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방암에 걸린 걸까?-1

기분: 비(rainy)

by 아로미

G동네병원에서 조직검사 슬라이드와 서류를 받고 병원문을 나서니 오후 2시 10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이른 오후여서 카페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면 딱 좋을 시간이었는데


어제, 오늘 병원을 왔다 갔다 하고 내일도 병원에 가야해서 그런지 집으로 왔고 소파에 앉아서 내가 왜 유방암에 걸렸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족력-1. 아빠의 대장암

22년 전, 내가 17살인 고등학교 1학년 일 때 아빠는 44살의 나이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아빠는 평소에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는데 이미 혈변을 보는 이상증상이 있었음에도 이러다 말겠지 하셨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가니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정확히 1년 후 돌아가셨다.

엄마말에 의하면 아빠네 집안은 어릴 때 가난해서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부부로 사는 동안 집 안의 큰 대소사는 엄마가 잘 챙기셨다.


집을 사고 팔고 차를 사는 일까지.


엄마는 아빠와 결혼 후 전업주부로서 IMF 때 가계가 휘청거려 부업으로 핸드메이드 코트에


바느질을 하고 단추를 다는 일 빼고는 일한 적 없을 만큼 아빠는 밖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오셨다.

그러다 아빠는 42살이 되던 해, 회사를 박차고 나와 본인이 하셨던 종이와 관련된 업무를 살려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업 확장을 위해 거래처 사람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펴서 대장암에 걸린 거 같다고


병원에서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력-2. 엄마의 유방암


고1때 부터 아빠 없이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내가 29살 되던 해, 2년간 해외봉사를 하러 개발도상국으로 떠났다.


해외에서 지낸 지 1년이 넘어갈 때 쯤 엄마가 유방암 2기 라는 소식을 문자로 알려왔다.


그 때 엄마나이는 56세였다.

해외 봉사활동을 포기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곁에 있던 남동생이 엄마를 잘 돌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계약한 2년을 마치고 다시는 못 올 남미를 6개월이나 여행하고 2년 6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불량한 딸로 살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날은 내가 해외봉사를 가서 1년이 된 시점이 아닌 6개월이었다.


엄마의 소식을 알면 내가 짐 싸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 올까봐 타지에서 적응을 마친 1년이 조금 넘은 때 얘기해 주셨다.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었던 일 모두 하고 들어오라는 말에 울먹거리며 통화를 마쳤다.


이 때가 2016년 이었는데 유방암은 생명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고 관리를 잘 하면 생존가능성이 높다며

엄마도 알법한 시시한 말로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다행이라면 엄마는 지금까지 유방암 재발과 전이 없이 잘 지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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