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9일의 이야기 (2023.11.14.)
김장의 시즌이 다가왔다. 친정집에서 시골에서 가져온 배추로 우린 늘 해마다 김장을 하기에 역시나 남편에게도 김장 이야길 꺼냈다. 흔쾌히 "김장하고 먹는 보쌈이 최고지~ 보쌈 먹으러 가야지~"라는 대답에 참 고마웠다. 친정에서 김장하고 2박 자는 게 어디 쉬우랴.. 취직을 하는 상황과는 별개로 이건, 오빠가 직장이 있든 없는 간에 친정 가서 김장하고 보쌈 먹는다고 들뜬 모습이 참ㅋㅋ뭐랄까 고맙고 또 미안하고 또 왜 아직 직장을 못 구하는 건지 짜증도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를 마지막으로 안아주며 엄마랑 아빠가 금요일에 미리 배추도 다 절여놔서 나랑 남편과 남동생은 사실 별로 할 것이 없었다. 야채 씻고 다듬고 배추 씻고 소를 섞는 일뿐. 너무 엄마가 고생한 것 같아서 너무 고맙고 엄마 또 오겠다고 했더니 엄마의 말 한마디에 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어쩜 어른들은 다 아는지.. "○○이는 조금 더 기다려보자. 너무 조급해말아".
집에 돌아오면 느끼는 감각은 현실이다. 어디를 가서 열심히 놀다 오면 놀다 왔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집에만 오면, 이력서를 쓰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같이 밥 먹다가도 밥 먹고 나면 이력서를 써야 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지독한 현실이 다가왔다.
몸이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가야 몸이 간다. 6개월도 지났고 현실 속에만 오면 난 어김없이 차가워진다. 그러기 싫은데 정말 사랑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는 언니가 자기가 콩깍지 씌어서 눈 딱 감고 결혼할 것 같다고 하길래 언니에게 "아니, 눈 반쪽은 떠라"라고 얘기했다. 결혼은 정말 현실.
어제 자는데 남편이 내게 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뭔 얘긴가 하니 이전 직장의 대표가 직원들에게 쓴 구조조정 이야기였다. 이미 예견된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 잘리고 있다고 하더라. 근데 나는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뭐?" 8개월은 더 다녔을 텐데.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퇴사하는 건 적어도 실업급여가 나온다. 100만 원이 넘는^^. 나에게 여기는 이미 가라앉는 배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음 아니? 나에겐 가라앉는 배여도 월급이 지급되는 배였으므로 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구직시장이 많이 얼어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함부로 퇴사하면 안 된다는 등등.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들어가 본다. 채용공고는 그래도 많이 올라오는데 왜 내 남편이 들어갈 곳 하나 없는 걸까. 마치 결혼할 때 집 마련했을 때처럼, 이렇게나 많은 집이 지어지는데 내가 터전을 마련할 곳 하나 없는 걸 슬퍼한 것처럼. 남편에게 말은 못 했지만, 내가 지금 '돈'에 많이 얽매여있다 보니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1% 부럽긴 했다.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벌써 그냥 몇 번 쓰다 말했지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퇴사를 했다'는 31편째다. 나 올해는 정말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데... 행복할 수 있을까.