편이 해 주었다.


그리고 이혼을 했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한다.

셀프 주유소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혼자 기름을 넣던 날, 나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에, 자존감 뿜뿜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해주는 자동 세차를 하던 날,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고 '기어는 중립, 사이드 미러는 접고...' 달달 외다 어떻게 세차를 마쳤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나 스스로 해냈다는 자아 효능감 뿜뿜이었다.

(아직 셀프 세차장은.. 무리인 듯싶다. 그러고 보니, 차 내부도 엉망이던데, 조만간 내부 세차도 한번 해야겠다.)

맨날 동네만 다니다가, 동글이가 아파서 대학 병원으로 가야 했던 날, 동글이를 태우고 쿵쿵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동네를 벗어난 안전한 주행을 마친 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를 몸소 느끼며 내가 엄마라는 존재임에 감사했다.


어릴 때는 아빠가 운전을 해 주셨다.

결혼해서는 전남편이 운전을 해 주었다.

이혼해서는 내가 해야 한다.

이혼하기 전 면허를 따 놓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1번 상간녀에게 이제와 고마움을 표한다. 1번 상간녀가 없었다면, 1번 상간녀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다면, 사실 조금 더 뒤로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살았다.

결혼해서는 대체로 전남편의 의견을 따랐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살았다.

이혼을 했다. 내 인생이다.

어릴 때도, 결혼을 해서도 내 인생이었는데, 그 당연한 이치를 이제야 깨달았다.


운전도, 인생도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경로에서 벗어나면 경로를 다시 찾고, 도착했다가, 다음 목적지를 설정하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운전대를 꽉 잡고, 서두르지 않고, 상황 판단 잘하고, 전방 주시하고, 신호를 잘 지키며, 내 옆에 있는 동글이가 자신의 목적지를 설정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안전 운전하는 것.

주의할 것들이 많지만, 행복한 운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운전에서도, 인생에서도, 초보이지만, 행복한 오너드라이버이다.


며칠 전 보험회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사고 처리가 다 되었고, 900만 원 가까이 나와 보험료 할증이 될 거라며.

아, 보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일로 요즘 내가 운전하며 가장 두려운 순간은 '주차 라인을 빠져나갈 때'가 되어버렸다.

다시 후진하는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 한참 나간다.

언젠가는 또다시 쓰윽하고 빠져나가겠지만,

한동안은 이렇게 조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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