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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Sep 23. 2017

오늘도 예뻤니?

ep15.

그리지_쓰니랑



바람이 선선해졌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 건가. 시간이 진짜 빠르다는 생각을 지겹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은 뜨거워도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의 기운이 찼다. 한강을 동행 삼아 걸어가는 내 출근길에서 이날따라 유독 더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나는 스마트 폰 중독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쓸데없이 하루 종일 폰을 보고 있다. 이날 아침 출근길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그와 카톡을 했다.


“너무 졸려”, “어디야?”, “다 왔어?”, “빨리 퇴근하고 싶다” 등등.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아무 말이나, 졸린 상태에서는 쓰는, 어쩌면 더 진심이 담긴 메시지들이 오가고 있었다.



“좀 있다 끝나고 회사 앞으로 갈까?”


“나 오늘 야근... 뉴뉴”



오늘 퇴근 후 보고 싶어 하는 그에게 나는 이미 확정된 야근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늦게 본다고 해도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 입장에서 너무 힘들 거 같았다. 이놈에 체력은 왜 항상 저질인 건지... 이런 나의 상태를 아주 잘 아는 그는 오늘 야근이라는 내 메시지에 아쉽다며 내일은 꼭 보자는 답변을 보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날은 유독 더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빠르게 지나간 것도 아니다. 그냥 천천히 흘러가는 일하는 시간 속에서 엄청 바쁘고 정신이 없었던 것뿐. 이렇게 회사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퇴근을 하니 이미 밖은 깜깜하고 나의 뇌는 지쳐있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퇴근길 지옥철을 타기 전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끝났어?”, “피곤하지”, “너무 졸려”, “빨리 집 가서 쉬어”, “너는 오늘 어땠어?”


매일 하는 전화, 매일 하는 똑같은 안부 인사인데 왜 매일 새롭고 매일 따스할까. 분명히 어제 했던 이야기고 어제 했던 질문이고 또 똑같은 답변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흐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스마트 폰을 통해 넘어간 내 웃음을 듣고 ‘왜 웃어’ 물어보는 그의 목소리에 난 더 웃어버렸다. ‘뭐지?’, ‘왜지?’ 혼자 묻기만 하던 그는 내가 조용해지자 다시 말을 이었다.



“못 봐서 아쉽다”


“에이 뭐 아쉬워 내일 보면 되지”


“오늘도 예뻤니?”


“어머”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그의 말에 ‘어머’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이런 내 반응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어땠니”, “사진 없니” 라며 계속 이어졌던 그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들렸지만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진 않았지.



그리고 난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서 쩔었던 내 모습을 최대한 예쁘게 가다듬고 지하철을 타기 전에 열심히 셀카를 찍었다.


그리지_쓰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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