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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ul 26. 2017

한 장 넘길 때마다 잠든 뺨에 입을 맞추죠

ep11.

그리지_쓰니랑



바람이 살랑 살랑 불면서 내 잔머리를 건드리나보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잔머리들이 계속 내 얼굴에 살짝 살짝 닿으면서 간지럽힌다. 밀려오는 졸음에 간지러움을 애써 무시하려하지만 힘들다.

정신없이 바람에 휘날리던 잔머리들이 어느 순간 멈췄다. 바람이 멈췄나. 슬며시 눈을 떴다. 바람을 멈춘 장본인은 그였다. 읽고 있던 책으로 내 얼굴에 불어오던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눈을 뜬 나를 보며 그가 말했다.

“자세를 좀 바꿀까?”

순간 살짝 고민했다. 나는 내 사이즈에는 안성맞춤인 작은 돗자리를 펴서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과 뜨거워지기 시작한~ 그래도 아직은 따뜻함을 즐길 수 있는 햇볕을 받고 있었다. 간지러움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면 이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의 상생구도를 느낄 수 없음에 아쉬웠다.

“나 얼마나 잤어?”

“별로 안 잤어, 한 2시간?”

헉. 잠시인 줄 알았던 졸음이 2시간이었다니... 깊게 잠이 든 것도 아니었는데 2시간이나 흘렀다니... 나는 얼른 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48분. 오후 2시쯤 돗자리를 폈던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빠르게 느껴진 시간 흐름에 놀람도 잠시 나는 평상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자는 잠버릇을 생각하며 지금도 그랬을 거란 생각에 흠칫거렸다. 내가 한번도 깨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한순간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휙. 그의 무릎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리고 있던 머리를 들며 일어나 앉았다.

“어째 지루하고 힘들었겠다. 깨우지...”

“아니야.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어. 책도 보고 네 얼굴도 보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표정에 그는 미안해하지 말라며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진심으로 느껴지는 그의 말에 마음이 괜히 잉~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다 섞인 감정이랄까. 잉~했다.

“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배가 고픈 거 같았다. 배고플 시간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나는 엄청 먹었다.

유독 먹었다. 낮잠을 자고 나서 그렇게 배가 고팠던 것일까...

자고 일어난 얼굴로 막 먹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진심으로 웃었다. ^^ 진심으로 웃었다. 진심으로...


그 날 밤 집에서 씻고 침대에 누워 그가 보낸 카톡을 확인하던 나는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웃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카톡을 기다리던 그가 다시 카톡을 보낼 만큼의 시간이었다. 정말 난 몇 분 동안 계속 웃었다.

‘흐흐흐’ 몇 분을 실실 웃고 있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폰 화면에는 유독 오늘의 우리 모습과 너무나도 닮은 가상 속마음 인터뷰 내용과 그에 걸맞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각자에게 집중이란?

그리지 : 아예 집중이요? 저는 뭐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개가 되어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중만 계속 된다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 있으니 확산이 필요하죠. 저는 그래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자 친구 잠든 뺨에 입을 맞추죠.

쓰니랑 : 호로록 쭙쭙 쩝쩝 예? 먹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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