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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웅 Nov 24. 2024

숫자의 위력 (연재 3화)

마방진과 디지털의 발견

답변이 너무 쉬워 보여서이었을까? 아니면 문장이 너무 가벼워 보여서이었을까 박율은 아쉽게도 장원급제를 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과거에 급제해 자신의 고향 은산(현재의 부여) 현감이 될 수 있었다.        
       

박율은 관직에 오른 후부터는 엄한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칭에 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대칭에 대한 그의 집착은 행과 열, 그리고 대각선의 합이 모두 같은 정사각형 배열이 이루어지는 마방진에 관한 탐구로 이어졌고 결국 그의 명석한 두뇌는 다음과 같은 3x3 마방진의 한 예를 만들 수 있었다.               


2  9  4     

7  5  3     

6  1  8               


상하좌우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숫자의 합이 15가 되는 마방진을 발견(또는 발명)한 박율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 쾌감은 글공부와 문장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이자 전율이었다.               


이러한 박율의 수에 관한 연구는 '운’과 '숫자’의 이론에 기반하여 우주와 인간의 운명을 연구하는 분야인 주역 철학과 명리학 공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역에서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 체계를 상징하는 64개의 괘를 연구하던 박율은 각 괘가 0과 1로만 이루어진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0과 1의 숫자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모든 것의 시작이며 중심인 하늘(天)을 뜻하는 건괘(乾卦)는 숫자 1로, 땅(地)을 뜻하는 곤괘(坤卦)는 숫자 0으로 바꾸어 최소 단위로 이루어진 이상적(離散的)인 수치로 세상을 풀이할 수 있다는 박율의 생각은 숫자 자체가 여러 가지 괘를 이루어 ‘스스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급진적 발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박율은 행정 업무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찰방(察訪, 종6품)에게 현의 관할을 맡겨두고 본격적으로 '수'에 대한 서책을 찾으러 다니면서 연구에 매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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